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누가 촛불의 목을 베겠느냐 by 산하

누가 촛불을 베겠느냐. -탄핵 소추 대리인 구성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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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원에서 제갈 공명이 죽은 뒤 위연은 반란을 일으킵니다. 촉나라에서 강유를 제외하면 제일의 용장이었고, 촉한을 세운 유비 시절부터 활약해 왔던 백전의 노장이었죠. 제갈량의 신중하지만 지지부진했던 진격론 (결과적으로 여섯 번 나가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에 반대하여 대담한 장안 기습 작전을 제기하기도 했을 만큼 지략도 있었던 장수였고요. 제갈량이 죽자 그는 자신의 세상이 왔다고 여기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위연의 배신을 예측했던 공명의 유지에 따라 위연과 앙숙이었던 양의는 “누가 내 목을 베겠느냐?”를 세 번 외쳐 보라고 시키지요. 그러면 항복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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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위연은 하늘을 보고 껄껄 웃습니다. “공명이 살아 있었을 때는 공명이 두려웠으나 그가 죽은 뒤 내가 무엇이 두려우랴.” 그리고는 들뜬 목소리로 부르짖지요. “누가 감히 내 목을 베겠느냐?” 그러자 그때껏 위연과 행동을 함께 하는 듯 했던 동료 장수 마대가 번개같이 칼을 휘두릅니다. “내가 베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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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연은 가히 자신의 인생 절정이라고 생각한 순간, 그 목이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고 맙니다. 자신이 유비에게 처음 귀순했을 때 반골의 상이라고 다짜고짜 목을 치려고 한 이후 자신을 믿어주기보다는 은근히 견제했던 공명, 하지만 머리 하나는 기차게 좋아서 어떻게 해 볼 수 없었던 ‘넘사벽’ 제갈량이 죽었으니 그에게 두려운 것이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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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도감, 해방감, 승리감에 그는 판단력을 잃습니다. 한 치만 더 생각했다면 양의가 시키는 일이 뭔가 이상하다 싶은 낌새가 들었겠지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앞선 겁니다. “누가 나에게 대적할 것인가?”를 외치고 싶어서 말이죠. 바로 그때 뒤에서 칼이 날아듭니다. 지금껏 한 배를 탄 듯 했던 이의 칼이었죠. “이건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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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타임라인에서 촛불을 멈추지 말자는 호소가 간간이 들렸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고개는 끄덕여져도 몸은 반응하지 않더군요. ‘주말이 있는 삶’이 사라진 지 좀 보태 말해서 두 달이다 보니 피곤하기도 하고 날씨도 추워진다고 하니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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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으로 탄핵도 됐겠다, 헌법재판소도 자신들이 탄핵을 기각할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정도는 이해할만한 곳이겠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대세라는 생각도 드는 겁니다. 이 추운 겨울 주말 저녁에 촛불 들고 안나가고 ‘일상’을 즐기더라도 별 일이야 있겠나 싶기도 하고, 이제 까짓거 니들이 이제 어떻게 하겠느냐? 혁신이고 통합이고 변기공주의 시동들 주제에 ‘누가 촛불의 목을 베겠느냐?’ 외치고 싶기도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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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뿔싸 오늘 뉴스를 보다 보니 등 뒤에서 마대의 칼이 날아들어 그 칼바람에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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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심판은 헌재가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법정이라 검사와 변호사 역할이 있습니다. 이미 박근혜 여사의 변호팀은 팀웍 맞추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고 나름 방어 논리의 방패에 쇠를 입히고 있을 텐데, 검사 역을 해야 할 탄핵소추 대리인 구성은 지지부진이었습니다. (왕년의 노무현 탄핵 때 이 검사 역을 맡은 이가 바로 김기춘이었지요.) 