MB 창세기

1. 연초에 MB가 삽질을 시작하시니라


2 그 땅이 개발이 덜되고 값이 싸며 노다지가 흙 밑에 감춰져 있고 돈 냄새는 그 위에 운행하시니라


3 MB가 이르시되 전봇대여 뽑혀라 하시니 대불공단 전봇대가 사라지고


4 그 모습이 MB가 보시기에 좋았더라 MB께서 어린쥐와 오렌지를 나누사


5 MB께서 어린쥐를 인재라 부르시고 오렌지는 꺼져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 MB가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강남이 있어 강남과 비강남으로 나뉘라 하시고


7 MB가 자립형 사립고를 주창하사 물 좋은 곳과 그렇지 않은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MB가 경쟁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 MB가 이르시되 돈 있는 집 아이들은 한 곳으로 모이고 그 찌꺼기들은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어떤 외고는 학부형 4분의
1이 의사이며, 수급자는 서울시내 외고에 단 한 명도 없더라)


10 MB가 그곳을 인재의 산실이라 부르시고 나머지에게는 경쟁하여 분발하라 하시니 MB가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MB가 이르시되 땅 가진 것도 서러운데 종부세와 양도소득세와 기타 세금을 구태여 낼 필요 없다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이자와 각기 종류대로 돈 맺는 나무와 각기 종류대로 투자 가치 넘치는 열매를 내어 부자 가슴에 대못을 빼니 MB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14 MB가 이르시되 땅을 나누는 강에 운하가 있어 배가 산으로 가고 그 위에서 뱃놀이를 즐기며 계절을 보내고 일광욕을 즐기게 하라


15 또 겨울에 그가 얼어붙어 배가 다니지 못하면 스케이트장을 열리라 하시나 그건 뜻대로 는 안 되니라 (외전 :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시니라)


16 MB가 두 큰 방송사를 흔드사 자신의 큰 셰퍼드를 회전의자에 앉아 주관하게 하시고 또 한 방송사의 혼을 빼놓아 뜻대로 움직이
게 하시고 또 제동성,석희성 등 별들을 떨구시고


17 MB가 미디어법을 조중동의 창고에 두어 배를 불리게 하시고


18 종편과 신규채널을 주관하게 하시고 광고 수입을 나눠먹게 하시니 MB가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20 MB가 이르시되 4대강은 토목을 번성하게 하라 4대 강 속에는 로봇 물고기가 헤엄치리라 하시고


21 MB께서 큰 강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내쫓으시니 MB가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MB께서 이르시되 개발하고 건설하여 시멘트로 충만하라 노고단도 개발이 덜 되었더니라 하시니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24 MB의 상전이 이르시되 한국군은 그 병력을 전투병과 지원병 가리지 않고 병과별로 내되 아프간과 이라크와 그 외 상전이 고역을 치르는 어디로든 내라 하시고 MB가 따르니라.


25 MB의 상전이 또 쇠고기 문제는 원래의 약속대로, 자동차 문제는 내 마음대로 하자 하시니 MB 보시기에 미치도록 좋았더라


26 MB가 이르시되 나의 삽질을 따라 내가 경부고속도로와 청계천에서 해 온 모양대로 4대강을 파헤치고 리베이트를 만들고 부실로 배를 불려 바다는 간척하고 강물엔 보를 쌓고 갯벌은 시멘트로 덮고 지저분하게 기어다니는 것들은 아스팔트로 없애리라


27 MB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되 남자의 이름은 강남구라 하고 여자의 이름은 고소영이더라. 입은 뾰족하고 앞니가 길며 끊임없이 뭔가를 갉아먹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독특한 취향이더라.


28 MB께서 그들에게 축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수급자 따위 인간들과 대학 등록금 못낼 정도의 불쌍한 인간들과 영어 하나 제대로 못하는 열등한 인간들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MB께서 이르시되 내가 온 나라의 비정규직과 알바를 부릴 권리와 가끔씩은 재개발의 축복을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 또 그에 반항하는 모든 노동자들과 세입자들과 일반 서민들에게는 경찰의 몽둥이와 검찰의 구형과 재판부의 망치를 일용할 먹을거리로 주고 내키지 않으면 태워 버리겠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MB께서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2장 1절 천지와 만물이 다 작살나니라


2절 MB께서 하시던 삽질이 일곱째 날에 이를 때에 마쳤으면 좋았겠으나 그 성질이 부지런하여 일곱째 날에도 쉬지 않으시니라,


3절 그리고 삽질은 계속되시니라

by 산하 | 2009/11/30 11:52 | 트랙백(5) | 핑백(1) | 덧글(51)

"난 더 바보처럼 살꺼에요."를 부르라고?

진보정당이 유시민 전략을 받아야 하는 이유



고백부터 해 두자. 나는 97년 이후 치러진 3번의 대선에서 단 한 차례만 '진보' 정당 후보에 기표를 했다.    '비판적 지지'라는 숙어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그 이전의 경험을 통해 배워 왔고, 겨자씨만도 못한 규모의 '진보'일망정 내 미래를 위해서는 그들이 창대해져야 한다고 믿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투표 행태는 그랬다. 일종의 정신분열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나는 김대중이 한 번은 청와대에 들어가야 한다고 보았고, 노무현의 사자후에 빚이 있다고 느꼈고, 그를 향한 믿음들의 순결함에 연대하고 싶었다.  

