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유감

한겨레 21 노땡큐 플러스 알파 


 

방송 일을 하면서, 특히 고발 프로그램을 하면서 수많은 분노와 실망을 경험했고 허탈감에 어깨를 늘어뜨리거나 배신감에 애꿎은 벽에 주먹질을 한 적도 적지 않다. 그 감정들의 원천은 한 개인일 수도 있었고 특정 기관이기도 했고, 또는 어떤 광범위한 집단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 감정의 파동을 가장 극심하게, 그리고 골고루 느꼈던 대상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 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교육계’다.


무럭무럭 자라는 새싹들과 푸르러지는 동량들에게서 삶의 보람을 거두는 대다수의 선생님들께는 매우 죄송한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자꾸만 엇나가는 아이들을 감싸고, 안팎으로 상처 가득한 아이들을 끌어안느라 여념이 없는 분들께 결례가 될 수 있는 표현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전체가 바담 풍이라고 읽더라도 너희는 바람 풍이라고 읽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시는 강직한 사표(師表)들에게는 송구스런 마음 금할 길 없다. 문제는 응당 그러하리라 생각했던 믿음의 전복을 여러 번 목격해야 했다는 데 있다.



학교 앞에 살면서 ‘싸이코’라는 놀림을 받는, 그 놀림을 못 참아 몽둥이를 들고 뛰어다니다가 정작 걸음 빠른 악동들은 놓치고 엉뚱한 저학년들만 잡아 족치는 통에 온 동네의 원망을 샀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슬프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한 학교를 다니는 아주머니의 딸은 소문난 왕따였다. 쓰레받기에 담긴 먼지를 도시락에 쏟아 부었다던가, 신발을 감춰 버렸다던가 구구절절 읊기도 싫은 일화들이 많은데, 이 문제에 대한 담임 교사의 명언은 실로 귀에 쟁쟁한 것이었다.


“왕따 아닙니다. 현대인의 고독 같은 거예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런 입으로 항의하러 간 아버지에게는 심드렁하게 전학을 권유했다고 한다. 어디 친척집 없냐고. 그리로 보내 버리라고. 아이가 문제라고.



 솔직히 말하여 그분에게 삶의 보람이란 자라나는 새싹 아닌 커져가는 연금 액수에서 비롯되는 걸로 보였고,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가 받는 상처 따위는 책상 위에 쌓이는 공문 낱장보다 못한 존재일 뿐이었다.



 물론 그 교사 하나를 가지고 교육계 전체를 평가하는 엄청난 어리석음을 범할 이유는 없다. 뉘 없는 쌀이 어디 있으며 티 없는 옥이 그리 흔하랴. 하지만 교사나 교장 개개인의 품성이나 사고가 아니라 이 나라의 교육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일선 학교를 지휘 감독한다는 조직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뚱딴지들이 멧돼지처럼 종횡무진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 나는 할 말과 남아 있던 믿음을 동시에 잃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받아쓰기 커닝을 했다고 해서 한 여교사는 100대의 몽둥이질을 퍼부었다. (아, 100대는 과장이라고 했다. 80대였다고 한다.) 한 번에 때리기엔 버거웠는지 쉬는 시간마다 불러내서 스무 대씩 ‘야구하듯 풀스윙으로’ (같은 반 아이의 표현) 때렸다고 했다. 그 일이 있은 뒤 또 한 여자 아이에게 수십 대의 매질을 퍼부었고 보랏빛으로 변해버린 아이의 볼기짝이 인터넷에 떠다니면서 문제가 불거지고 말았다.


교육에 대해 일가견은 전혀 없으나 같은 반 친구가 수십 대의 매질을 당하며 울부짖을 때 맞는 아이는 고사하고, 그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어떤 상처를 받았을 지는 진저리치게 이해할 수 있다. 체벌에 익숙한 세대의 일원으로서도 단언하건데 그것은 폭력이었고 교사가 초등학교 2학년에게 가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이것이 아동학대가 아니냐는 질문에 교육청 관료는 또 이런 명언을 남겨 주셨다. “콩쥐 팥쥐처럼 이유 없이 밉다고 하는 것이 학대지요. 이건 체벌이 심한 거지요.”



 그리고 교육청이 최종적으로 정한 징계는 정직 3개월이었다. 대단한 중징계라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성추행을 하고서 고발당한 교사도 정직 3개월 후 교단에 섰다. 그런데 바로 한 달 뒤 일제고사를 보지 않을 권리를 알려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정직도 아니고 해임도 아닌 파면이 선고되었을 때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청이라는 곳이 주관하는 교육이라는 것의 목표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를 성추행한 자도 석 달만 마늘과 쑥 먹고 참으면 다시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학교 교단에 현신하는 판에, 아이들의 권리를 밝히고 논한 것에 파면장을 내던지는 교육의 기준은 무슨 손오공의 여의봉이란 말인가.



