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혐오발언 반대한다 by 산하

이야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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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시절 직장동료들과 함께 짧은 연수 중 영국에 들른 적이 있다. 피카디리 광장 근처 어느 이탈리아 가게 (국기가 걸려 있어서 알았다) 에서 음식 주문해 먹는데 영어 잘하는 똑똑한 동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주인에게로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나직하고 차갑게 물었다. "Why am I a mon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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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몰라도 분위기는 알아먹는다 동기 녀석이 주인장이 우리를 두고 뇌까리는 소리를 캐치하고 그에 항의하는 상황이다. 이 이탈리아 자슥이 그런 말을 했단 말이야? 덩달아 얼굴에 사포 깔고 주인 앞으로 다가가 쏘아보는데 주인이 펄쩍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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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노노노노 네버네버네버 애브솔루틀리 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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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굴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어 이 동양인들이 영어 알아먹네’ 에서 온 당혹인지 자기는 정말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억울함이 빚어낸 빛깔인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얼굴이 하얘져서 절대 그런 말 한 적 없노라며 손을 저었고 다음의 말을 연거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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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like ra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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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안했다는 데야 별 수 있나. 모자란 영어를 쥐어짠 항의용 단어들과 산너머 배추에 f로 시작하는 넉 자 단어까지 혀에다 걸고 쏠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짐짓 근엄한 얼굴로 가게를 나서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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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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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통령 선거 즈음. 막 꼭지 연출 맡아 동분서주하던 무렵 당시 내 직속 상사는 회사에서 별로 인기가 없었다. 공은 나에게 과는 아래로 보내는 불량상사의 모습을 종종 보였고 아래 사람들에게 무리한 요구도 여러 번 해서 인심을 잃었던 것이다. 술 마실 때면 마른안주보다 더 좋은 안주가 그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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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비슷하게 그분을 씹고 있는데 한 선배가 새로운 레파토리를 꺼냈다.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뭔가 비밀 얘기를 한다는 듯. "아 우리끼리 얘긴데 말이야. 진짜 그 인간은 딱 전라도 티를 내요. 내가 이렇게까지 얘기 안하는데 말이지. 니라니라......하여간 전라도 인간들은......" 아 이 선배 좌중을 스윽 간을 봤던 게 고향이 어디인가를 셈하고 있었구나. 얘는 부산 이넘은 서울 쟤는 강원도 뭐 이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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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의 평소 불만스런 행태부터 사내에서 좀 심하다 싶은 김대중 전폭 지지 호소까지 ‘전라도’에 갖다붙여 험담을 구성하는데 듣다듣다 못 들어주겠다 싶어 입을 달싹이는 참에 옆에서 맥주 마시던 후배 여자 PD 하나가 호프잔을 탕 내려놓고는 꼬챙이로 찌르듯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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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 사람이 나쁘면 나쁘지 왜 그 고향을 얘기하세요. 나빠요. 선배님 이런 말씀하실 줄 몰랐어요. 그럼 아무개 선배(전라도 말 꺼낸 선배가 도움을 받던 전라도 출신 선배)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거예요? 그 선배도 전라돈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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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잘코사니야. 안 그러면 내가 정색을 했을 것 같고 분위기 험악해졌을 듯 한데 여자 후배가 ‘선배 나빠요’로 나오니 선배 꼼짝을 못한다. 기분 좋은 속사포를 들으며 선배의 얼굴을 흘낏 쳐다보니 그때 선배의 표정은 바로 몇 년 전 영국의 이탈리아 피자집 주인의 얼굴이 씌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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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 아니 내 말뜻은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야 말이 그렇지.... 그래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아하 이거 내가 말이 헛나왔네. 아니 그..... 지역감정 뭐 얘기가 아니라..... 그래 전라도라 다 그런 거.....는 아니.... 아니 그 양반이 워낙 행동이 그래서 그 지역을 욕먹인다는 거지 뭐..... 지역감정 그런 거 아니야.” 