 
 또 한 번 고백컨대 나를 그렇게 만든 주요한 요인은 더 있었다. 그것은 "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칼과 "한나라당 꼴보기 싫어"하는 방패였다.  그 칼과 방패를 들고 무장한 순간 나는 "진보정당은 나중에 밀어 주면 되지"하는 말까지 잡아탄 중장 기병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선거만 끝나면 그 모두를 몽땅 반납당하고 또 다시 누추한 알몸으로 돌아갈 처지임을 모르지 않았으면서도 칼과 방패는 버리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모처럼 그것들을 포기한 이유도 과거에 대한 반성이라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다. 풍차 앞에서 돌격하는 돈키호테가 되기는 싫었던 것이다.  밀어야 할 '될 사람'이 없는데 한나라당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그를 확신한 다음에야 나는 이미 앙상할 대로 앙상한 로시난테로부터 내려 홀가분하게 진보정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할 수 있었다.   만약 또 그놈의 박빙 승부에다가 한나라당으로 정권 넘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하는 숨가쁜 절규가 울려 퍼졌다면 내가 무슨 행동을 했을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이렇게 구구한 고백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음을 말해 두기 위해서다.   그리고 "될 사람을 밀자"는 무딘 칼 따위는 매우 쳐서 보습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한나라당이 싫다, MB가 싫다"는 방패는 정말로 팽개치기 힘들다.   이런 판에 유시민 전 장관은 "지방 선거 때 연대를 못하면 다 루저"라는 말씀으로 이 심약한 시민의 가슴에 불을 당긴다.   그리고 뒤이어 그  전략을 받아 안아야 너희들이 산다는 준엄한 꾸지람이 허약한 진보정당 지지자의 뇌리에 떨어진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나는 이제 낡을 대로 낡은 방패를 버리고 싶다.  지금의 정권이 상식과 원칙을 짓무르고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또 다시 그에 대한 혐오 때문에 일단은 어깨 겯고 단일 부대로 편성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동맹이란 기본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가 예상될 때 이루어진다.   적과의 전투에서 화살받이로 쓸 보조전력이나 동맹의 깃발만을 요구하는 동맹은 동맹이 아니라 엉성한 봉합이거나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우기는 강성한 세력에 대한 마지못한 협조일 뿐이다.  우리가 다르면 얼마나 다르냐고 높이는 언성 때문에 애초부터 그쪽과는 좀 달라 보겠다고 밥 굶고 가산 털어가면서 진보정당을 건설해 왔던 사람들의 노고가 국으로 무시된다면 그것은 동맹이 아니다.   아니 동맹이 될 수 없다.  


 탄핵으로 들끓었던 2004년의 선거판에서 유시민 전 장관의 호소를 선명히 기억한다.  민주노동당을 찍으면 사표라는 소리를 그는 서슴없이 했었다. 그리고 대선 때처럼 민주노동당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이지메의 대상이 됐었다.  그야말로 중공군처럼 몰려와서 민주노동당 당게를 점령했었고 호소라고 하지만 협박으로 들리는 언설이 난무했었다.  "이번만큼은 연대해야 한다"는  조금은 몰염치한 주장을 들었을 제,  얼치기에 사이비 진보정당 지지자였던 내가 다 부아가 치밀었는데, 별안간 그때 민주노동당이 약진한 것은 "한나라당의 몰락" 때문이니 다시 진보정당이 살려면 한나라당 몰락 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요리요리 붙어라고 내미는 엄지 손가락에 어떻게 설득력이 실린단 말인가. 


 백번을 양보해서 한나라당이 몰락하던 시점의 반사이익을 진보정당이 챙겼다고 치자.  그게 '지갑을 주운(?)' 행운이라고 억지로 간주해 보자.  하지만 한나라당이 득세하니 진보정당이 망가졌다는 주장은 너무나도 요령부득이고 이해불가의 수준에 도달한다.   진보정당의 후퇴를 가져온 것은 일차적으로 진보정당의 스스로의 책임임을 부인할 수는 없되,  그 다음으로 큰 이유를 들라면 "초록은 동색"이고 '도찡 개찡'이라는 대중들의 판단이었다.   즉 지난 정권의 실정과 실책에 함께 덤터기를 썼던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람들과는 다른 대안을 준비하고 있고, 지향점 또한 부산과 목포의 차이는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래 봐야 믿겨지지도 않았던 진보정당의 한계였던 것이다.  즉 문제는 한나라당의 부상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또는 민주당과의 동반투신이었던 것이다.  