이 대리인을 구성하는 국회 소추 위원은 국회 법사위원장입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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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이 양반이 탄핵 소추 대리인단 구성을 발표하는데 그 중 한 이름에 어처구니가 블랙홀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황정근 변호사라는 분인데 이 분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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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가 최씨 등 3명에 대한 형사소송 결과를 보기 위해 헌재법 제51조에 따라 탄핵심판절차를 6~12개월 정도 중지할 수도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한 사실을 인정해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사실관계를 놓고 다툴 것이기 때문에 법원의 형사재판을 기다려야 할 가능성이 높아 1심이 끝날 때까지 최소 6개월이 더 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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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아니라 변호사의 느낌이 팍 드는 겁니다. 답 적어 놓고 컨닝하라고 답안지 들어 주는 뻔뻔스런 시험생 간지도 나고 말이죠. 그런데 도대체 탄핵 인용에 눈과 입 모두에서 불을 토할 변호사, 법조인들이 많은데 이런 분을 소추 대리인으로 삼는 이유가 뭘까요? 이거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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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이분 “박근혜 정권 1년과 법치주의”라는 행사에 나가tu서 “생존권 등을 빌미로 격렬하게 법질서에 저항하고 법을 무시하고 초월하는 정치적 행태로 나아가는 것은 (법치주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으며,,,,,, 공민의 시민적 덕성을 길러주는 법 교육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분임을 염두에 두고 보면 “이미 탄핵은 된 거고!” 하고 떠들던 제 목덜미에도 칼이 와 닿고 있는 것 같단 말입니다...... 그리고 뒤에서 한 마디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베어 주마. 이건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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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탄핵은 된다고 생각하고, 대한민국은 새로워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만 최소한 자만할 때는 아니다 싶은 생각이 더럭 납니다. 위연이 돼서는 안되겠다는 경계심도 스멀스멀 기어나옵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맘 놓은 순간 칼 날아오는 경험과 사례는 동서고금에 널려 있습니다. 이번 주말은 모르겠지만 제야의 종소리 때는 보신각에서 헌법재판소로 가서 촛불로 에워싸야 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변호사 선배의 우려 하나 덧붙여 둡니다. 

“대리인은 탄핵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야. 뉴스 보면 말겠지만, 사시 15기 황정근이 이대로라면 팀장이라고. 그 사람이 전략을 짜고 실제로 심리를 진행할 거야. 법정에서 대응할 때 박근혜 쪽 대리인에게 밀려서 기일이라도 몇 번 연장되면 그냥 몇 달 갈 수도 있는 거야. ” 

그런데 수백만 촛불 들어 이룩한 탄핵이라는 이름의 생선 창고 열쇠를 왜 고양이 형상의 지배인에게 맡기게 된 걸까요? 이거 이래도 되는 걸까요? 촛불은 뒤에서 날아오는 칼에서 안전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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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들의 자서전을 읽고 by 산하

아버지들의 자서전을 읽고서.... 참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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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 아직 고가도로가 놓여 있던 시절의 얘기다. 도심의 별난 사람들이나 이색 풍경을 아이템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었는데 청계천 2가 공구상가에서 제보 전화 한 통이 왔다. 제보 내용은 간단했다. “공구상가 골목의 가게들 간판을 수십년 간 만들어 온 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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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노인이 있다는 곳으로 가는 함께 와중에 제보자 아저씨는 이것 저것.. 전부 다예요..라고 하며 간판들을 가리켰다. 간판들을 눈여겨보니 정말 수백 군데 가게의 간판 글씨체가 똑같았다. 이른바 '아이스께끼'체였다고나 할까. 허연 목판에다가 검은색 또는 붉은색 붓또박또박 써 넣고 팔았던 아이스께끼 아저씨 노점 앞에 서 있던 간판 글씨체 말이다. ‘용접' '스텐레스' '밀링작업' '각종 공구 팝니다' 그 수백 개 간판을 한 사람이 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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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할아버지를 만났다. '박정희 군사혁명하던 해'에 청계천에 와서 '할 줄 아는 일이 이것밖에 없고, 사람들이 그래도 찾아 주니까' 40년 동안 청계천 골목의 한켠에서, 점포도, 작업실도 없이 그냥 으슥한 길바닥에서 간판을 써 왔다는 노인이었다. 청계천 골목을 줄창 걷다가 간판이 좀 낡았다 싶으면 "다시 써 줄까요?"라고 묻고 답을 듣는 것이 '영업'의 전부라며 너털웃음을 웃는 인상은 참 좋았는데 촬영 얘기하니 그만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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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요. 그런 건" 
"아니 왜요?" 