그 하얗게 허둥대던 얼굴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삐져 나온다. 하지만 이탈리아 음식점 주인이 몽키 운운을 했든 그렇지 않든, 선배의 본의(?)가 어디에 있었든 그들이 필사적으로 자신이 인종주의자가 아니며 지역감정의 체현자가 아님을 강변해야 하고, 그들 자신 속 편견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한 것임을 깨닫게 되기까지의 역사를 생각하면 웃음은 곧 숙연으로 바뀐다. 그들이 제 발을 저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강고한 혐오와 편견의 벽 앞에서 피눈물을 쏟아야 했을까. 얼마나 몽키 또는 깽깽이 소리에 속을 저며야 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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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국의 식당 주인이나 내 선배 같은 사람들이 ‘제 발을 저리게 만든’ 역사가 인류가 성취한 가장 큰 진보 중의 하나이며,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보내는 부당한 혐오와 편견을 줄여 가는 과정은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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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에 대한 것이든 지역에 관한 것이든 종교의 문제이든 성적 정체성의 문제이든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시작은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며, 최소한 속으로는 불쾌하더라도 그를 드러내지 않는 일이며, 본의건 본의가 아니건 삐져나왔을 경우 주위의 눈총을 의식하고 면구스러워하는 분위기의 조성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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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나는 걔들을 싫어하는데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형용 모순이다. 차별 철폐의 첫발은 혐오받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황인종들은 싫은데 차별받으면 안되지.” 그리고 “전라도 애들 싫은데 불이익받으면 안되지”라는 말을 듣는 황인종들과 전라도 사람들의 심경을 짐작한다면 “나는 동성애 싫은데 차별에는 반대해” 소리를 해서는 곤란하다. 정말로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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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인권 변호사 문재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우리 사회 인권의 현주소를 옛 지번으로 바꿔 버리는 일이며, 우리 스스로 뻔뻔해지는 일이고,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타고 발버둥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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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정권을 교체하고 싶어하는가.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어서는 아니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꾸고 싶어서가 아닌가. 부당한 권력과 금력의 횡포로부터 인권이 보장되고 보다 자유로운 사회로 나아가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인 인간의 존엄성이 구현되는 나라에 살고 싶다는 소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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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두를 위해서라도 지금껏 권리가 제한되고 차별받아 온 사람들, 편견과 혐오의 제물임을 감수해야 했던 이들이 받아온 고통에 대한 책임감을 공유하는 일 또한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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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존엄한 권리를 가진 인간을 그들 본연의 정체성을 이유로 혐오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또한 그 혐오를 고의든 무심코든 노출하는 것은 자신의 치부를 대놓고 과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부끄러움이다. 우리는 부끄러움에 좀 더 민감해져야 한다. 최소한 정말이지 최소한 “나는 너희들이 싫은데 차별에는 반대해 줄게” 류의 비열한, 정말이지 비열한 모순형용은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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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물었다. “도대체 (일본에서)조센징이 받는 차별하고 동성애자하고 어떻게 비교할 수 있나요?” 어이가 없었다. 대관절 무엇이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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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는 명백한 실수를 했다. 동성결혼 법제화에 반대하는 뜻이었다고 해도, 엄연히 그의 워딩은 '동성애에 반대한다'였다.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된다. 그런 뜻이 아니었으며 성 정체성 문제로 고통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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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실수를 쉴드치고 그 논리를 대변하기 위해 쏟아져 나온 명백한 혐오발언들이다. “나는 동성애 졸라 싫은데 차별에는 반대해.” 이게 자그마치 ‘더불어’ 민주당의 부대변인 출신 인사의 포스팅이었다. 우리는 몇 년 후 그가 ‘과거의 오늘’에서 그 포스팅을 보고 얼굴이 벌개져서 쥐구멍을 찾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포스팅에 호응하여 “맞아. 내가 싫은 걸 우짜라고.”를 부르짖는 사회, 그건 바로 지옥의 전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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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_이게_뭐하는_짓이냐 #혐오발언_혐오한다

회의없는 믿음의 공포 by 산하

그냥 술 먹은 김에 

진돗개를 영물로 섬기는 사이비 종교 집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사이비 집단의 기준은 간단합니다. 개를 섬기든 번데기를 섬기든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그건 사이비가 아닙니다. 재산을 헌납하라거나 그 집단 내의 불신자에 대하여 물리적 압박을 가하거나 구걸을 시킨다거나 기타 불법적 행위로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해치지 않는 한 종교의 자유에 해당할 겁니다. 하지만 개가 아니라 거룩한 하느님을 섬기든 세상없는 부처를 모시든 사람에게 해로운 짓을 시키면 그건 사이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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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진돗개를 섬기는 집단 속에서 크던 아이 하나가 맞아 죽었습니다. 악귀가 씌웠다는 이유로 세 살 아이가 엄마가 보는 앞에서 맞아 죽었고 암매장됐다가 불태워졌습니다. 내부고발자가 아니었다면 아이의 존재는 속절없이 묻힐 뻔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의 집단을 지키려고 내가 아이를 죽였다고 거짓 자백할 정도로 진돗개교(?)를 섬겼다고 합니다. 황망한 일이지만 저는 그 심리를 이해합니다. 아니 이해는 좀 과하고 그저 납득합니다. 즉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믿음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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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출동 SOS 24> 연출을 할 때 참 못 볼 꼴 안 볼 꼴 많이 봤지만 국제 호러 영화제 같은 데 출품해 봤으면 하는 아이템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아이템을 연출한 건 아닙니다. 즉 직접 그 엽기적인 공포와 대면한 건 어니었습니다, 그러나 동료 PD가 편집하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만 보면서도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습니다. 꿈에도 여러 번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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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은 교회가 뭔가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예배를 본 다음 교인들의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든다거나 심지어는 피를 철철 흘리며 나오기까지 한다는 겁니다. 대관절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촬영 테잎에는 그들의 모임 현장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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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이 둘러앉아 있는 교회 사무실. 그 모임의 주재자는 목사가 아닌 여자 집사였어요. 목사와 그 사모는 ‘영적 능력이 탁월한’ 그 집사에게 감화(?)되어 있었고, 다른 신도들도 그 집사를 받들어 모시다 못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한다고 했지요. 한참 무슨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문제의 집사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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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손에 뭘 들고는 옆에 있던 여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무시무시하게 두들겨 패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맞는 이는 저항의 몸짓은커녕 한 대라도 더 맞아야 한다는 듯 피하지도 않고 그 매를 받아냅니다. 매에는 장사 없다고 윽 윽 신음과 비명이 터져 나오는데도 때리는 자와 맞는 자 둘 다 초지일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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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도대체 왜 저러는 거예요?” 