 노회찬 의원이 했다는 말, 지나치게 달라서 연대할 수 없다는 말은 어쩌면 그 한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잘 나갈 때는 승리의 악세사리가 되고 못 나갈 때는 먼저 깨지는 큰코가 되는 처지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의지인지도 모른다.   진보정당을 송두리째 집어치우고 '양당제도' 에 편입되어 당내 진보파로 자리잡을 요량이라면 모를까,  진보정당의 융성을 꿈꾸고 그를 위해 노력해 온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저 끈적끈적한 연대(?)의 거미줄에서 벗어나 날개짓하고 싶지 않겠는가 말이다.   간단한 예 하나를 들어 한미 FTA를  온몸으로 이끌어낸 세력과 목숨 걸고 반대한 이들이 어떻게 "뒤집어라 엎어라"로 같은 편이 될 수 았단 말인가.  

  

 좋다. 다 좋다.  유시민 의원이 말했다는 "한나라와의 전국적 1대1 대결"은 나 역시 가슴이 뛰는 이야기다.   장담컨대 돌아간 그의 정치적 주군이 대통령에 당선될 때 그 1 대 1의 조마조마함에 혹하여 붓두껍을 돌린 사람들의 수는 그를 승리로 이끌었던 표차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민주노동당 내에서조차 환호가 터져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질까.   이제는 그 빚을 갚으면 좋겠다.   민주당 후보가 명함도 못 내밀 지역의 후보에 '진보정당'을  안배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이나 경기도같은 곳에 진보정당 후보를 1대1로 내세울 것을 공표하고, 이에 얼굴이 흙빛이 될 분들을 앞장서 설득할 자신감을 천명한다면 나는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터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정당에 몸담고 그 이상을 위해 몸부림쳐 온 사람들에게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넘어 "난 더 바보처럼 살 꺼에요"라고 노래하라고 강요하는 것 그 이상이 될 수 있을까?  


 MB가 싫다... 한나라가 싫다... 참 큰 유혹이다. 나도 정말 싫다. 인간적으로 싫다.  하지만 이제 무엇이 싫다가 아니라 어떤 미래를 지향해야 하고, 어떻게 바꿔 나가는 것이 옳다는 내용으로 동맹해야 할 때가 아닐까.  얼마나  더 우리는 "파쇼하에 만사반대 독재하에 대동단결" 구호 하에서 집단군무를 추어야 하는가. 

 
 

by 산하 | 2009/11/29 02:48 | 썸데이서울 - 이런저런 얘기들 | 트랙백(4) | 덧글(100)

친북인명사전에 꼭 들어가야 할 사람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에서 '친북인명사전'을 발간하신단다.   그 위원장께서는 "친일보다는 친북이 국가적으로 더 중차대한 문제"라고 기염을 토하셨는데 무려 5천여 명의 면면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100명으로 압축, 발표를 앞두고 있다는 낭보를 전해 들었다.  


 친일 얘기하면 빨갱이가 되었던 해방공간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의지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신으로 '친일사전'에 '친북사전'으로 맞서겠다는 저 가없는 창의력에는 하염없는 경외감 이외에는 드릴 것이 없다.   

 
 과거 보도연맹이나 기타 등등 죽창으로 찌르고 총알을 먹이고 칼로 쑤셔 마땅한 빨갱이 목록을 작성하는 데는 타고난 자질을 보였던 대한민국 보수 우익이 작성한 '신들린 리스트'의 정확성을 부정하는 무례를 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공사다망하신 와중에 천려일실,  빠뜨릴 지도 모르는 악질 친북 인사 몇 명을 추천하고 싶을 뿐이다.    


 


  성명 : 이승만 
  직위 : 대한민국 초대, 2대 3대 대통령 

  상기인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암약하며 6.25가 발발하자 자신은 대전으로 일찌감치 도망가면서도 라디오 녹음으로는 "자신은 끝까지 수도를 사수하겠다"고 허풍을 떨어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신뢰를 극적으로 무너뜨리고 수도 서울을 사흘만에 인민군에게 내 주는 사악한 공작을 폈다. 


 백척간두의 전쟁이 한참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헌병을 동원한 부산 정치 파동을 일으켜 군은 물론 국민의 사기를 저하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고,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느니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쪽이 가능성이 크다"는 외신 기자의 비아냥을 살 정도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손상시킨 바 있다.  


 또한  국민방위군 사건 때에는 생때같은 장정들의 피복과 음식을 가로채 기생 치마폭에 쏟아 붓고 호의호식을 일삼았던 장교들을 구원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였던 바, 일련의 행위들은 대한민국 국군의 약화와 민심 이반을 노린 북한의 지령에  충실히 따랐던 것이 확실시된다.  

 


  성명: 신성모
  직위  : 국방부 장관

 상기인은 국방의 총책임자로서 "우리 국군은 아침은 개성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는 일견 허황해 보이나 면밀히 계산된 발언을 일삼으며 국군의 정신전력에 막대한 손상을 입힘으로써 전쟁 초기 국군의 몰락과 인민군의 강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전쟁 발발 3일 내내 국군이 북진하고 있다고  거짓 선전을 떠벌임으로써 100만 시민과 수도 서울을 고스란히,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북한 정권에 헌납했다.    
 