"방송에 나올만한 일 한 적도 없고, 싫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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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이 한곳에서 자리를 지키신 것만 해도 충분히 방송 나갈 수 있는 일이며... 당신의 손때가 묻은 간판들로 그득한 이 골목만 해도 충분히 기록의 가치가 있으며.... 지금까지 할아버지 간판을 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작은 보답 아니겠느냐....... 등등 별별 감언이설을 다 동원해 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제보자 아저씨가 내 어깨를 잡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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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영감은 한 번 아니라면 아니에요. 언젠가 데리고 있던 종업원들한테 못되게 굴던 가게 주인이 있었는데, 저 할아버지가 그 집 간판은 절대 안쓴다고 그랬다고.. 그 주인이 또 못된 인간이라.... 할아버지 물감통 때려 부수고 협박하면서 써 달라고 해도 죽어도 안쓴다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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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 열 달쯤 지났을까. 예전의 그 제보자 아저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것 같아요." 하루도 거름이 없이 골목길 물감통 앞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한 달이 넘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괜히 맘이 이상해져서 다시 청계천행 버스를 탔다. 주인 없는 플라스틱 물감통은 이미 인근 상가의 쓰레기통이 되어 있었고, 간판에 쓰려던 나무 판자들은 여기 저기 널부러져 발에 채이고 있었다. 40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할아버지였지만 그와 함께 세월을 지샌 인근 상인들 그 누구도 할아버지의 연락처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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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좋은 팔자든 나쁜 팔자든 세상의 파도를 타고 넘으면서 살다가 죽어간 개인들의 삶의 총합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굵직굵직한 사건과 영웅들에 주로 눈길을 주고 그를 기준삼아 역사를 엮어 내기 마련이고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 속에서 묵묵히 자기 페이스 유지하면서 최선을 다하다가 살아간 사람들의 미세한 삶들은 쉽게 잊혀지고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청계천에서 스치듯 만났던 간판쟁이 할아버지처럼. 평생을 같은 글씨체로 청계천을 수놓았지만 빈 통과 붓 몇 개, 판자 몇 개로 남았던 이름 모를 간판 ‘장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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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들의 자서전>은 끝내 내가 만났으되 풀어내지 못한 청계천 간판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을 다룬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왕년에 6mm카메라 들고 다니던 처지라면 책을 읽다가도 뛰어나가 섭외하고 세월의 먼지 그득한 이야기를 듣고 그 행동거지를 영상으로 남기고 싶은 사람들을 어디서 이렇게 성실하게 찾아 놓았는지 일단 그 라인업에서부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오래된 이용원의 이발사, 시계 수리 전문가, 세탁소 주인, 전파사 기술자 아저씨, 대장간 주인 , 수제 구두 제화공, 양복점 재단사 등등 한때 우리의 일상처럼 늘어서 있었지만 지금은 추억의 뒷골목으로 모습을 감춘, 그러나 여전히 기운차게 그들의 개인사를 써 내리고 있는 사람들을 어기차게도 모아 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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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낯익은 분들도 있었다. 만리재 기슭의 성우 이용원이나 수색의 대장간 주인장은 방송에도 여러 번 소개된 분들이고 얼굴 또한 낯익다. 아마 TV나 신문 깨나 본 분들이라면 아 그 양반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정도일 터.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잊었던 것들”의 추억 타령이나 개인에게 과도하게 함몰된 ‘인간탐구’류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책이다.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 전기(傳記)이면서 수필이고, 르포이면서 다큐멘터리이며도, 노동의 철학과 한국 현대사의 큰 흐름을 가로질러 낡은 골목 벽돌 틈에 피어난 미시사(微時史)까지도 모두 아우르는 함지박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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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얘기하면 “모든 것을 망라한다는 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거라는 얘기다.”