“사람들한테 악령이 깃들어 있어서 쫓아내는 거랍니다. 저러면서 돈도 갖다 바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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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을 쫓기 전에 사람 먼저 잡을 것 같아 우리가 확보한 영상을 근거로 부랴부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을 때 또 한 번 아연실색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도들 가운데 누구도 폭력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집사님의 행동은 자신들에게서 사탄을 몰아내려고 한 것일 뿐이라며 집사를 일치단결 감싸고 돈 거지요. 그 옛날 대도 조세형에게 털렸던 고관대작들은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도둑맞아도 잃어버린 것 없다고 잡아뗐다더니 피가 터지도록 두들겨 맞은 사람들이 자기는 은혜를 입은 것뿐이라며 아우성을 치니 경찰이고 제작진이고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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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문제의 집사가 카메라 앞에서 신도들 하나 하나에게 매우 정중하고 간절하게 사과를 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 아 이 ‘년’ (여혐이라고 몰려도 이 말은 할랍니다. 미안하지만 해야겠어요.) 머리 정말 잘 돌아가는 년이었습니다. 증거 다 있는 마당에 ‘개전의 정’과 ‘재발 방지의 의지’를 보여 이 자리를 빨리 모면해 보자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더 혀를 빼물 일이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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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받던 아줌마 하나가 언성을 높이면서 집사에게 항변을 하는 거예요 “집사님이 뭘 잘못했어요? 집사님이 날 살렸어요. 날 살렸잖아요.” 집사는 계속 잘못했다고 연거푸 고개를 숙이는데 그에 따라 아줌마의 목소리도 더욱 단단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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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님이 날 살렸어요! 집사님 사과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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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보니 이전 집회에서 막대기로 두들겨 맞아 피가 터졌던 바로 그 여자였습니다. 푸른 멍 자국 채 가시지 않은 눈을 크게 뜨고선, 안타까워 못 견디겠다는 듯 주먹을 꼬옥 쥐고 집사님은 죄가 없다고 외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는 동정의 마음이 아닌 공포의 감정이 스멀거리면서 온몸을 뒤덮더군요. 대관절 집사의 어떤 영적 능력이 그들을 휘어잡았는지 모르나 집사에 대한 믿음은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었고, 주위에게 전염되고 있었고, 그 공동체에 모인 사람들의 인생길을 송두리째 어긋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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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는 피해자들의 일치된 증언에 따라 풀려났고, 범죄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 한 그들을 해산시킬 도리도 없었던 바, 공포의 예배는 암암리에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목사의 사모 안에 파고든 악령(?)을 쫓아내려는 시도 와중에 목사 사모의 목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비극을 맞고 말았습니다. 목사 부인은 사망했지만 그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신을 치우지도 않은 채, 그 남편 목사를 비롯한 신도들은 썩어가는 시체 앞에서 부활을 노래하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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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들으며 “미친 사람들!”이라 일갈하지 않을 분은 드물 겁니다. 하지만 그 교회에서 집사에게 양순히 두들겨 맞던 사람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신질환자도 아니었고, 직장 생활도 버젓이 하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제 기억에는 의사도 있었습니다. 대기업 직원도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지 그들의 믿음이 지나쳤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 ‘지점’에서만 그 믿음의 강도가 강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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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어떤 악인도 그 속에서부터 철두철미 악하다고 보지는 않고 선의의 싹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았던 지옥같은 삶 속에서도 뭉클한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감동이 결국 사람들을 움직이고 변화시킨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일을 수도 없이 겪으면서 저는 사람을 별로 믿지 않게 됐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열렬하게,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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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목사 부인이 목이 부러져 세상을 떠난 뒤 그 시신은 썩어 진물이 나와 그 방바닥이 시꺼멓게 될 때까지 방치돼 있었습니다. 그때껏 신도들은 부활을 의심하지 않고 찬송을 내내 부르고 있었고 목사라는 남편마저도 그랬습니다. 그 현장 사진, 노란 색 바닥이 사람 모양으로 시꺼멓게 변색됐던 그 자욱의 현장 사진을 저는 죽어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인간의 그릇된 믿음이 불러온 흉터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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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떤 분이 제게 고언을 주셨습니다 날이 서 있는 것 같다고. 