 국군 통신 부대의 주요 장비와 수천 명의 피난민의 목숨을 앗아간 한강다리 폭파 역시 북한의 지령을 받은 신성모의 작품으로 추정되나 명확한 증거는 없다.  단지 명령을 받아 스위치를 눌렀던 공병감 최창식 대령만이 억울하게 희생되었을 뿐이다.   최창식이 신성모의 친북 행위를 눈치 채고 고발하려다가 먼저 당하고 말았다는 설이 있다.  


 위에 언급된 이승만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옳습니다 옳습니다 펑펑 눈물을 흘려 낙루장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이는  김일성이나 김정일만 보면 눈물 흘리는 조건반사가 일상화된 후대의 북한의 모습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성명 : 채병덕 
 직위 :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별명 : 코끼리  (북한 연락부 암호명으로도 사용되었다고 추정)

 이 사람에 대해서는 할 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군의 원로 이형근 장군이 10대 의혹을 제시하며 그의 행적에 시비를 걸었거니와,  6월 24일 밤 국군 고위 장교와 미 군사 고문단이 흐드러지게 벌인 술판의 호스트였고, 남침의 첩보가 잇따르는 가운데 쭈욱 지속되어 왔던 비상 태세를 해제하고 장병들을 휴가 보낸 것도 그였다.  또 똑똑한 대전차포 하나 없는 가운데 무적의 독일군을 혼냈던 T-34를 몰고 들이닥치는 인민군에 대항하여 무리한 반격 작전을 벌여 소중한 병력을 소진시켰으며 부하들의 한강 방어선 활용 주장도 깡그리 무시했다.

   이것만 해도 제 5열의 혐의가 굳어지는 바, 앞서 언급된 한강교 폭파는 그 절정이었다.   이야말로 한강 이북에 존재하던 국군 5개 사단의 퇴로를 끊어 버린 망동이었으며 군 수뇌부에 암약한 친북 간첩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적 행위였다.   무능을 가장하여 교활한 친북 행위를 자행한 대표적 인물로 평가된다.


 노골적인 이적 행위를 벌이는 바람에 이용가치가 다했고 기밀 누설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듯, 신성모는 참모총장직을 박탈당한 채병덕에게 "귀하는 선두에 서서 독전할 필요가 있다"고 종용했고 그 명령에 따라 최전방에 섰다가 우군인 인민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이는 공산주의자들이 흔히 보여 주는 꼬리자르기 전술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이름과 직위 : 타자 치기 팔 아픔 


 이 사람이 빠진 친북인명사전은 앙꼬없는 찐빵이요 겨자 없는 냉면이라.  대구 폭동의 주역으로 감히 구미경찰서를 들이치고 경찰서장 이하 경찰들을 겁박했던 간 큰 공산주의자 선산군 민전사무국장 겸 인민위원회 내정부장 박상희가 그의 형이고, 국대안 반대투쟁울 하다가 군대로 피신한 젊은 좌익의 처삼촌이다.  이에 질세라 그는 노동당의 군 세포 책임자였다.   혁명열사 집안도 이런 혁명열사 집안이 없다.    여순반란 후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친북분자의 증거다.  
 
 이후 전향했지만 끝내 북에 대한 친밀감을 버리지 못하고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북한의 의도가 번영된 7.4 남북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지금까지도 친북 인사들이 즐겨 운위하는 구실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 사람의 직위도 팔 아파서 못치겠다. 중앙정보부장부터 총리까지 다양하고 희한하다.


 박정희 가문 못지 않은 혁명가 가문의 일원이다.  미국 대사관 직원인 그레고리 헨더슨이 1963년 본국에 보낸 보고서의 일부를 인용하여 그가 친북인명사전에서 빠질 수 없는 위인임을  피를 토하며 폭로하고자 한다. 


 "1946년에 미군정은 서울대 사범 대학을 비롯해 몇 개의 대학을 통합하려고 했다. 그 결과 일부 대학, 특히 좌익 교수단과 학생들 사이에서 격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이들은 미군정의 명령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독립 지위를 상실하면 미국의 감시가 강화될 것을 우려했다. 사범 대학은 적극적으로 투쟁했다. 이 싸움에서 좌익의 입장을 견지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김종필과 몇몇 인사들이 있었다........ 김종필과 김용태는 불온한 사건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사범 대학에서 퇴학 처분을 받고 대전 근처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남로당으로 지역 청년들을 전향시키는 일을 했다고 한다.


 김종필의 6형제 가운데 전부는 아니지만 몇 명은 1950년에 북한이 남침했을 때 공산주의자들에게 협력한 것으로 보인다. 6형제 가운데 김종식은 그의 걸출한 형제 김종락이 인정하듯이 살아 있다면(그럴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 있을 것이다. 김종필의 또 한 형제는 충청남도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협력한 죄로 동네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고 현재 고향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 형제는 남로당원으로 한국 전쟁에 참여했지만 그 후 김종필이 그의 체포를 막았다고 한다. 김종필 형제가 남로당에 협력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던 동네에서는 매우 잘 알려져 있으며, 그것은 모든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온 원인중 하나였다."
  