하며 핀잔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리도 많은 요소들이 조화롭게 버무려져 사람의 마음을 끌어내는 책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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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만리동 오래된 이발소 이야기는 풍문으로 들어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이발소를 찾아가는 만리동 길에 ‘뺑뺑이’ 첫 세대로 무시험으로 중학교에 입학한 박정희 대통령의 ‘영식’ 박지만을 위해 신작로가 뚫려 지금껏 ‘박지만길’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이 만리재 사는 사람들 기가 드세 과거 석전(石戰), 즉 돌싸움으로 유명했고, 하도 다니기에 질척거려 진고개라고 불리웠다는 얘기는 대개 금시초문일 것이다. 그런 잔잔한 사연들의 물결을 헤치고 옛 사람의 섬에 이르면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 한복판과는 동떨어진 인간과 노동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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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 인민군은 만리잿길을 넘어 마포로 진격해 왔고 UN군은 거꾸로 만리재 고개를 넘어 서울 도심을 죄어 들어갔다. 전쟁의 폭풍이 쌍방향에서 휩쓸고 지나간 만리재에서 살던 성우이발관 주인 이남열씨네 가족은 서울 시민 안심하라는 이승만의 방송 때문에 그랬는지 피난을 가지 못했고 ‘부역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 형들은 취직도 하지 못했고 불행한 삶을 영위하다가 죽었다. 이남열씨에게 이발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밥벌이를 위한 호구지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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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그 안에서 작지만 빛나는 노동의 파노라마를 꾸려낸다. 손님 목덜미에 깎은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두르는 화장지 한 조각의 배려부터 “연장을 제대로 갈아야 기술자다. 가위도 못 가는 놈이 무슨 이발을 하느냐.”는 한 마디로 게으른 독자의 머리를 죽도로 내리쳤던 늙은 노동자의 외마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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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매력은 각각의 장마다 소개되는 주인공에 집중하면서도 그 주인공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다양한 사람들의 코멘트다. 스테판 쯔바이크부터 신영복까지, 저자가 깊숙이 섭렵한 (이렇게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그 맥락과 위치에 맞게 다른 사연의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의 여러 철학자, 역사학자, 작가들의 코멘트와 글줄들이 이발사, 제화공, 대장장이, 세탁소 아저씨들의 삶과 절묘하게 매치되며 그 몸에 훌륭하게 걸맞는 옷이 되어 주인공들의 품격을 더한다. 세탁소 아저씨의 삶을 소개할 때 등장하는 첫 글귀를 보며 나는 무릎을 쳤다. 이 책의 주제, 나아가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의 생을 요약할만한 앙드레 말로의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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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의 행동의 총체이며 지금까지 해온 일과 당장 할 수 있는 일로 이루어진다. 그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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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며 무릎을 치며 깨닫고 가슴을 치며 감동하고 머리를 두드리며 자책한 적은 줄잡아 스물 대여섯 번은 넘거니와 그 중의 하나로 장애인 전파사 아저씨 남상순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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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순씨는 냇가에서 놀다가 밟은 지뢰 때문에 장애인이 됐다. 멀쩡한 사람도 살기 힘들던 시절 “거의가 아니라 아예 끝”이었던 장애인으로서 그는 살기 위해 기술을 배웠고 전파사 기술자로 평생을 보낸다. 그런데 그에게는 역시 평생을 함께 한 인감 도장 하나가 있었다. 그건 장애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한때 익혔던 도장 기술의 소산이었다. 