최근에 많이 들은 얘기입니다.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고 그에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다만 변명이랄지 핑계랄지 덧대 본다면, 저는 요즘 우리 사회를 휩쓰는 것처럼 보이는 ‘불신의 확신’에 공포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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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불신이란 스스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불신을 불러일으킨 대상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상의 죄악이 불신의 모든 것을 합리화하지도 않으며 상대의 죄악을 근거로 한 불신이 정반대의 ‘믿음’으로 화할 때 그 파괴력은 더욱 커져서 주변 사람들을 불태우고 바스라뜨립니다. 홍위병들이 그랬고 크메르 루즈가 그랬고 나찌에 열광한 독일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 위에서 엄한 목사 목을 부러뜨린 광신도들보다 백배 천배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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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지 믿음이 과했을 뿐입니다. 멀리 갈 거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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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역사는 광신과 신념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오버’에 의해 움직여져 온 것도 사실입니다.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에 충만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어느 역사인들 꿈쩍이나 했겠습니까. 동시에 역사에서 가장 많은 피를 강요한 것도 신념이었습니다. 확신이었습니다. 그 신념에 반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이었고 확신을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응징 욕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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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더디 가더라도 사람 생각하자’( 아 이거 1988년도 구닥다리 북한의 슬로건인데) 는 마음으로 의심을 선택합니다. 회의(懷疑) 쪽에 붙습니다.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개의치도 않지만 눈곱만큼의 영향력(?)이 있다고 한다면 저는 뭔가에 열광하기보다는 이건 이상한데? 이의를 제기하고 나아가 열광이 강력할 때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랄하네 이건 설명하고 열광해라’ 내뱉을 수 있는 포지션을 택하려고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물론 그 말을 하려면 근거가 필요할 거고, 그 근거를 갖추려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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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없는 믿음 만큼 무모한 건 없습니다. 의심은 믿음과 결혼하기 전에 통과해야 할 장인 어른과의 만남과도 같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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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은 뒤에 푸념 길게 했습니다.

탈상을 위하여 by 산하

탈상을 위하여 

해냄 출판사에서 나온 해냄 클라시커 시리즈 중에 <역사와 배>라는 책이 있다. 노아의 방주부터 타이타닉 등등까지 역사상 유명한 배들의 사연을 모은 책이다. 그런데 그 책은 개정판을 내야 할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목숨을 싣고 물 속에 쓰러진 배, 세월호의 이야기를 빼놓고 <역사와 배>를 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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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3주년이었다. 몸이 안좋은 빛이 역력한 아내를 채근해서 기어코 안산에 다녀온 것도 어쩌면 오늘만큼은 3년 전 노란 슬픔으로 뒤덮였던 도시 안산을 다시 들르고 나름의 탈상(脫喪)을 하고픈 마음이었다. 상복을 입지는 않았으되 툭하면 문상객이 되어 눈물 콧물을 짜내야 했고 여막을 짓고 살지는 않았으나 가슴 한 켠에 뻘 같은 슬픔에 빠지곤 했던 이로서의 살풀이를 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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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하면 꽤나 세월호를 생각하고 산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세월호 서명 운동같은 걸 앞장서서 한 적도 없고 지하철역 입구에서 목이 쉬는 이들에게 음료수를 사다 준 적은 있으나 언감생심 마이크를 쥔 경험도 없다. 노란 리본을 가끔 달긴 했으나 지퍼에서 떨어져 나가면 뭐 그런가보다 생각했을 뿐이고 시위에 나가도 분노를 터뜨리기보다는 머리 수 채우는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탈상 운운할 처지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도 나는 안산에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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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핸드폰에 남긴 마지막 동영상을 꾸역꾸역 눈에 구겨 넣었다.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억지로 웃으며 농담을 나누던 아이들, 그래도 어른들 믿고 기다리면서 교회 나가는 아이들은 손잡고 기도하면서 구조를 기다렸던 아이들, “우리 동생 어떡하지”를 부르짖던 학생, 연극반 모두에게 사랑합니다 외치던 카톡들을 눈에 바느질하듯 새겨 넣었다. 이유는 그 순간의 공포와 고통을 1억분의 아니 1경 분의 1이라도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남은 것은 그들이 세상에 남긴 흔적이라 할 기억 교실이었다. 그것마저 내 눈에 넣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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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 교실은 안산교육청 별관에 있었다. 