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6일
교육계 유감
한겨레 21 노땡큐 플러스 알파
방송 일을 하면서, 특히 고발 프로그램을 하면서 수많은 분노와 실망을 경험했고 허탈감에 어깨를 늘어뜨리거나 배신감에 애꿎은 벽에 주먹질을 한 적도 적지 않다. 그 감정들의 원천은 한 개인일 수도 있었고 특정 기관이기도 했고, 또는 어떤 광범위한 집단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 감정의 파동을 가장 극심하게, 그리고 골고루 느꼈던 대상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 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교육계’다.
무럭무럭 자라는 새싹들과 푸르러지는 동량들에게서 삶의 보람을 거두는 대다수의 선생님들께는 매우 죄송한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자꾸만 엇나가는 아이들을 감싸고, 안팎으로 상처 가득한 아이들을 끌어안느라 여념이 없는 분들께 결례가 될 수 있는 표현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전체가 바담 풍이라고 읽더라도 너희는 바람 풍이라고 읽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시는 강직한 사표(師表)들에게는 송구스런 마음 금할 길 없다. 문제는 응당 그러하리라 생각했던 믿음의 전복을 여러 번 목격해야 했다는 데 있다.
학교 앞에 살면서 ‘싸이코’라는 놀림을 받는, 그 놀림을 못 참아 몽둥이를 들고 뛰어다니다가 정작 걸음 빠른 악동들은 놓치고 엉뚱한 저학년들만 잡아 족치는 통에 온 동네의 원망을 샀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슬프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한 학교를 다니는 아주머니의 딸은 소문난 왕따였다. 쓰레받기에 담긴 먼지를 도시락에 쏟아 부었다던가, 신발을 감춰 버렸다던가 구구절절 읊기도 싫은 일화들이 많은데, 이 문제에 대한 담임 교사의 명언은 실로 귀에 쟁쟁한 것이었다.
“왕따 아닙니다. 현대인의 고독 같은 거예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런 입으로 항의하러 간 아버지에게는 심드렁하게 전학을 권유했다고 한다. 어디 친척집 없냐고. 그리로 보내 버리라고. 아이가 문제라고.
솔직히 말하여 그분에게 삶의 보람이란 자라나는 새싹 아닌 커져가는 연금 액수에서 비롯되는 걸로 보였고,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가 받는 상처 따위는 책상 위에 쌓이는 공문 낱장보다 못한 존재일 뿐이었다.
물론 그 교사 하나를 가지고 교육계 전체를 평가하는 엄청난 어리석음을 범할 이유는 없다. 뉘 없는 쌀이 어디 있으며 티 없는 옥이 그리 흔하랴. 하지만 교사나 교장 개개인의 품성이나 사고가 아니라 이 나라의 교육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일선 학교를 지휘 감독한다는 조직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뚱딴지들이 멧돼지처럼 종횡무진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 나는 할 말과 남아 있던 믿음을 동시에 잃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받아쓰기 커닝을 했다고 해서 한 여교사는 100대의 몽둥이질을 퍼부었다. (아, 100대는 과장이라고 했다. 80대였다고 한다.) 한 번에 때리기엔 버거웠는지 쉬는 시간마다 불러내서 스무 대씩 ‘야구하듯 풀스윙으로’ (같은 반 아이의 표현) 때렸다고 했다. 그 일이 있은 뒤 또 한 여자 아이에게 수십 대의 매질을 퍼부었고 보랏빛으로 변해버린 아이의 볼기짝이 인터넷에 떠다니면서 문제가 불거지고 말았다.
교육에 대해 일가견은 전혀 없으나 같은 반 친구가 수십 대의 매질을 당하며 울부짖을 때 맞는 아이는 고사하고, 그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어떤 상처를 받았을 지는 진저리치게 이해할 수 있다. 체벌에 익숙한 세대의 일원으로서도 단언하건데 그것은 폭력이었고 교사가 초등학교 2학년에게 가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이것이 아동학대가 아니냐는 질문에 교육청 관료는 또 이런 명언을 남겨 주셨다. “콩쥐 팥쥐처럼 이유 없이 밉다고 하는 것이 학대지요. 이건 체벌이 심한 거지요.”
그리고 교육청이 최종적으로 정한 징계는 정직 3개월이었다. 대단한 중징계라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성추행을 하고서 고발당한 교사도 정직 3개월 후 교단에 섰다. 그런데 바로 한 달 뒤 일제고사를 보지 않을 권리를 알려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정직도 아니고 해임도 아닌 파면이 선고되었을 때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청이라는 곳이 주관하는 교육이라는 것의 목표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를 성추행한 자도 석 달만 마늘과 쑥 먹고 참으면 다시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학교 교단에 현신하는 판에, 아이들의 권리를 밝히고 논한 것에 파면장을 내던지는 교육의 기준은 무슨 손오공의 여의봉이란 말인가.
얼마 전,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시국선언 참여 교사에 대한 징계를 않겠다 (엄밀히 말하면 사법적 판단을 기다려 보겠다)고 선언하자마자 교육부는 그야말로 펄펄 뛰었다. “수사 기관으로부터 수사 결과를 통보받고도 징계를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이며 직무이행명령은 물론 고발까지 하겠다며 세우는 서슬이 시커멀 정도로 시퍼랬다,
그러나 선거법상 공개가 명시된 재산을 누락시킨 혐의로 고발된 서울시 교육감이 대법원 최종 유죄 판결로 퇴장하기까지, 교육부가 무슨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는 꿈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수사 기관으로부터 수사 내용을 통보”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이것은 누구의 직무유기인가.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도 어서 징계하라고 으르대는 성마름과, 3심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꿈쩍도 않는 여유로움이 공존하는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의 ‘다중인격’에 당혹감을 금하기 어려운 가운데 진하게 우러나는 질문 하나가 있다. 대관절 교육과학기술부는 무슨 교육을 통해 어떤 인재를 길러내고 싶기에 이런 모범을 보여 주시는 것일까
# by | 2009/11/16 13:38 | 썸데이서울 - 이런저런 얘기들 | 트랙백 | 핑백(1) | 덧글(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