그는 겨우 몸으로 깨우친 도장 기술을 발휘하여 자신의 이름을 팠고 “50년 넘게 쓰다가 모가지가 부러졌는데 버리지 못하고 남은 꼬타리에다 구멍을 뚫어 고리를 만들어 가지고 지금도 이렇게 지니고” 살았다고 했다. 자신의 ‘첫 노동’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루 하루를 노동으로 지새우면서 우리는 얼마나 그 노동의 긍지로부터 멀어졌는가. “모든 여정에는 목적지 뿐 아니라 출발점도 있다.”는 제레미 레프킨 (이 말은 응암동 오거리의 오래된 양복점 주인 ‘임명규 傳’의 글머리에 나온다)의 말이 새삼스레 입안에서 감돌다가 머리로 뚫고 올라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했던 신영복 선생의 한 마디에 문득 어깨가 굳고 뒤통수가 근질근질한 까닭은 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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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수없는 질문을 해야 했다. 명료하지는 않은 어설픔으로, 단호하지는 못한 소심함으로 스스로에게 답한 말은 이것이었다. “기억이란 결코 늦는 법이 없다.” 빨리 기억해 내든 늦게 기억해 내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기억은 결국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통로가 될 것이고,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원천으로 자리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늦게나마’ 나의 기억을 되살려 준 책에 감사를 보내면서. 

책을 읽다가 문득 책 제목에 ‘아버지’라는 좀 추상적이고 식상할 수도 있는, 그래서 그다지 책 제목으로는 매력적이지 않은 단어를 왜 썼을까 궁금했는데 책 내용 간간이 드러나는 저자의 아버지의 사연에 이르면서 그 이유를 시나브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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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한 분야의 장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가족들과 자신에 불성실한 자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개개인의 역사를 충실히 써 왔던 것이고 그 개인사는 얽히고 어우러지고 섞이고 버무려져 역사라는 대로(大路)를 형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창 데모로 바쁘던 80년대의 저자에게 저자의 아버지가 던진 한 마디에서 나는 그 어느 학자나 전문가를 능가하는 포스가 함유된 ‘통찰’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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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직장만 다니고 있고, 이곳에서 정년을 맞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 세대는 한 직장에 머물지도 않을 것이고, 직장에서도 너에게 평생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을 것이다. 나처럼 네가 한 직장에 뼈를 묻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앞으로의 세상은 한 직장만 다니는 게 옳거나 자랑스러운 일도 아닐 것이다....... 너보고 직장을 갖고 살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데모하러 다니지 말라는 말도 아니다. 사람은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니 만약을 위해서라도 자격증을 따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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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의 말미에 ‘오도엽의 내 아버지 傳’을 넣어 아버지를 기리고 있다. 그제야 나는 이 책을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메시지를 가슴에 담는다. 꼭 오래된 이발사나 구두제화공이나 세탁소에만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명절날 찾는 내 아버지의 집, 당신이 즐겨 쓰시는 만년필 하나, 아무렇게나 구겨져 서랍 속에 잠든 카세트 테잎 하나에도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 우리 역시 누군가의 아들 딸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요 어머니라는 것. 우리 역시 노동으로 한 시대를 엮는, 역사라는 어두운 창공의 별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


촛불대군을 위하여 by 산하