 이런 친북인사가 대한민국에서 50년째 암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북인명사전은 반드시 폭로해야 한다. 


 


 
전두환, 제 11대, 12대 대통령 

 광주의 반정부 난동분자들을 진압하고 철부지 대학생들을 때려잡고 '녹화사업'을 기획하는 등 좌익 척결에 공이 있어 보이나, 자신의 목숨을 노린 아웅산 테러 이후 정당한 보복은 커녕  비굴하게도 심복 장세동을 밀사로 보내어 대화를 구걸하는 친북적 행태를 노출하고 말았다.   또한 국가보안법을 어기고 허담 등의 북한 밀사와 교감을 나누는 등 친북인명사전 등재에 하등 흠이 없는 행적을 보였다. 


 또한 현재 전 재산 29만원 밖에 없는 무산 계급으로서 친북좌익 세력의 포섭이 용이하다는 현재적 상황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성명: 정주영
 직위 :현대그룹 왕회장 

  이 사람을 친북세력으로 분류하는 데는 많은 고민이 따랐다.  빨갱이 노동자들의 옆구리에 식칼을 박아 가며 자유민주주의를 지켰고 황량한 울산만을 굴지의 공업 도시로 탈바꿈한 공로는 취할만하다.  그러나 눈물을 머금고 나는 그를 친북인명사전에 등재할 것을 호소한다.   

  강원도 미수복지역인 통천 출신으로서 끝내 지역적 연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향을 돕는다는 미명으로 엄청난 달러를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진상하였으며,  소 수천 마리를 조공품으로 북한에 바쳤다.  북한은 남한의 혁명 열사들의 이름을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습관이 있는 바,  통혁당의 김중태나 서울대생 박종철 등의 이름도 북한의 학교나 기관에 어김없이 내걸려 있다.  그런데 저 적도 평양 한복판에 정주영 체육관이 위용도 찬란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 어찌 친북의 증거가 아니랴.    친북인명사전이 정주영 이름 석 자를 뺀다면 그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그 효용은 먼지처럼 산산이 흩날리리라.   


 
 성명 ; 김병관 
 직위 : 동아일보사 회장 

  원래 이분은 친북인명사전에 올라서도 안되고 올라설 수도 없는 분이었다. 그러나 단 한 차례 실수로 그만 사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상기인은 말도 안되는 김일성의 항일 투쟁...... 수십 명이 강 건너 와서 국경 외딴 마을을 잠시 점령하고, 반항하는 일본 요릿집 점원 하나 죽이고 다시 강 건너간 사건인 보천보 전투를 다룬 동아일보 호외 원판을 가져다가, 세상에 도금도 아니고,금 1.2 킬로그램을 들여서 장식해서는 민족의 공적 김정일에게 그 아비의 기념이랍시고 고이 전해 바쳤다.   

 민족 유수의 일간지가 허위로 그득한 김일성의 항일 투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를 황금으로 도배하여 전달하다니 대체 국가보안법은 죽었는가 살았는가.   이적단체 고무 찬양 조항은 쉬었는가 썩었는가.    이런 친북적인 작태가 횡행하는 동안 도대체 국정원은 공으로 월급받아 먹고 있었는가.   참으로 피를 토할 일이다.  친북 인명 사전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김병관 회장을 존경한다. 그러나 공은 공 사는 사다 ^^  저런 행적이 친북인명사전에서 빠진다면 그건 정말이지 화장실 휴지로도 못쓸 종잇장들의 묶음에 불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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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에도 정체를 숨긴 채 대한민국 곳곳에서 설치류처럼 서식하고 있는 친북인사들은 수없이 많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의 노력과 혜안을 통해 그들의 정체가 일망타진 공개되기를 앙망하는 바이다.   친북인명사전 편찬자들의 건투를 빈다.  이렇게 알려 줘도 저 위의 기라성같은 친북인물들이 사전에서 빠진다면, 나는 사전 편찬자들의 친북성과 사상을 의심해 보고자 한다.  핸드폰에 111 을 입력시켜 놓고 지켜 보리라.

by 산하 | 2009/11/23 16:35 | 썸데이서울 - 이런저런 얘기들 | 트랙백(2) | 덧글(55)

싸워라 KBS

인생사란 것은 매우 묘하다.  난 그저 제 자리를 지킨 것 뿐인데  얼척없이 데모대 선두에 선 죄로 실컷 두들겨 맞은 뒤 영웅으로 떠오를 수도 있고, 남들 다 할 거 내가 먼저 도망간 것 뿐인데 삼십육계의 전설로 두고두고 남을 경우도 엄연히 존재한다.    한 발 물러서 숨을 고를 때와 과감하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시점을 파악하는 것은 비단 전쟁터의 장수들만의 미덕이 아닌 것이다.   하물며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조직, 거기다 한 나라의 미디어 업계에서 둘째 가라면 통곡을 하다가 피를 토해서 빈혈로 사망할 만한 회사의 구성원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싸워라.  KBS 

 
  작년에 그 홍역을 치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홍역에 면역이 되었으리라 짐작했음인지 '어부지리' 차지한 뜽금없는 사장 치세를 걷어 치운 자리에 기어코 공수부대가 투입됐다.   그 이름도 빛나는 KBS 공채 1기가 왜 낙하산이냐고 나경원 의원이 뾰루퉁해 하지만 낮은 포복만 하던 원단 땅개도 낙하산을 태우면 공수부대가 된다.   더구나 그 낙하산에 남대문짝만하게 "MB 언론 특보"라는 명함이 찍혀 있음에랴.  