 얼마 전,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시국선언 참여 교사에 대한 징계를 않겠다 (엄밀히 말하면 사법적 판단을 기다려 보겠다)고 선언하자마자 교육부는 그야말로 펄펄 뛰었다. “수사 기관으로부터 수사 결과를 통보받고도 징계를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이며 직무이행명령은 물론 고발까지 하겠다며 세우는 서슬이 시커멀 정도로 시퍼랬다,



 그러나 선거법상 공개가 명시된 재산을 누락시킨 혐의로 고발된 서울시 교육감이 대법원 최종 유죄 판결로 퇴장하기까지, 교육부가 무슨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는 꿈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수사 기관으로부터 수사 내용을 통보”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이것은 누구의 직무유기인가.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도 어서 징계하라고 으르대는 성마름과, 3심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꿈쩍도 않는 여유로움이 공존하는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의 ‘다중인격’에 당혹감을 금하기 어려운 가운데 진하게 우러나는 질문 하나가 있다. 대관절 교육과학기술부는 무슨 교육을 통해 어떤 인재를 길러내고 싶기에 이런 모범을 보여 주시는 것일까

by 산하 | 2009/11/16 13:38 | 썸데이서울 - 이런저런 얘기들 | 트랙백 | 핑백(1) | 덧글(14)

가장 아름다왔던 키스신

 섹스신은 고사하고 키스신만 봐도 온몸이 곤두서고 동공이 확장되며 평소 두 배의 침이 생성되던 혈기왕성 생기발랄하던 고딩 시절의 일이다.   집이 멀다는 핑계로 학교 앞에서 하숙을 하던 나는 부모님의 애타는 의도와는 달리 인근에 위치해 있던 동의대학교 대학 문화 탐방에 열심이었다.   아니 열심은 아니었다. 나름 공부도 했다. 


 전교 1등짜리들을 꼬셔서 학교 앞 다방에서 절찬 상영 중인 포르노를 보러 가자고 선동한 것은 절대로 내가 아니었지만, 그 꽁무니에 끼어 있었던 것은 맞고, 머리 식힌다는 핑계로 핑크빛 자욱한 커플들의 데이트 현장에서 사이다 시켜 놓고 두리번 거린 적도 꽤 됐다.  공부도 굳이 대학 도서관에 올라가서는, 공부를 하는 건지 연애를 하는 건지 모르는 남녀 앞에서 공부나 해라 이거뜨라 빈정거리면서 성문종합영어 공부하기도 할 때는 이상하게 뿌듯해지기도 했다.  


 어느날 밤이었다.  자율학습 끝나고 하숙집으로 털레털레 오다가 웬지 또 농땡이 겸 산책이 하고 싶어졌다.   이럴 때 쪼가리 (당시 여자친구를 말하던 우리 은어) 하나쯤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예나 지금이나 그런 쪽으로는 재주가 없는 처지에 그런 호사는 누릴 수 없었고, 동의대 앞 가파른 비탈길을 나 홀로 땀 흘리며 걷는 수 밖에 없었다.  참 나 홀로는 아니었다.  한 녀석이 따라붙었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공부하기 싫었던 이유 이상이 있겠나.  


 둘이 하릴없이 캠퍼스를 쏘다니다가 자정을 넘겨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친구 녀석이 내 등을 쳤다.   놀라 바라보니 레지스탕스 포즈로 나무 뒤로 몸을 숨긴다.  무장공비라도 나타났나?  아니면 설마 학생주임? 어리둥절 속 공포감을 숨기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내 뒷덜미를 녀석의 손이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자신의 그늘 속으로 끌어들이는 게 아닌가. 


 이기 미칬나? 하고 험악하게 녀석을 쏘아보는데 녀석의 검지손가락이 잽싸게 그 다문 입술을 가린다.  쉿!!!!!!    뭔그때 그 순간 역시 단순한 장난은 아님을 깨닫는데는 0.1초가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눈치가 없다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고딩으로 살아온 처지에 이런 형국에서 와 그라는데 참말로를 부르짖으며 분위기를 깰 고문관은 아니었다.  뭔가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전신을 휘돌고 지나갔다. 


 간첩을 발견한 초병과 같이 우리는 시선의 총구를 날카로이 겨누었다.  어둠이 뒤덮은 캠퍼스의 커다란 나무 밑에서 암약하고 있었던 것은 간첩이 아니라 청춘남녀였다.   한 남자와 여자가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닿아서는 정다운 속삭임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영화 '개인교수'와 '마이튜터'와 이대근 주연의 각종 영화들에서 보여 주었던 에로틱한 장면의 전단계를 실물로 보여 주고 있었다.  내 친구는 단언을 했다.  저 둘이 키스하지 않으면 내 손가락을 소신공양하리라.   


 혹 소리가 날까봐 바께스로 넘어가는 침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전방경계감시에 충실하던 우리에게 드디어 보람이 찾아왔다.  훤칠한 키에 장발족이던 남자가 조심스레 머리를 숙였고, 애타게 올려다보던 단발의 여자와 맞붙더니 요상하나 생생한 소리와 함께 두 머리가 기묘하게 비벼지기 시작한 것이다.   와아..... 소리 없는 아우성이 두 고딩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연인들의 몸짓 하나 손짓 하나 소리 하나가 번개같이 번득였고 천둥같이 귀를 파고들었다.  친구 녀석은 "쥑인다"를 연발하고 있었고 나는 더 떠들면 "쥑인다"라고 윽박질렀다.  연인들의 키스는 관객이 만족할만큼 길었고 그렇게 느껴질만큼 달콤했다. 