612년 고구려를 침공한 수 양제의 백만 대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한 수이든 그렇지 않든 고구려가 동원 가능한 전 병력을 가볍게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대군을 동원한 것은 분명하다. 왜 그랬을까. 물론 황제로서의 위엄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수 양제도 진나라 정복군 사령관으로 통일을 달성했던 경험이 있었던 만큼 그렇게 바보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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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장벽인 요하를 경계로 한 고구려의 요동 방어선은 촘촘히 짜여 있었다. 이후의 역사를 통해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쟁쟁한 성들이 구축돼 있었고 고구려군은 한 성이 공격당하면 다른 성의 구원군이 달려와 침략자의 배후를 치고 협공에 나설 수 있는 기동력을 보유했다. 그러나 ‘백만 대군’은 이 가능성을 차단하고 고구려의 요하 방어선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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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요동 방어선의 사령부라 할 요동성이 포위 공격을 당하지만 고구려의 응원군이 다다랐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요동성은 무려 3개월을 버티며 수나라 대군의 공격을 막아 낸다. 물론 고구려 군의 용맹은 인정해 주어야겠지만 요동성이 끝내 버텨 낼 수 있었던 요인은 고구려군의 지혜와 수나라의 아둔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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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양제는 이런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다. “군대의 모든 움직임은 전부 반드시 나에게 아뢰고 대답을 기다려야 하며,자기 혼자 결정하여 행동하지 마라.” 어느 나라 대통령은 결정 장애가 문제라더니 이 명령은 수나라의 백만 대군을 지휘하는 수천의 장수들을 일제히 결정 장애 증상에 빠뜨렸다. 거기에 “이 전쟁은 백성을 위로하고 죄인을 벌주고자 하는 전쟁”이라고 선포하여 폼을 있는 대로 잡았던 수 양제는 그 인자함을 과시하고자 이런 엉뚱한 명령을 추가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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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만약 항복하면, 즉시 마땅히 어루만져 받아들여라. 절대 군사를 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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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성은 산성도 아닌 평지성이었다. 무지막지한 공성 기계와 인력이 홍수처럼 요동성 밖을 휩쓸었고 백만 대군이 산재한 요동에서 다른 성의 구원군도 바라기 어려웠다. 마침내 요동성은 함락 위기를 맞고 항복을 교섭하게 된다. 아마 그 순간은 진짜였을지도 모른다. 도저히 버티기 어려웠고 백만 대군은 그저 바라만 보기에도 아득했으며 황제 폐하가 살려 준다고 보장하셨다고 연신 외쳐 댔으니 생존의 욕구도 만만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동성 사람들은 그 순간 수나라의 약점을 알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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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 의사를 전한 즉시 항복 조건이 제시되고 당장 성문을 열고 무기는 어떻게 할 것이며 항복 의식은 어떻게 치른다는 구체적인 안이 제시되는 게 아니라 “황제 폐하께 사람을 보냈으니 기다리시오.”였던 것이다. 이것 봐라? 황제에게 사신이 달려가고 보고하고 항복을 받을지, 어떤 의식을 치를지 결정하는 시간만도 한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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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흐르자 죽을 것 같이 늘어져 있던 고구려 병사들도 기운을 차리고 슬금슬금 성벽도 수리가 되어 갔다. 얼라? 수나라 장수들은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챘지만 대놓고 공격할 수도 없었다. “황제가 맘대로 공격하지 말랬잖아요,” “아니 저게 항복으로 보여요?” "아 글쎄 기다려 보자니까.” “복장 터지겠네. 지금 고구려 애들 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 

성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고 항복은 철회됐다. 수나라 군대는 다시금 울분을 터뜨리며 공격을 가했고 워낙 많은 대군인지라 요동성은 또 위기에 빠졌다. “까오리 놈들. 이젠 정말 안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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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군대가 막 성벽을 넘으려던 날 성문이 열리고 또 백기를 든 고구려인들이 몰려 나왔다. “이번엔 진짜입니다. 황제의 무거운 뜻을 받아들여 이제는 항복합니다.” 굽신거리기는 하는데 분위기는 참 묘했으리라. 수나라 군 지휘관은 이미 고구려인들의 능글능글한 웃음의 뜻을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사신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폐하. 이제는 항복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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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고구려는 수나라 대군을 세 번씩이나 놀려 먹는다. 