  1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나라에서 6년 전의 일을 되짚어 무엇할까마는 KBS 구성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특보를 지낸 인사를 대공포로 쏘아 떨어뜨렸다.   그가 비록 KBS의 공채 1기가 아니었다고 해서, 또 방송인 출신이 아니라 해서 비토한 것이 아니었다. 그 개인의 자질에 대한 폄하와 모욕도 없었다.


  단지 한 나라의 언론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앉을 위인이 최고 권력자의 '오른팔'이나 '멘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상식이 그 대공포탄의 주재료였다.  또  언론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적 정당에 참여하고 아무개를 당선시키고자  '개와 말의 수고'를 다하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에 해당하나, 그 공의 댓가로 주어지는  하사품 목록에  언론사의 사장 명패가 포함될 수는 없다는 믿음이 대공포의 포신이었다. 

  
 상황이 바뀌었고 역사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똑같은 형태의 낙하산이 떴다.  그 낙하산이 안착하게 된다면 세상을 상대할 면목이 치명적으로 없어지는 것은 다름아닌 KBS 구성원들, 바로 당신들이다.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다.   '그때 그때 달라요~~'라는 개그쇼를 하는 입으로 어찌 정의를 논할 것이며 '나는 내 일만 할 뿐이고~~~'고 눈 가린 경주마 행세를 한다면 그 등에 누구를 태울 것인가.   6년 전의 대공포를 기억하라.   당신들의 힘으로 대통령이 내려보낸 낙하산을 날려보냈던 그 기세를 기억하라.   당신들이 싸워야 할 첫 번째 이유다. 


 싸워라 KBS 

 
 그 대공포를 쏘아 보았다고 해서, 한 공수부대원을 날려 버렸다고 해서 무던히도 우쭐댔을 KBS 구성원 여러분.  여러분은 그 과거 때문에도 싸워야 하지만 여러분의 오늘을 위하여도 싸워야 한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여러분이 누리는 안락과 호사의 댓가를 이 싸움으로 치러야 한다.   지금 당신들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는 당신들만이 사수해 온 것이 아니고, 현재 당신들이 향유하는 '신의 직장'의 지위는 당신들의 능력만으로 따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이미 방송계에서 그 직위와 권리가 보장된 귀족의 반열에 올라 있으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필연적으로 따라붙는다.  당신들이 마지막으로 사수해야 할 권리이고, 최소한 외면하지는 말아야 할 의무가 바로 이 싸움이다.   아니할말로 당신들은 하늘이 알게 저항해도 잘리지 않지 않는가.   어디 연수원에 처박히고 한직을 맴돌지언정 연봉은 해가 갈수록 쌓여 가고 그 신분증은 강철로 만들어졌지 않았는가.    


 법으로 보장된 직위와 단결의 권리를 가진 KBS 구성원 여러분.   이미 그 사실만으로 당신들은 이 싸움을 치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지금 당신들은 모욕당하고 있다. 


  권력에 빌붙음으로써가 아니라 권력과 불화함으로써 쌓아올렸던 것이 당신들과, 당신들의 동업자들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였고 당신들의 어깨에 힘 들어가게 하는 영향력은 그로부터 나왔다.   그러기에 임기 한 달 남겨 놓고 대통령을 탄핵한 덜떨어진 패거리들이 방송사에 찾아와서 물 한 잔 안 주냐고 거들먹거려도  물은 셀프라고 쏘아부칠 수 있었고, 설사 당신들이 아닌 외부의 방송 종사자라 하더라도 누가 부당한 압력을 넣을라치면 "때가 어느 때인데"를 일갈할 수 있었다.   지금 권력은 그 결기를 비웃고 있다.  

 
 그래도 작년에 그 난리를 치렀으면 포기할 줄 알았다.  아무리 대한민국 표준 시계가 거꾸로 도는 국방부 시계가 되었더라도 그래도 체면이 있고 양심이 남았을진대 허접한 동네 고스톱판에서도 지켜지는 낙장불입 원칙을 저버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바바리맨같은 권력이 휘둘러대는 거시기에 그저 꺅꺅 소리내며 피할 뿐이라면 그 바바리맨은 당신들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그 앞에 꿇어앉혀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기야 하겠냐고 묻는 자에게 되묻는다.  작년에 그 난리를 치고서는 또 김인규 카드를 들이미리라고 상상한 자 있는가? 