어떤 이는 단원고등학교에 이 교실들이 남아 있지 못하고 새롭게 조성된 것을 안타까워하지만 나는 거기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학교는 교육의 공간이고 새롭게 자라나는 고인의 후배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장이며 추모 공간에 교육의 터전이 밀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삶은 이어져야 하는 거니까. 분명한 건 단원고등학교에 있으나 이곳 안산 교육청에 있으나 그 교실들은 압도적이었고 오래 버티지 못할 무게로 나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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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마다 놓여 있던 추모 방명록을 좀 들추다가 이내 포기해 버렸다. “한 번만 안아보고 싶다.”며 자식을 부르는 부모의 글귀를 보고는 범연히 넘길 자신감을 포기했고 “아무개야 나 네가 원하던 그 대학 그 학과에 갔다. 너 대신 열심히 할게.”에서는 아예 손을 호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슴을 내려앉게 만드는 지뢰는 교실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들의 교실에 걸려 있던 달력은 그 폭발력이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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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행사가 표시된 가운데 수학여행이 표기된 달력. 저 달력에 수학여행 넉 자를 쓰면서 얼마나 설렜을까. 가방 안에 아버지 양주도 하나 숨기고, 장기자랑에서 부를 노래 가사도 외우고, 바다 위에서 맘에 뒀던 여학생한테 무슨 고백을 어떻게 해 볼까 인터넷 뒤적거리면서 그들은 얼마나 들떴을까. 그들은 수학여행 둘째 날 이후 결코 날짜를 셀 수 없게 됐고 달력에 적힌 일정들은 영원히 미답(未踏)으로 남았다. 그들이 탔던 배는 3년 뒤의 금요일에야 상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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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70%를 차지하는 지구에서 해난 사고는 인류의 숙명과도 같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어쩔 수 없는 사고로, 또는 전쟁에 휘말려, 사람의 어리석음과 오만 때문에 바다에 묻혔고 그들이 탄 배 역시 물과 역사 속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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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름을 기억하며 교훈을 삼았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맹세의 징표로 기록했고, 그릇된 관행을 바로잡는 척도로 세웠다. 풍랑을 만나 침몰하는 배 위에서, 구명정에 정원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부동자세로 서서 경례를 붙이며 울부짖는 민간인들을 떠나 보냈던 버큰헤드 호, 다리가 중심을 잃을 때까지 음악을 연주하며 승객들을 위안했던 불굴의 악사들을 태웠던 타이타닉호, 세월호와 비슷하게 급격히 침몰하여 끝내 건지지도 못했으나 스웨덴의 해상 안전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디딤돌이 됐던 에스토니아 호 등등 수많은 이름들이 있다. 이제 세월호도 그 중의 하나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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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상은 기억의 삭제가 아니다. 오히려 슬픔으로부터 돌아와 담담한 마음으로 현실을 돌아보고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되짚고 무엇이 문제였으며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살필 냉정함을 배가하는 일일 게다. 3년을 돌아본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가 잘한 것은 무엇이고 못한 것은 무엇이며 다시 세월호가 없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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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먼저..... 2학년 3반 교실 벽에 붙어 있던 김초원 선생님에게 보내는 아이들의 카드가 눈을 가린다. 4월 16일은 김초원 선생님의 생일이었다. 자신의 위치에 있었으면 생환 가능성이 컸으나 아이들에게로 달려갔던 김초원 선생님이 어떤 분이었는지는 아이들의 카드를 읽으면 명확하게 처절하게 알 수 있다. 천상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죽음까지 함께 한 그분에게 아직 이 뭐같은 대한민국은 ‘순직’이라는 두 글자를 그 영전에나마 바치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연금법이고 지랄이고 나는 그런 거 모른다. 그러나 목숨까지 바쳐가며 자신의 직분을 다한 사람에게 이런 저런 핑계로 그 사실을 기리는 단어조차 아까워한다면 그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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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304명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부활하기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사람들을 채근하고 일깨우는 존재로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기를 ...... 세월호를 기억하자 세월호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을 위해서.


역사를 바꾼 기름천막 by 산하

역사를 바꾼 기름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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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왕 랭킹을 매기자면 세 번째 이하로는 절대로 내려가지 않는 왕이 있다. 바로 숙종이다. 그의 빈번한 사극 출연은 그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한때 그가 목매고 사랑했던 희빈 장씨, 장희빈이 무슨 한국형 팜므 파탈 여배우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배역처럼 돼 있는지라 숙종은 싫건 좋건 호출이 돼야 하는 것이다. 김지미 남정임 윤여정 이미숙 정선경 전인화 김혜수 김태희..... 이름만 들어도 황홀해지는 연기자들이 나래비로 줄을 서 왔으니 숙종은 저승에서 뿌듯할까 아쉬울까. 