 인적은 거의 없는 시간, 잘하면 그 이상의 행동도 관람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충만한 차에 한 버르장머리 없는 승용차의 헤드라이트가 연인들 근처를 할퀴고 지나갔다.  연인들의 존재를 알고 비춘 것 같지는 않았지만 22년 전의 순진한 대학생들을 놀래키기에 충분한 방해꾼 노릇을 했다.  연인들의 머리는 즉시 떨어졌고 둘은 두리번 거리면서 손을 꼭 잡은 채 어둠을 벗어나 가로등 아래 빛의 세계로 걸어나왔다. 


 에이 끝났네 망할놈의 자가용을 탓하면서 우리 초병들도 철수를 서두르는데 갑자기 친구 초병이 이미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성미 급한 내 뒷덜미를 또 잡아챘다.  뭐야 또 시작하나?   쳐다봤더니 친구 녀석은 입을 딱 벌리고 손가락으로 연인들 쪽을 가리키고만 있었다.  여자가 무슨 탤런트인가?  아니면 저 바다에 누워~~를 불렀던 동의대 출신 듀엣인가? 다시금 감시의 눈초리에 발전기를 돌릴 참이었지만 곧  내 입에서는  초병으로서의 임무를 망각한 우이???? 소리가 독재타도 구호처럼 크게 튀어나오고 말았다. 
 

  키스를 위해 머리를 숙인 장발족 남자는....... 남자가 아니었고 그 입술을 해바라기처럼 기다리던 단발의 여자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성별은 바뀌어 있었다.  행복한 미소를 그득 채운 채 손 꼭 잡고 걸어나오는 연인들이 백일하에 아니 백열전구 하에 드러났을 때 다시 한 번 확인하니 그들은 농구 선수처럼 보이는 장신의 여자와 요즘의 유행어로 치면 10센티 루저에 해당하는 남자였던 것이다.    그들은 근처 건물 계단에서 피자 한 판이  들어갈만큼 입을 떡 벌린 채 못박혀 있는 스포츠 머리 고딩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포즈를 팔짱으로 바꾼 채 밀어를 나누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들이 사라진 한참 뒤에도 멍하니 서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둘은 데굴데굴 구르며 웃기 시작했다.  그냥 웃겼다.  이전에도 없었고 그 뒤로도 드물 열정적인 키스신의 주인공의 '언발란스'는 끝없는 폭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남자보다  키 큰 여자가 없을리 없고, 둘이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법은 안드로메다에도 없겠지만 실제로 우리 어머니는 우리 아버지보다 종이 한 장 정도 더 크시지만, 나는 가로등 밑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진귀한 연인이 던져준 아연한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때까지 침 꼴깍 꼴깍 넘기며 봤던 키스신의 신비도, 혹시 이른바 '벽치기' (흠 애들은 가라~~~)라도 보여주지 않을까 넘쳐났던 기대도 꺽다리녀와 짧은남의 출현 앞에서 비누방울처럼 터져 버렸고, 우리는 미친 사람처럼 깔깔대면서 캠퍼스를 굴러야 했다. 



 그러나 오늘 그 키스신을 돌이켜 굽어보매,  자신보다 10센티는 적어 보이는 남자의 팔에 곱게 손을 끼운 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늘씬한 키의 여대생은 22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신선함으로 기억의 담장을 뛰어넘는다.   "남자 집이 재벌일끼라" 하는 내 친구의 심술궂은 추정 따위는 걷어차 버리고, 나는 그들이 진실된 마음을 나누는 연인이었다고 믿고 싶다.   "180이하는 루저"라는 대본을 써서 내미는 '방송인'들이 출몰하고 그걸 그대로 언급하는 꼬라지가 방송을 장식하는 세상에서 사랑하는 남자의 입술을 향해 수줍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랬던 듯) 고개 숙이던 여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녀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말렸을 것이다.  "여자는 얼굴 남자는 키"라는 오래된 명제를 내세우면서 어디서 만나도 그런 비누곽다리 왕자를 만나느냐며 타박을 놓았을지도 모르겠다.   둘의 모습을 보기만 하고서도 폭소를 가눌 수 없었던 나와 친구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은 킬킬거리는 웃음 소리와 웃음 참느라 끅끅거리는 신음 소리에 파묻혀 지냈을 수도 있으리라.  그들이 그런 잡소리들을 들어메치기로 풀쳐 버리고, 그 가을밤의 키스와 같이 달콤하고 짜릿한 사랑을 계속 영글어 나갔기를 오늘에야 바란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박수받고 갈채받아 마땅한 위너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키스는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키스신이었다.




by 산하 | 2009/11/14 20:25 | 썸데이서울 - 이런저런 얘기들 | 트랙백 | 덧글(3)

비겁하지 말자

'루저' 사건으로 세상이 좀 시끄러웠다.   키도 경쟁력인 세상에 180 이하의 남자들은 '루저'라고 생각한다는 한 여대생의 발언은 2009년 현재 평균 신장 175센티 이하에 머물고 있는 대한민국 남성들을 격노시키기에 충분했다.  나 자신 180은 커녕 170 고개에 바둥바둥 턱걸이하고 있는, 현격한 '루저'로서 심히 안녕치 못하다.    