 싸워라 KBS 

 
  그리고 당신들의 미래를 위해서 싸워라.   불쾌할지 모르나 많은 이들은 이미 당신들을 믿지 않는다.   싸우는 시늉만 하다가 잇속 차릴 거 다 차리고, KBS의 그 많은 기둥들 뒤에 숨어 있는 놀고먹는 인력들 안전 보장 받고, 풍성한 연봉 잔치나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는다.   더우기 지금 노조 깃발을 움켜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투쟁이라는 단어는  가끔 대통령께서 도덕성을 말씀하실 때보다도 더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한 뒤 언론계에 당근 폭탄이 퍼부어지면서 가장 형편이 나아졌던 곳 중의 하나가 KBS였다. 그러나  형편이 나아진 만큼이나 형편없이 멸시를 당했던 때도 그때였다.  우리 집은 KBS를 보지 않습니다 스티커가 날개돋친 듯 전국으로 퍼졌고, 땡전뉴스의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꿋꿋이 '오늘 전두환 대통령'과 '한편 영부인 이순자 여사는'으로 뉴스를 장식했었다.   그 과거를 당신들의 미래로 삼지 말 일이다.  



 물론 때가 어느 땐데 하는 핀잔이 돌아올 것을 안다. 아무렴 천하의 김인규 참모라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아호를 '청계'에서 '오늘'로 바꾸라고 강요하기야 하겠는가.   여러분의 미래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정부의 압력이 아니라 그와의 담합이다.  그리고 그 담합은 달콤할지 몰라도 결국 언론이 마땅히 드러내야 할 송곳니와 어금니를 썩게 만들 것이고, 결국 이빨 빠진 언론은 꼬리를 흔드는 일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개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때 다시금 여러분은 사회의 공적이 될 것이다.  물론 등은 더 따뜻하고 배는 더 부르겠지만. 


 싸워 봐라. 한 번.   최소한 김인규 참모가 연말 방송 대상 시상식에 나비 넥타이 매고 나타나는 모습은 막아 주길 바란다.  "이명박 후보의 취재 일정 및 코디, 출연진, 인터뷰 내용까지 면밀히 체크한" 대선의 일등 공신 김인규 참모가 어느 자리를 못 가겠는가.   까짓거 정연주 전 사장 해임이 계속 무효 판결을 받을 경우 책임지겠다고 공언한 최시중씨의 후임으로 보내도 좋고,  학부모에게 세뇌당했네 어쩌네 하는 지극히 비문화적인 장관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들어앉혀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KBS 사장만은 어울리지 않는다.  어울려서도 안된다.  그 이유는 김인규 참모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대선 때 특보를 안하려고 수차례 고사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하게됐는데 그게 멍에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 본인의 변이다.  수 차례 고사해야 했던 바로 그 이유가 오늘의 김인규 전 특보가 KBS사장에 앉을 수 없는 근거일 것이며,  그것이 멍에가 되고 만 것 역시 그 자신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사장을 하겠다고 나서고, 전 특보의 주군은 기어코 시키겠다고 우긴다.   이래도 싸우지 않는다면, 그 강력한 노조와 신분 보장의 특권을 가지고도 시늉만 하고 말겠다면 그냥 밥숟갈 놓고 이슬이나 먹고 살 일이다.  


 싸워라 KBS.  당신들이 잘린다 한들 기륭전자 노조원만큼이나 풍찬노숙을 하겠는가?   KTX 여승무원들만큼이나 사람들이 몰라보겠는가?  기껏해야 어디 좀 외지기는 하지만 경치 좋은 중계소에 가거나 연수원쯤에 가서  유유자적 월급 받으며 권토중래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싸워야 할 일에 마땅히 떨쳐 일어나 싸우지 않는다면 그것도 일종의 직무유기다.   그리고 직무유기의 결과로 당신들은 그 이름도 유명한 루저의 작위를 얻을 것이다.    


나는 KBS를 루저 아닌 위너로, 너무 반듯해서 탈이긴 하지만 지킬 건 지키고 할 일은 하는 박카스 청년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제발 싸워 줘라 KBS.   당신들이 나설 때다.

by 산하 | 2009/11/22 01:07 | 썸데이서울 - 이런저런 얘기들 | 트랙백(1) | 핑백(1) | 덧글(30)

교육계 유감

한겨레 21 노땡큐 플러스 알파 


 

방송 일을 하면서, 특히 고발 프로그램을 하면서 수많은 분노와 실망을 경험했고 허탈감에 어깨를 늘어뜨리거나 배신감에 애꿎은 벽에 주먹질을 한 적도 적지 않다. 그 감정들의 원천은 한 개인일 수도 있었고 특정 기관이기도 했고, 또는 어떤 광범위한 집단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 감정의 파동을 가장 극심하게, 그리고 골고루 느꼈던 대상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 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교육계’다.


무럭무럭 자라는 새싹들과 푸르러지는 동량들에게서 삶의 보람을 거두는 대다수의 선생님들께는 매우 죄송한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자꾸만 엇나가는 아이들을 감싸고, 안팎으로 상처 가득한 아이들을 끌어안느라 여념이 없는 분들께 결례가 될 수 있는 표현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전체가 바담 풍이라고 읽더라도 너희는 바람 풍이라고 읽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시는 강직한 사표(師表)들에게는 송구스런 마음 금할 길 없다. 문제는 응당 그러하리라 생각했던 믿음의 전복을 여러 번 목격해야 했다는 데 있다.