대개 드라마상에서 숙종은 지질한 존재로 그려진다. 여자들의 사랑 싸움에 놀아나고 베갯머리 송사에 홀딱 넘어가는 무능한에다가 한 번 삐지면 한이 없고 애정이 끓을 때는 그렇게 구수할 수가 없다가 한 번 식으면 개도 고개를 돌리는 죽무더기가 되는 나쁜 남자 말이다. 하지만 숙종은 몸은 좀 약했을망정 조선 왕조 왕 가운데 영조 다음으로 긴 치세를 누렸고 신하들의 머리 위에서 권력을 행사할 줄 알았던 몇 안되는 왕이었다. 한 예로 숙종은 그 치세 기간 몇 번씩이나 “위로부터의 정권 교체”를 단행한다. ‘환국’(換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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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초기에는 남인 정권이었다. 조정의 중심 세력을 갈아치우기보다는 편들어 주기 전술을 썼던 아버지 현종이 어머니 인선왕후가 죽은 뒤 일어난 제 2차 예송논쟁에서 남인을 지지하면서 남인, 그 중에서도 탁남(濁南)이라 불리는 세력이 숙종 초반의 집권 세력이 돼 있었다. 그 영수는 영의정 허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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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청나라에서는 삼번의 난이 거세게 일어났다. 청나라가 축출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일었고 ‘북벌’의 기치가 다시 등장했다. 숙종 2년 실시된 과거에서는 무려 1만 8천명의 무과 별시 급제자가 탄생(?)했는데 정묘호란이 일어나던 해인 1627년 5천 명의 무과 별시 급제자를 배출(?)했던 사실을 떠올려 보면 그 의도가 들여다보인다. 1만 8천 명의 무사들을 어디에 쓰겠는가. 그런데 북벌은 흐지부지됐고 이 1만 8천 대군(?)은 허울만 좋은 급제작 됐다. 별시에 급제하고도 그 대부분은 관직을 받지 못하고 그저 ‘선달’로 불릴 뿐이었다. 봉이 김선달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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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이 군비 확장의 주도 세력이 남인이었고 군의 지휘권을 쥐었다. 이는 곧 나이는 어리지만 보통내기가 아니었던 숙종의 비위를 거스른다. 즉위하자마자 열 네 살의 어린 임금으로서 서인의 대원로 송시열과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맞장을 떴던 숙종이었다. 숙종은 스무살도 되기 전 환국을 단행하여 탁남파 정권을 무너뜨리고 서인에게 정권을 넘긴다. 이를 역사에서는 경신환국이라 부른다.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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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경신환국의 중대한 계기로 얘기되는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기름천막 사건이다. 이미 나이 일흔에 이른 허적에게 숙종은 궤장을 하사하는 한편, 그 아버지 허잠에게 시호를 내려 원로 대신 대접을 해 주었다. 이런 성은을 입은 집에서는 당연히 잔치를 벌이게 마련인데 마침 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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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적의 집에서 잔치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던 숙종은 궁중에서 쓰던 기름천막을 가져다 주어 잔치에 차질이 없게 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숙종의 피를 펄펄 끓게 만들어 놓았다. “이미 가져갔다고 하옵니다” ‘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데가 없다”(普天之下 莫非王土)는 세계관이 지배하던 무렵, 왕의 물품은 곧 국가의 것이기도 했다. 그걸 허락도 받지 않고 스스럼없이 가져갔다는 말에 나이 열아홉의 숙종은 대로한다. “이 싸가지없는 것들 봐라!” 식으로 부르짖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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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선 병권부터 정리한다. 할아버지 효종의 총애를 받아 무신으로서는 임금의 최측근이라 할 승지에 임명되는 파격을 연출했던 당대의 무장 유혁연을 아웃시키고 외척 김만기로 하여금 군대를 장악하게 했고 서인들이 고변한 역적 모의를 근거로 허적 윤휴 등 남인들을 싹쓸이한다. 경신환국, 그 규모와 충격이 커서 경신대출척이라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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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천막 사건은 실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또 평소 허적을 좋게 생각하던 숙종이 기름천막 하나에 꼭지가 돌아 남인을 박살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이 역사를 바꾼 중대한 사실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이유는 권세를 빌미로 제 권리 밖의 일을 하거나 공공의 소유를 건드리거나 공적인 영역을 사적인 놀이터로 쓰는 행각이 어떤 참변을 가져다 주는가를 보여주는 적절한 예화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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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에도 자신의 칠순연이든 자식 혼례연이든 궁중에 있던 기름천막 정도 갖다 쓴 일은 수도 없었을 것이다. 숙종 자신도 별 생각 없이 “비가 오니 기름천막이 필요하겠다. 그거 좀 갖다 주려무나.” 했으니 ‘알아서’ 가지고 간 것에 대해 허 동작 한 번 빠르구나 웃고 넘길 ‘관행’일 수도 있었으리라. 어디 기름 천막 뿐이랴. 조선왕조실록에는 ‘관물’ (官物)을 사사로이 가져다 쓰고 ‘관노비’를 제 편하자고 맘대로 써먹은 ‘윗것’들에 대한 탄핵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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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 동안 상상 이상으로 무능하고 무지한 데다 공사를 완벽하게 헛갈려 버린 대통령 치하에서 대한민국은 무진 고생을 했다. 지난 겨울 주말을 촛불로 불태우며 얼마나 “주말이 있는 삶”을 목메어 갈망했던가. 어찌 어찌 감옥소 방도 제 방으로 착각하며 “도배해 줘!”를 부르짖는 저 철딱서니없는 사람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감옥까지 보내긴 했으나 우리는 절실하게 알고 있다. 자신의 공적인 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사람들을. 뼈아프게 경험해 왔다. 공공의 역량을 제 발품 머리품 줄이는 데 쓰던 이들의 개념 없음을. 또 진저리치게 겪어 왔다. 공사를 헛갈리고도 그걸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관행인데 뭐가 문제야?” 