 오늘 그녀가 올린 사과문을 읽었다.  그 이름도 끔찍한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과거의 가방 수선 경력부터 오늘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만천하에 공개되어 버린 젊은 여성의 공포와 당혹감이 스며나왔지만 그래도 "말조심해야지 그러니까....."하는 루저로서의 복수심을 버리지는 못하고 있었음을 고백해 둔다.  하지만 읽다 보니 걸리적거리는 대목이 있었다. 
   


  "작가들에게서 받은 앙케이트에 O, X 형식으로 짧은 답을 하게 됐고 그것을 참고해 만들어진 대본을 가지고 11월1일 녹화를 했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문제의 '루저녀'가 키 작은 남자들에 관심을 갖지 않음은 앙케이트를 통해 드러났을 것이다.  이 현격한 루저가 볼 때 매우 불쾌하고 비합리적이며 바보같은 발상이긴 하지만 어쩌랴 그것은 그녀의 자유의지일 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을 공개된 장소에 끌어낸 것은 앙케이트였다.  아마 키 작은 남자는 남자로 안보인다  정도의 앙케이트 문항이 있었을 것이고 당연히 루저녀는 O에 응했으리라.   그런데 그  O가 '루저'라는 , 예리하고 뾰족하여 사나이 가슴에 박혀서 돌아오지 않는 화살같은 단어로 승화된 것은 분명 다음과 같은 상황이 지대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제일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 '루저'라는 단어는 작가 측에서 대사를 만들어 대본에 써 준 것이며,  대본을 강제적으로 따라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방송이 처음이었던 저와 같이 나왔던 여대생들에게는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대본이 많은 도움이 됐고 대본을 따르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래서 낯선 성황에서 경황없이 대본대로 말하게 됐다."

 
  루저라는 표현의 지적소유권이 제작진에게 있다는 말이다.   물론 루저녀 스스로 인정하다시피 '스물 두살의 자유의지와 사리판단 능력을 갖춘' 여대생이 그 대본을 무비판적으로 따른 것은 잘못이라 하자.  하지만 일반인들과 함께 스튜디오 녹화를 해 본 사람으로서 나는 이 사태의 책임은 그녀보다는 제작진에게 더 크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통 일반인 출연자는 평생 조명 아래에 처음 서는 사람들이다.   그 조명이 얼마나 뜨거운지도 모르고, 자신의 주위는 대낮같지만 한 치 앞은 어둠인 기묘한 상황에 처음으로 직면하는 사람들이다.   리허설 때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과 하라고 주문받은 말의 경계가 어느 새 뒤죽박죽이 되고, 옆에서 묻는 말조차 잘 들리지 않기도 한다.  무슨 말을 빼먹을라치면 앞에 선 작가와 조연출이 스케치북에 큼직하게 써서 펄펄 뛰며 피켓팅을 하고 있다.  


 그 스케치북에 "루저! 루저!"라고 쓰여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쓰여 있지 않았다고 해도, 리허설과 사전 미팅을 통해 이미 두 번 세 번 주의를 환기받은 이들로서 실수가 아닌 주관적 의지로 대본을 무시하는 일반인 출연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즉 저 맹랑한 단어 '루저'는 루저녀의 발언이 아니라 웃음과 황당함을 유발하고,  "내가 능력있으면 되지 않아? 그렇게 자신없어?"라고 강하게 나오는 크리스티나와 대비되는 모습을 연출하려는 의도에서 산출된 단어였다고 나는 판단한다.  '루저' 운운이 제작진의 의도를 벗어난 돌발발언이었다면 절대로 방송을 타지 못했을 것이다.  PD들 그렇게 허술하게 방송하지 않는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제작진의 해명이었다.  제작진의 녹화와 편집을 거친 방송에서 한 '민간인'이 방송상 제기된 실언으로 말미암아 공인된 동네북이 되는 판에 "대본은 토론 진행상 참고 자료로 쓰일 뿐, 강요되는 것은 아니다"고 발을 빼는 모습은 매우 아름답지 못했다.    아무리 야생을 찾고 생생을 달고 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대본은 존재하고, 그것은 제작진의 연출 의도를 반영하며 출연자에게 모범답안으로 제시된다.   "꼭 이대로 하시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취지로..... 아셨죠?"  이 요구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강요는 아니라 하지만 참고(?)는 더더욱 아니지 않나?  (물론 '미수다'의 녹화만은 특수하게 진행된다고 강변한다면 할 말은 없다.)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길 의사가 없었다'는 제작진의 해명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아무렴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에서 그럴 의사를 가지고 프로그램 만드는 인사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외모지상주의의 슬로건 같은 희한한 대사가 녹화때 NG 나지도 않고 편집 때 걸러지지도 않은 채 방송에 나갔다는 사실 아닌가.   루저녀에 대한 마녀사냥을 걱정하는 마음씨는 칭찬할 만하지만,  우리가 마녀를 만들었습니다 하는 반성이 앞서야 할 일이었다.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길 의사가 없었다는 변명보다는 외모지상주의에 제작진 스스로 둔감했다는 반성이 더 절실한 상황이었다.    