아마 나중에는 대놓고 이랬을지도 모르겠다. “저희는 모든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어떻게 항복할지 황제 폐하께 물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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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우리 조상이니 이 얘기가 재미있지, 중국인들에게는 그야말로 복장 터지는 역사다. 수백만 군대가 동원되고 그만큼의 인력이 군량 나르느라 허리가 휘었고 물 속에서 일하다가 하반신에 구더기가 슬었던 전쟁, 그 이후로 당나라 전성기보다도 더 많은 호수(戶數)를 자랑했던 수나라의 국력을 쓸어넣은 전쟁이었는데, 멍청한 황제의 ‘가오’ 살리기 앞에, 또 “만약 죄가 된다면 내가 받겠소!” 하면서 요동성으로 뛰어들지 못했던 수나라 장수들의 엉거주춤 속에 전쟁의 승리를 이끌 열쇠가 두 동강 나서 요하에 버려지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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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승기를 잡고 상대의 목줄을 내리누르고도, 적을 진퇴양난 고립무원에 빠뜨리고도 마지막 뒤처리가 부실하거나 엉거주춤 뜨뜻미지근한 자세에다가 상대의 교란 작전에 빠져 자멸한 사례는 세계 역사에 무수하게 많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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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촛불 대군은 이미 청와대를 포위했고 수백만의 함성으로 청와대와 그 일파의 기를 꺾었지만 “무겁게 받아들이던” 이는 항복인 듯 항복 아닌 배짱으로 “물러나 줄 테니 안을 가지고 와 보아.”로 뻗대고 있다. 끊임없이 국민들을 시험하고 교란하고 지치기만을 기다리며 농성을 전개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저 어리석은 수양제와 그 부하들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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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청와대 거주자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에 대한 선서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민주공화제인 대한민국을 입헌공주제로 만들었고 모든 권력은 순실로부터 나왔으며 국가를 혼란에 빠뜨렸고 평화적 통일의 기틀을 허물었으며 블랙리스트와 최순실 사단 챙기기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강탈했고 대통령은 커녕 일개 직업인으로서도 함량미달의 불성실을 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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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제 나라를 훔친 도둑 정도가 아니라 나라의 근간을 위협한 국적(國敵)이다. 그녀를 탄핵하고 몰아내는 것은 비단 불의에 대한 항거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생존 조건이 돼 버렸다. 촛불의 대군은 그래서 필요하고 그들을 대표하여 국적의 정치적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이들의 용단은 그래서 요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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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판알은 던져 버리고 엉거주춤의 자세를 바로하라. 헌법을 유린한 자, 헌법으로 탄핵하라. 그 시간을 늦추는 것은 바로 국적을 도와 주는 일이며 200만 촛불 대군의 애타는 호소와 피말리는 노력을 한강물에 흘려 보내는 낭패에 다름 아닐 것이다. 국적을 섬멸하라. 그 섬멸의 수단은 탄핵이다. 그리고 시간은 많지 않다. 국적을 머리에 이고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는 없다.


김기춘의 ABCDE 나의 ABCDE by 산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박근혜를 'ABCDE'로 표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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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ability)과 미모(beauty), 자신감(confidence),위엄(dignity), 우아함(elegance)을 지녔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사람에게 이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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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역시 국민에게 ABCDE를 주었다. 
Anger (분노) Betrayal (배신) Catastrophe (재앙) Danger (위험) Exhaustion (피로) 

나는 그녀에 F를 준다. 적지는 않겠다. 네 글자다.