하던 이들의 당당함을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대한민국은 경기도 의왕의 교도소에서 제2 국무회의를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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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고 한 번 체한 음식은 그 뒤로도 꺼려지는 게 사람이다. 이런 공과 사의 혼용, 그 자체에 대한 무덤덤, 그 일이 불거진 뒤의 형식적인 사과의 도식은 이제 알러지를 넘어 조건반사적으로 짜증이 난다. 국회의원인 남편의 보좌관을 자신의 강연 일정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잡무에 동원했다는 안철수 후보 부인의 이야기에 혀를 찼던 이유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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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기억하지 못했던 것은 그 보좌관이 남편의 사비를 들여 채용한 비서가 아니라 나랏돈을 받고 일하는 국회의원 보좌관이며, 대선 후보로서가 아니라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과 권능을 수행하기 위해 공적으로 채용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남편의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목포에 가든 울릉도에 가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나랏돈을 들여 운영되는 국회의원 보좌관이 김미경씨의 시다바리가 되거나 강의 자료를 손봐 줘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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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머 나만 이렇게 했나 국회의원 300명 중 안그런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말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그 가운데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은 그분의 남편 뿐이지 않은가.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다. 잘 닦아야 한다. 그런데 사과의 방식이 ‘공보실을 통한’ 사과인 것이 매우 목에 걸린다. 앞으로 숱하게 마이크 앞에도 서야 하고 카메라 앞에도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될 공인이 될 텐데 이 정도 사안에서는 당당하고도 공손하게 제일 중요한 거, '공개적으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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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로 안철수 후보 사퇴를 논하는 건 오버다 . 그러나 억울해 해서도, 소나기만 피하자 해서도 안된다. 기름천막 하나도 역사를 바꿀 수 있었다.


친일파의 한국현대사를 읽고 by 산하


<친일파의 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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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끝난 이야기겠지만 이재명 성남 시장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던 이유가 몇 개 있다. 그 중의 하나는 그의 ‘친일청산’ 주장이었다. 지난 2월 14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친일 청산 없이 독립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친일부패독재 세력을 청산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말 잘하기로는 민주당 세 후보 중 으뜸이었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이재명 시장의 말이고 많은 이들이 사이다 한 잔처럼 시원해 했지만 나에게는 술 제대로 퍼먹은 다음 날 물 없이 먹는 군고구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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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갑갑했을까. 두 단어 다 막혔다. '친일'파는 과연 누구이며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가 막막하기 때문이고 '청산‘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본원적인 ’뿌리로부터의 청산‘을 바란다면 이재명 시장은 탈당부터 해야 한다. 우리 나라 야당 이름의 대명사격인 ’민주당‘이야말로 친일 지주 세력이 중심이 돼 창당했던 보수정당 한국민주당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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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얘기만 나오면 비분강개가 하늘을 찌르고 심지어 어느 배우의 경우 부모도 아닌 외증조부까지 시비를 거는 세상인지라 사실 말을 꺼내기는 조심스럽다. 더구다나 그를 청산하지 않고는 우리 사회가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다는 호령이 난무하니 어찌 역사의 반동을 자임하기가 쉬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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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문은 그 거리낌이 클수록 커지는 법이다. 이미 백골이 진토된 친일파들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물론 “그들의 후손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며 부를 대물림하고 있고 독립군들의 후손은 곤궁에 시달리고” 있는 건 가래침이 생성될 일이긴 한데 연좌제 폐지된 나라에서 후손들에게 어찌 그 책임을 물으며 독립 유공자들의 문제는 친일청산과는 별개로 나라가 나서 보훈해야 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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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물 없는 고구마 같은 친일 척결론을 듣다가 책방에 들렀을 때 손에 잡힌 책이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정운현 저, 인문서원)였다. 정운현 선생이 친일파 문제에 천착한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님은 익히 알고 그 깊이가 상당함도 알지만 책 하나 붙잡고 정독한 것은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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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 책은 전문 역사서라기보다는 개괄서 같은 책이다. 책 표지에 소개가 벌써 그렇다. ‘나라를 팔아먹고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악질 매국노 44인 이야기’ 책 한 권에 무려 마흔 네 명이나 되는 ‘악질’들이니 이 책은 정물화라기보다는 스케치에 가깝다. 