 
 제작진의 소심함(?)만 탓하려고 끄적이기 시작한 게 아닌데 너무 길어졌다.  주지하다시피 루저녀의 사생활은 이미 융단폭격을 받았고 소속 학교까지도 싸잡아 욕을 먹고 있으며, 개념없는 외모지상주의적 발언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거기에 미수다 폐지 서명 운동도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뉴스를 들으면서 내 머리에 치미는 단어 하나는 비겁함이었다.  비겁하다.  정말로 비겁하다.   더군다나 그 폭격과 욕설과 폐지 운동의 이유가 "개념없는 외모지상주의 발언의 공개적 천명"이라면 비겁함을 넘어서 야비하기까지 하다. 


  못생긴 여자 앞에서 구역질을 하는 코미디에 대해서,  어떻게 그런 다리로 치마 입고 다니냐는 농담에 대해서, 얼굴이 무기니 견적이 얼마니 하는 못생긴 여자는 게으른 여자니 하는 발언에 대해서 항의하고 분노했던 기억이 있는가.  그런 발언의 당사자가 융단 폭격을 맞고, 사생활이 낱낱이 파헤쳐지며, 그 여성 편력들이 처절하게 공개된 적 있는가. 그런 부주의한 멘트를 노출시킨 프로그램을 폐지하라는 서명 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난 예가 혹시 있었던가?   이미 외모지상주의가 쉬가 슬도록 깊숙히 뿌리내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굳건해진 지 옛날인 나라에서 이게 웬 소란인가 말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아내를 맞고 싶어요."라는 남자의 말은 누구나 당연하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신랑 연봉이 5천만원은 되어야죠. "라고  코멘트하는 순간 멀쩡한 한 처녀는 된장녀가 된다.   솔직히 그 말 속에 숨은 이기심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     온 세상 천지가 S라인 V라인을 외치고,  못생긴 것은 죄라는 언설이 서슴없이 운위되는 방송판에서  "180 이하 남자는 영 아니에요." 정도의 말이 어떻게 하늘을 뒤집고 지축을 흔드는 망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인가.


  "살찐 여자는 루저예요."라고 한 남자가 말했을 때 그 남자가 루저녀의 전철을 밟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게 형성된다면 나는 루저녀에 대한 네티즌 수사대에 기꺼이 가담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 벌어지는 작태는 수컷들의 쓸데없는 '곧추세우기'에 불과하다고 본다.    물론 나조차 그로부터 초연하다는 오만 따위는 부리지 않을 생각이다.   비겁하지는 말자.  손쉬운 흥분은 비겁의 도피처다.   

 

by 산하 | 2009/11/12 23:38 | 썸데이서울 - 이런저런 얘기들 | 트랙백(6) | 핑백(3) | 덧글(136)

다큐 "송환"을 뒤늦게 보다

두문불출이라는 말이 있다. 고려가 망한 뒤 조선이 들어섰을 때 옛 왕조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은 신하들이 두문동이라는 곳에 모여 살았고 새로운 조정이 아무리 출사를 청해도 응하지 않고 마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산(産) 한자성어다. 전설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는 이 옹고집들을 어떻게든 두문동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불을 질러 버렸다고 한다. 최소한 불길을 피해서라도 문을 박차고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을 것이다. 혹은 정히 나올 사람들이 아니라면 차라리 태워 없애 버려라 하는 사악한 마음의 소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왕씨들을 끌어 모아 남해바다 고기밥을 만든 그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날름거리는 불길이 서까래를 태우고 지붕을 뚫는데도 고려 유신들은 의연했다. 흥망이 유수하여 만월대도 추초로 돌아가고, 어즈버 태평연월은 그들의 꿈속에만 남아 있었건만, 불길을 피해 새 왕조의 품에 안긴 사람은 없었다.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그들의 임금은 이미 목 없는 귀신이 된 공양왕이었다. 충신은 불사이군이었다.

실제로 두문동의 최후가 그러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어제를 미루어 오늘을 짐작하고, 오늘에 비추어 과거를 어림하는 것이 역사를 읽는 방법의 하나라고 할 때, 내 상상의 영역에서 두문동의 최후를 실감나게 재연해 줄만한 텍스트 하나를 만났다.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송환'을 실로 뒤늦게 감상하게 된 것이다.


작품에 대한 평은 내 몫도 아니고, 하고 싶은 분야도 아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챙겨 봐야 할 명작의 반열에 거뜬히 오른다고 여긴다. 작품 자체로도 손색이 없지만 무엇보다 그 다큐멘터리가 오랜 동안 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 세계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진귀한 사연이기 때문이다. 자칭 단일민족끼리 수십 대를 걸친 원수보다 더한 적의와 악마성을 발휘하여 서로를 물어뜯었던 전쟁과 그 이후 시대에서 불거진 특이한 사람들, ‘비전향 장기수’를 지구상 어디에서 다시 또 보겠는가.


“천동산 박달재”를 구성지게 부를 거 같은 할아버지가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을 강단 있는 몸짓과 함께 열창하는 모습은 실로 놀라왔다. 수십 년 옥살이 후 겨우 세상에 나와서도 모진 세월만 보내다가 피골이 상접한 채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당과 조국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힘겹게 입을 떼는 노인을 정면으로 응시하기는 힘겨울 정도로  전율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아아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 장군”에 대한 존경심은 별반 소유한 바 없고, 그 깡마른 할아버지가 충성하는 당에 대한 호감은 언감생심 건드려 본 적도 없다 하더라도 그렇다. 자신의 정치적 선택의 결과로 주어진 임무 때문에 수십 년 세월을 빼앗겨야 했고, 그 선택을 바꾸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음보다 더한 고문과 폭력을 당하고도 저렇게 견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 경탄스러웠다. 온갖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두문동을 지켰고 그래서 온 마을을 뒤덮은 불길에도 아랑곳 않고 늠연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전설을 창조한 옛 고려의 유신들처럼.