어느 수능 부정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by 산하

엄마가 싸 준 도시락 가방에서 핸드폰이 울려 1년을 준비한 시험장에서 쫓겨난 수험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컥 목구멍이 젖는다. 그 지경을 당하고도 그는 한창 집중해야 할 국어 시험 시간에 난데없이 울린 벨 소리로 시험을 방해받은 다른 학생들에게 미안해 했다. 듣자하니 학원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한 재수생이라는데 모르긴 해도 그 집안 형편이 어떨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마지막으로 치른 시험 점수는 넉넉히 1등급이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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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오늘을 별렀고 오늘 이후를 기다렸을까. 아마 그 어머니는 지금쯤 벽에 머리를 찧으며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도시락을 싸면서 얼마나 가슴을 조이며 기도를 올렸을까. 가방 안 지퍼에 자신의 핸드폰이 들어가 있는 줄을 꿈에도 몰랐을 그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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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위해 아금바금 노력해 왔으나 본의아니게 수렁에 빠져 버린 수험생. 그러나 하늘을 원망하기에 앞서 자신이 수렁에 떨어지는 소리에 놀랐을 다른 수험생을 걱정하던 고운 마음엔 여지없고 예외없는 ‘원칙’에 의해 탈락의 낙인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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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험생의 맑은 눈에 가 가 가 투성이의 장시호가 연세대학교에 떡하니 입학했다는 뉴스가 어떻게 보일까. 학교에 나오지도 않는 아이에게 수행평가 만점을 주고 항의하는 아이들에게 “출석을 하지 않아 태도를 평가할 근거가 없다.”고 선생이라는 작자가 지껄였다는 뉴스는 또 무슨 조화로 들릴까. “돈도 실력이야 네 부모를 탓해”라고 주절거리던 그 잘난 애마공주는 무슨 모양으로 비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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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 사회는 저 수험생에게 원칙을 얘기할 수 있는 사회인가. 안됐지만 다음 기회에 보자고 단호하게 자를만한 염치를 지닌 사회인가. 왜 원칙은 착한 사람들에게는 불칼같이 단호한데 정작 원칙이 필요한 사람들 앞에서는 머리칼처럼 바람에 팔랑일 뿐인가. 자기 방에 들어앉아 천정만 바라보며 또 1년을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 왈칵 울음을 터뜨리고 있을 것 같은 이름모를 수험생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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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이렇게 아프게 하는 원칙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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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지은 증거가 산더미로 나오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도, 자기 입으로 “성실한 조사”를 받겠다고 말한 사람이 서면 조사로, 모든 수사가 끝난 뒤에 최소화해서 조사받겠다는 식으로 입장을 바꾸고, 그 변호사는 밑도 끝도 없는 “여자의 사생활”을 들먹거리는 일이 가능한 나라에서, 들개도 물어가다가 퉤퉤 뱉아버릴 역겨운 원칙이, 토악질 흔적에서 밥알 파먹는 비둘기도 구역질을 할 대한민국의 뭐같은 ‘원칙’이 왜 네게는 이렇게 지독하고 예외 없고 용서 따위는 없는 건지 정말 도통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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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픔 속에서 다른 친구들을 걱정한 네 마음 정말 고맙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득함 속에서 까마득하게 멀 수 있는 다른 이들의 피해를 배려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수능 1등급 천 개보다 귀하고, 대통령을 비롯하여 여러 버젓한 직함을 가진 이들의 사악한 옹고집에 비해 10만 8천배 소중하구나. 힘내라. 반드시 복받을 거다. 비록 이런 축복의 실현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는 사회의 기성 세대로서 미안하고 면구스럽지만 그래도 어쩌겠니. 네게는 좋은 일이 꼭, 반드시, 무조건 생길 거라는 기원과 다짐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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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몸과 맘 추스르기 바란다. 그리고 꼭 아저씨의 기원 이뤄 주기 바란다. 너는 잘 돼야 한다. 잘 되기 바란다. 기죽지 마라. “네 부모를 탓해” 지껄이는 개잡종들의 손을 꺾어 버릴 수 있도록 팔에 힘도 길러라. 너를 응징한 철봉같은 원칙을 엿가락처럼 휘고 줄넘기 삼아 재주를 넘는 자들에게 이단 옆차기를 날릴 수 있도록 다리에 근육도 쌓아라. 너는 잘 될 것이다. 잘 돼야 한다. 억지스레 들릴지 모르나 그래야 이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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