주마간산도 엄염히 산을 보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할 때 이 책에서는 실로 다양한 ‘친일파’들의 면모를 대충, 그러나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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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악질 노덕술같은 인간도 등장하지만 뜻밖에도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악질 매국노’와는 사뭇 거리가 먼 최승희도 별안간 등장한다. 거기에 일제 강점기 시절 관직을 지낸 이 치고는 거의 유일하게 뼈저린 반성과 자기비판을 했던 이항녕 선생도 소개되고 아득한 옛날 드라마에서 “민나 도로보데스”의 유행어를 낳았던 공주 갑부 김갑순도 도개를 내민다. 정운현 선생이 뜻한 바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나는 그가 소개한 친일파 44인을 접하면서 그들의 비겁함과 사악함에 비분강개하기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들이 펼쳐 보이는 삶의 나이테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더 쏠쏠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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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은 나쁜 놈들로 치면 되지만, 아버지는 나라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눈이 멀고 자신은 기생으로 팔려갔다가 절에 맡겨져 머리를 깎였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야 사람 대접을 받고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정자 같은 여자에게 애국심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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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장 집 앞마당에 매일같이 생선을 놓고 간 생선장수 문명기. 날을 잡아 붙들고서 영문을 물으니 “서장님께서 치안을 잘 유지해 주시니 저 같은 사람도 생업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 달리 보답할 길은 없고 생선이라도 드려 아침 밥상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하여 일본 경찰서장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만들고 “뭐 도와 줄 게 없는가?” 질문을 기어코 빼낸 뒤 생선 도매점 소갯장을 받아내고 그걸로 경북 동해안 일대를 휩쓰는 거부가 된 문명기는 우리 주변에도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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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으로서 일본인의 신사에 근무하는 ‘신직’(神職)을 맡아 어느 일본인보다도 더 일본인스럽게 살았던 이산연 같은 사람도 새로웠다. 그는 조선인과의 관계를 끊고 집안에서도 언어와 의복은 물론 음식까지도 야단스럽게 일본식으로 살았다고 했다. 요즘도 극기훈련 한답시고 얼음 깨고 들어가서 물 안에서 그악그악 하는 훈련(?)을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그것도 일제의 잔재라고 한다. 이산연도 즐겨 그 짓을 행했다고 하고. 그런데 그는 해방 뒤 반민특위에 끌려가지만 특별한 악행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를 판정받는다. 당시 그는 해방된 조선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쳤고, 그는 일본을 어떻게 보았으며, 민족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그 시대는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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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무협지가 아니다. 정파와 사파가 나누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정의가 승리하는 것도 아니며 사파라고 해서 모두 말살해야 할 존재도 아니고 정파라고 해서 옳은 것만도 아니다. 또 사람은 위인전처럼 해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세상 없는 위인도 지질한 인간의 면모를 지니며 실수를 하고 결점을 있는대로 발휘한다. 오류를 저지르고 파렴치한 면도 어김없이 있다. 그러면서 결국 인간은 역사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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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친일파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죄상을 밝혀 ‘청산’하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행적은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역사에 기록돼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나쁜 놈으로, 비겁한 놈들로, 돌아볼 가치가 없는 자들로 치부하고 친일파 낙인을 찍는 데 그친다면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울 것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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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이 왜 일본에 기대야 했는지, 윤치호의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최린의 배신과 회개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서는지 그들의 시대와 오늘의 세상을 끊임없이 ‘링크를 걸고’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들에게서 무엇을 수용하고 배척해야 하는가를 밝히는 것이 더 소중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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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으로 낙인찍고 명예형 내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친일파의 ‘이름’이 아니라 그 ‘행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해 보는 일이다. 친일청산이란 그들의 삶을 냉정하고 편견없이 바라보고 그들의 빛과 그림자를 가려내어 오늘에 적용시킬 때,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과거의 오류의 자장에서 벗어나게 만들 때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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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책 제목이 와 닿는다.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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