물론 뜀박질을 하면 어김없이 피어나던 왕년의 캠퍼스 잔디밭의 최루가스처럼, 나직하지만 야무진 반발감이 피어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북으로 가기 직전 어느 교회의 환송회에 참석했다가 납북자 가족의 방문을 받았을 때, 납북자는 있을 수 없다며 만남조차 거절하는 결벽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 준 신념이라는 이름의 방패가 또 다른 현실과 진실을 짓누르는 장벽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불안함이 돋아났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반발은 그들의 신념이란 것이 시대의 지층에 묻혀 피와 살은 사라진 채 뼈만이 돌로 굳어 버린, 일종의 화석이 아닌가 하는 질문에서 온 것이었다.


두문동에 은거했다는 고려의 유신들의 지조는 어디에 내놔도 꿀릴 것이 없지만, 망해 버린 왕조에 대한 의리만큼이나 그 왕조를 지탱해 왔고 새 왕조 아래에서 살아가야 할 백성들에 대한 외면일 수도 있었다. 충신은 불사이군이라는 말은 아름다우나 무책임할 수도 있었다. 신하는 임금을 섬기지만 임금은 백성 위에 뜬 배라고 할진대, 이미 백성의 바다 위에서 뒤집혀 가라앉은 배를 조상하는 것은 정성의 낭비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길을 잃은 지조의 빛깔은 아집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송환” 속의 장기수들과 두문동 고려 유신들이 두 번째로 겹쳐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이는 반발은 점차 누그러져 갔다. 그들이 외로운 붉은 섬으로 남으면서도 끝내 이 나라의 배춧빛 바다에 휩쓸리지 않았던 것은 결국 그들의 신념 탓이 아니라 실로 비인간적으로 그들의 신념을 꺾고 짓밟고 절멸시키려 했던 야만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부터였다. 한 노인이 말한다. “이렇게 고문을 해서 사람 머리를 돌린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이게.” 김동원 감독은 장기수들이 신념을 지켜 올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었던 것이 “전향공작 그 자체가 가지는 폭력성”이었다고 했다. 이념 또한 인간 이성의 한 부분일진대 폭력과 공포와 모욕으로 나를 굴복시키겠다는 야만에 거세게 저항할 수 밖에 없었고, 저항 속에서 신념은 더욱 완강해졌다는 것이다.


어떤 토론 프로그램에서 한 양복 입은 신사는 이렇게 단언한다. “비전향 장기수는 잘못된 말이다. 미전향 장기수라고 써야 한다.”고. 미망인이라는 말이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못한 과부라는 희한한 뜻이 있듯이, 비전향이라는 부정적인(?) 말 말고, 언젠가는 전향을 꼭 하게 만들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그 단계에 이르지 사람들이라고 써야 대한민국 표준말이 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일을 더 하고 싶었을까. 그 말을 들으면서 저 노인들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출소한지 10년이 넘어도 한 노인의 촛대뼈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구두 끝 좀 둥글게 만들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아무런 시각도 편견도 개입시키지 않고 볼 때 그 깡다구만으로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감탄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신념의 정체와 의미에 대해 회의하고 때로는 그들이 신념이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에 흰눈도 떠 봤지만 다시금 그들의 주름 앞에서 옷매무시를 다듬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지켜낸 것은 신념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함이었다는 결론 때문이다.


사람을, 사람의 머리 속에 든 생각과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몽둥이와 구둣발로 바꿀 수 있다는 발상에 저항하는 것은 사회주의도 민족주의도 아니었다. 사회교과서에 나오듯 인간의 존엄성을 기본 원리로 구현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었고, 그들은 사회주의의 전사일지는 모르나 그에 앞서 민주주의의 구현자들이었다. 감옥에서 그들은 그렇게 싸웠고 지거나 이기거나 아니면 죽어갔다.


비전향 장기수들은 그들의 마음의 고향인 북으로 올라갔지만 그들을 괴롭게 했던 요구들과 폭력들은, 그리고 인간으로서 저항해야 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맞서야 하는 상황들은 결코 전향 공작이 한창이던 70년대의 교도소 담장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고, 한 번만 눈 감으면 일신이 편안한 유혹도 널려 있고, 섣불리 아니오 했다가는 치도곤을 당하고, 재개발해서 벌어들이는 거대한 이익 앞에서 내 권리 좀 찾자고 나대다가는 불에 타 죽거나 “왜 법을 어기지? 이해를 못하겠네.”라고 고개를 젓는 강남 출신 판사에게 강산이 한 번 변할 세월 동안의 교도소행을 선고 받는 세상이다.