학교 앞에 살면서 ‘싸이코’라는 놀림을 받는, 그 놀림을 못 참아 몽둥이를 들고 뛰어다니다가 정작 걸음 빠른 악동들은 놓치고 엉뚱한 저학년들만 잡아 족치는 통에 온 동네의 원망을 샀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슬프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한 학교를 다니는 아주머니의 딸은 소문난 왕따였다. 쓰레받기에 담긴 먼지를 도시락에 쏟아 부었다던가, 신발을 감춰 버렸다던가 구구절절 읊기도 싫은 일화들이 많은데, 이 문제에 대한 담임 교사의 명언은 실로 귀에 쟁쟁한 것이었다.


“왕따 아닙니다. 현대인의 고독 같은 거예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런 입으로 항의하러 간 아버지에게는 심드렁하게 전학을 권유했다고 한다. 어디 친척집 없냐고. 그리로 보내 버리라고. 아이가 문제라고.



 솔직히 말하여 그분에게 삶의 보람이란 자라나는 새싹 아닌 커져가는 연금 액수에서 비롯되는 걸로 보였고,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가 받는 상처 따위는 책상 위에 쌓이는 공문 낱장보다 못한 존재일 뿐이었다.



 물론 그 교사 하나를 가지고 교육계 전체를 평가하는 엄청난 어리석음을 범할 이유는 없다. 뉘 없는 쌀이 어디 있으며 티 없는 옥이 그리 흔하랴. 하지만 교사나 교장 개개인의 품성이나 사고가 아니라 이 나라의 교육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일선 학교를 지휘 감독한다는 조직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뚱딴지들이 멧돼지처럼 종횡무진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 나는 할 말과 남아 있던 믿음을 동시에 잃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받아쓰기 커닝을 했다고 해서 한 여교사는 100대의 몽둥이질을 퍼부었다. (아, 100대는 과장이라고 했다. 80대였다고 한다.) 한 번에 때리기엔 버거웠는지 쉬는 시간마다 불러내서 스무 대씩 ‘야구하듯 풀스윙으로’ (같은 반 아이의 표현) 때렸다고 했다. 그 일이 있은 뒤 또 한 여자 아이에게 수십 대의 매질을 퍼부었고 보랏빛으로 변해버린 아이의 볼기짝이 인터넷에 떠다니면서 문제가 불거지고 말았다.


교육에 대해 일가견은 전혀 없으나 같은 반 친구가 수십 대의 매질을 당하며 울부짖을 때 맞는 아이는 고사하고, 그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어떤 상처를 받았을 지는 진저리치게 이해할 수 있다. 체벌에 익숙한 세대의 일원으로서도 단언하건데 그것은 폭력이었고 교사가 초등학교 2학년에게 가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이것이 아동학대가 아니냐는 질문에 교육청 관료는 또 이런 명언을 남겨 주셨다. “콩쥐 팥쥐처럼 이유 없이 밉다고 하는 것이 학대지요. 이건 체벌이 심한 거지요.”



 그리고 교육청이 최종적으로 정한 징계는 정직 3개월이었다. 대단한 중징계라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성추행을 하고서 고발당한 교사도 정직 3개월 후 교단에 섰다. 그런데 바로 한 달 뒤 일제고사를 보지 않을 권리를 알려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정직도 아니고 해임도 아닌 파면이 선고되었을 때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청이라는 곳이 주관하는 교육이라는 것의 목표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를 성추행한 자도 석 달만 마늘과 쑥 먹고 참으면 다시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학교 교단에 현신하는 판에, 아이들의 권리를 밝히고 논한 것에 파면장을 내던지는 교육의 기준은 무슨 손오공의 여의봉이란 말인가.



 얼마 전,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시국선언 참여 교사에 대한 징계를 않겠다 (엄밀히 말하면 사법적 판단을 기다려 보겠다)고 선언하자마자 교육부는 그야말로 펄펄 뛰었다. “수사 기관으로부터 수사 결과를 통보받고도 징계를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이며 직무이행명령은 물론 고발까지 하겠다며 세우는 서슬이 시커멀 정도로 시퍼랬다,



 그러나 선거법상 공개가 명시된 재산을 누락시킨 혐의로 고발된 서울시 교육감이 대법원 최종 유죄 판결로 퇴장하기까지, 교육부가 무슨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는 꿈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수사 기관으로부터 수사 내용을 통보”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이것은 누구의 직무유기인가.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도 어서 징계하라고 으르대는 성마름과, 3심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꿈쩍도 않는 여유로움이 공존하는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의 ‘다중인격’에 당혹감을 금하기 어려운 가운데 진하게 우러나는 질문 하나가 있다. 대관절 교육과학기술부는 무슨 교육을 통해 어떤 인재를 길러내고 싶기에 이런 모범을 보여 주시는 것일까

by 산하 | 2009/11/16 13:38 | 썸데이서울 - 이런저런 얘기들 | 트랙백 | 핑백(1)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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