과연 비전향 장기수들처럼 머리를 흔들 수 있을까. 고문과 매질이 사라진 시대라고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고 부인하기가 쉬울까.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느냐며 가난의 협박과 고립의 형벌을 감수하면서 따져댈 수 있을까. 맞아 죽어가면서도 손도장을 찍을 수 없다며 엄지 손가락을 감추던 사람들의 반의 반만이라도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의 이야기이지만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우리들의 야만,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비겁, 우리들의 용기, 그리고 우리들의 현재가 비춰진 과거였다. 행여 못 보신 분들이라면 ‘강추’를 보낸다. 꼭 지켜보시라. 그 거울에 무엇이 비쳐지는가를.

by 산하 | 2009/11/10 02:31 | 트랙백 | 덧글(2)

핑계의 무덤

지난 4년 내내 나는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의 절묘함에 거듭 감탄해 왔다. 북어와 마누라는 사흘에 한 번씩 두들겨야 한다는 신조(?)로 날이면 날마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멍드는 밤을 연출하는 폭력 남편부터 제 자식을 앵벌이 시켜 벌어온 돈 가지고 피시방에서 날을 지새우는 아버지까지, 정상적인 사고의 범위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선보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 나름의 핑계가 없었던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마누라가 새벽 세 시에 술이 취해서, 외간 남자 차타고 돌아와서는 집 앞에서 빠이빠이~~하는 걸 보면 PD님은 눈 안 뒤집히겠습니까.” 열변을 토하는 폭력 남편의 핑계는 짐짓 그럴싸했다.  가슴을 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남편이란 인간이 몇 년째 백수 생활을 하며 술이나 퍼먹는 재주만 길러서 아내가 식당 일을 나가며 근근이 일상을 꾸리고 있으며, 새벽에 외간 남자의 차를 타고 귀가한 진상이란 식당 회식 날, 식당 사장님이 아줌마들 집에 일일이 태워 주었던 것에 대한 트집이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적장애자를 데리고 소처럼 일을 시키고 월급을 주기는커녕 수급비까지 챙기고 있었던 주인은 왜 월급 한 푼 주지 않고 수급비까지 가로채느냐는 질문에 ‘가족같이 지내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고용인이 아니라 가족이니, 그 수급비도 가족이 함께 쓰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을 부려 온 사람에게 먹여 온 개밥만도 못한 식사와, 썩어가는 냄새 등천하는 숙소 앞에서 그 핑계는 처참하게 낯을 잃었다.    


부모를 상대로 폭행을 일삼아 온 패륜아 경우는 조금 더 맹랑하다. 바깥에서는 자기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로 아버지를 꼽던 이 이중생활자는 내가 그러는 걸 당신들이 봤냐며 대들었다. 머리가 천정에 닿도록 뛰며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우리가 확보한 영상을 들이밀었더니 다음 반응은 이랬다.  “이건 내가 아니에요.”  그리고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내가 이렇게 된 건 부모님 탓이에요”라는 새로운 핑계로 우리를 경악시켰다.  또 자신의 행동이 결국 부모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불러들였다는 사실은 깡그리 차치하고서 왜 당신들이 남의 가정사에 끼어드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를 고발하겠다고 분연히 일어서서 좌중을 놀라게 했었다.    


핑계란 것이 그렇다.  핑계를 대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극히 그럴싸하고 누구나 믿어 줄 것 같지만 조금이라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지켜보자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유리 가면에 불과한 것이다.  바보스러운 건지 뻔뻔스러운 건지 알 길은 없지만, 투명한 유리 가면을 귀에  걸어 그 주근깨투성이 얼굴과 뻐드렁니가 선연히 드러나 보이는데도 ‘영구 없다’를 부르짖는 ‘영구’들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 어설픈 영구 흉내가 폭력 남편 등 ‘상식의 범위에서 벗어난’ 인사들의 전유물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내로라 명함을 지닌 분들의 행동 패턴으로 전용될 때, 또 한 번의 아연실색을 경험하게 된다.    


연예인 김제동씨가 긴급하게 MC 자리를 내놓아야 한 데 대한 핑계로 '식상함‘이 들먹여졌다.  26년 한 프로그램의 MC로 지내왔던 허참씨도 날아가는 판인데 그 정도면 오래 했다는 핑계도 덧붙여졌다.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번 국정 감사 때 안형환 의원이 “정치적 좌우 논란을 일으킨 연예인을 제작진이 감당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라고 질문한 데 대해 고개를 끄덕여 주심으로서 그만 그 뻐드렁니가 드러나고 말았다.  자신의 잘못과 처지는 쏙 뺀 체 새벽 3시와 외간 남자 등 몇 개의 단어만으로 두들겨 맞을 죄를 구성했던 남편의 팔뚝질처럼.


‘백분 토론’ 손석희씨의 하차에 대한 핑계는 ‘고비용’이었다.  7년여 동안 무리와 물의 없이 토론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으며 언론인의 롤 모델로 즐겨 선정되던 MC가 그나마 2년 간 동결되었던 MC료 때문에 자리를 내놓아야 할 만큼 해당 방송사의 경영 사정이 어려워 진 것일까.


어떤 분은 방송에다 대고 “출연료 좀 깎지 그래요.”라고 충고(?)까지 하시던데 MC료 때문에 그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핑계’ 말고 조금 더 그럴 듯한 사연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가족이니까 월급은 물론 수급비도 같이 써야 된다고 우기면서 개밥에 쓰레기집을 제공했던 촌로들보다는 세련된 핑계를 제시하는 것이 서로의 체면에 좋지 않았을까.  


법질서를 수호하느라 험한 일 궂은 일 가리지 않아서인지는 모르나 경찰의·총수께서 시전하시는 핑계의 내공도 만만치 않았다.  시위 진압을 지휘하면서 “인도에 있는 것들까지 다 소탕하라”는 명령을 서슴없이 내리고,  그들은 ‘잔당’으로 규정하는 감동적인 용기의 발산이 고스란히 담긴 녹취록 앞에서 경찰청장님의 1차적인 대응은 “내 목소리가 아니다”였다고 한다.  


오호라 경찰청에도 가게무샤가 있었던가.  그래서 위험한 시위 현장에는 경찰청장님을 대신하여 출동하고 무전기에 악 쓰는 누군가가 존재한단 말인가. 설사 그래도 그렇지.  대한민국 12만 경찰의 총수께서 어찌 변두리 동네 골방에서 부모 속 뜯어먹고 사는 패륜아와 동일한 수준의 핑계를 끌어대실 수 있단 말인가.  점입가경의 핑계 릴레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최종 주자이자 화룡점정의 점박이는 자전가로 출퇴근하시기로 유명한 건각 유인촌 장관님이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대한민국의 언론의 자유를 가나보다 못한 69위로 낙제점을 매겼을 때 왕년에 그보다 훨씬 높은 순위에도 언론 자유가 숨넘어간다고 소동을 벌였던 조중동은 무안해서인지 뻔뻔스러워서인지 고요히 침묵을 지킨 반면 장관님께선 “국경없는 기자회에 항의하겠다.”고 기염을 토하신 것이다.  1인 시위를 벌이는 학부모에게 “세뇌되셨네,”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교양과 “찍지마 XX"을 서슴없이 내지르던 결기가 뭉쳤으니 국경없는 기자회여 삼가 두려워할지라.   엄마 두들겨 패고 살던 패륜아가 나를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던 때의 그 황당함에는 갖다 댈 것도 아닌 저 분기탱천을 뉘라서 감당할 수 있으랴.  


“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닌” 시절부터 “탁 치니 억”하고 사람이 죽었다는 해외토픽을 거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해서” 부동산을 사들였다는 연애담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람들은 정말로 ‘말 같지도 않은’ 핑계의 홍수 속에 살아왔다.  거기에 ‘식상하고 고비용’이라는 핑계 이하의 핑계로 프로그램을 훌륭히 이끌어온 방송인들의 자리가 하루아침에 날아가는 광경을 보태게 되었다.

그리고 경찰청장은 경찰 조직의 녹취록 속 본인의 육성을 이건 내가 아니라고 부르짖었고, 정권 바뀐 지 2년 만에 스물 두 계단이나 굴러 떨어진 언론 자유 순위에 대해서는 핑계조차 댈 것도 없이 “항의하겠다.”고 장관이 뻗대는 가관 또한 감상하게 되었다.  뭐 대략 이 지점만 와도 “내게 그런 핑계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 봐. 네가 만약 나라면 넌 믿을 수 있니?”라고 옛 노래가 절로 흘러나오겠거니와, 지난 목요일 오후 나는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범접하고 싶은 핑계의 절정 고수의 초식에 기함을 하고 말았다.


국회의원들이 대리 투표한 것도 인정되고, 법안 표결 전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은 것도 맞고, 분명히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의 의사 결정권을 침해당한 것도 분명한데, 그 엉망진창밭을 통과한 법안은 유효하다는 헌법 재판소의 선언이 그것이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속이 뻔히 보이는 핑계를 대는 정도의 하수들은 꿇어 엎드릴 것이고, 전혀 그럴 법 하지도 않은 핑계를 대며 기를 쓰고 우겨대는 부류들도 경배하며 찬양할 터이며, 이건 내가 아니라고 부르짖은 경찰청장님은 “목소리는 내가 맞는데 하여간 나는 아니었다.”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였음을 머리 쥐어 뜯으며 한탄하리라.


  자신들의 결론을 합리화하기 위한 핑계를 동원하기는커녕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어떻게 법적 절차에 어긋나는지를 조목조목 밝혀 주신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안은 유효하다고 결론 내린, 실로 거룩하기까지 한 ‘헌법 재판’ 앞에서 나는 넋과 기운과 할 말을 트리플로 잃는다.  차라리 “야당 의원들이 투표방해를 했으니” 원인 무효라든가, 하다못해 “대리투표를 한 자의 지문을 모니터에서 찾을 길이 없다”라든가, 정히 안되면 모든 걸 다 거부하고 “이건 헌재가 할 일이 아니라”고 파업을 해 버리는 것이 나았으리라.


  어떻게 법을 밥벌이삼아 평생을 지내 왔고, 그 중에서도 관록과 능력을 인정받아 헌법 재판관으로 뽑힌 이들의 입에서 “과정은 불법이지만 결과는 유효하다”는 말 아닌 말이 엄숙하게 흘러나올 수 있단 말인가.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이들의 핑계를 받아 줄 무덤은 과연 있을까.  
    

by 산하 | 2009/11/02 18:12 | 썸데이서울 - 이런저런 얘기들 | 트랙백(2) | 핑백(1) | 덧글(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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