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원칙과 현실 by 산하

원칙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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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보 백보 얘기를 다시 해 보자. 맹자에게 양혜왕이라는 이가 묻는다. "나는 백성들에게 한다고 하는데 말이오. 어디서 기근이 들면 다른 데서 곡식 나르고, 또 다른 곳에서 문제 생기면 마찬가지고. 둘러봐도 나만한 군주가 없단 말씀이야. 그런데 왜 민심이 나에게 쏠리지 않을까요?“ 이때 맹자가 한 대답이 바로 오십보 백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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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좋아하시니 전쟁에 빗대 말씀드리죠. 전투가 벌어지는데 한 병사가 무기를 버리고 도망갔고 또 한 병사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한 명은 백보를 가서 멈췄고 또 한 명은 오십보를 가서 섰죠. 그런데 오십보 도망간 병사가 백보 도망간 자에게 이 비겁한 놈아 욕을 퍼붓는다면 어떠실 것 같습니까? 오십보나 백보나 도망간 건 똑같지 않겠습니까. 왕의 정치도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 왕이나 오십보 백보라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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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십 보 백 보는 어차피 비유다. 맹자의 핵심은 “네가 아무리 백성을 위한다고 해 봐야 다른 놈들하고 다를 게 있냐. 그렇게 전쟁을 좋아하면서.”였다. 전쟁을 좋아하는 군주가 어떻게 백성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냐는 말을 하기 위해 사용된 비유지, 그 자체가 구체성 있는 원칙으로 제시된 게 아니다. 쉽게 말하면 부산 가는데 호남선을 탄 게 문제지, 전주에서 그 사실을 깨닫든 목포에서 잘못을 알아채든 멍청한 건 똑같다는 애길 하려 한 것이라는 뜻이다. 전주에서 아뿔싸 한 놈이 목포에서 여기가 어디야 한 놈에게 ‘이 바보야’ 그러는 게 얼마나 우스운가를 얘기한 비유가 ‘오십보 백보’다. 

실제로 전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맹자는 어떻게 얘기했을까. 요즘에도 우리는 전열을 가다듬는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화약 무기 이전, 아니 화약무기가 본격화되는 20세기 이전까지도 ‘전열’(戰列)이란 단순한 오와 열이 아니라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한몸처럼 움직이는 진용(陣容)이었다. 진이 허물어진 군대는 쉽사리 포위당하거나 각개격파의 제물이 되기 십상이었다. 누가 많이 죽느냐보다 어느 쪽 진용이 먼저 무너지느냐가 전투의 관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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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투 중 지휘관의 명령 없이 도망” 경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엄벌에 처하는 게 전쟁의 원칙이다. 그러나 오십보 백보의 원칙을 적용하여 모두를 일벌백계한다면 그 원칙적인 지휘관은 반드시 패할 것이다. 치열한 전투에서 누가 먼저 도망가고, 어느 정도 도망갔는지의 차이는 매우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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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보 도망한 병사는 백보 도망간 병사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싸웠고 혹 열 보 물러선 자가 있다면 오십 보보다는 더 버틴 사람일진대 그 모두를 ‘도망’이라는 굴레를 씌워 죽인다면 다른 건 몰라도 병력의 열세 때문에 패할 게 뻔하지 않은가. 거기다 백보 도망간 자가 오십보 도망온 자에게 “너나 나나 똑같다. 맹자가 그랬어.”라고 한다고 치자. 이 말을 맹자가 듣는다면, 공자처럼 물에 술 탄 느낌이 아니라 직설적이었던 맹자는 대번에 욕설을 날렸을 것이다. “너는 100대 맞아라. 쟤는 50대만 맞으면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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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은 뼈대다. 결코 꺾일 수도 없고 휘어져서도 곤란한 등줄기다. 그 힘이 있고서야 인간은 바로 설 수 있다. 현실은 그 위의 살과 근육이다. 다듬기에 따라서 강해질 수도, 약해질 수도 있고 빼야 할 수도 불어야 할 수도 있다. 뼈대는 지키는 것이 소중한 것이고 살과 근육은 키워내고 단련시키는, 즉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미덕이 된다. “도망은 무조건 죄”라는 건 원칙이지만 “50보는 50대, 100보는 100대”가 현실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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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원칙은 무엇이고 현실은 무엇인가. 뭔가 애매하고 손에 잡히지 않을 때에는 역사를 뒤적여 보는 게 좋다. 조선 시대 지방관들은 가족을 대동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었다. 결국 그 지역에 민폐를 끼치게 마련이고 제정에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었다. 떼거리 친척들 몰고 다니는 것은 ‘남솔’ (濫率)이라 하여 탄핵의 대상이 됐다. 이 원칙을 정면으로 어긴 게 충무공 이순신이었다. 그의 형들은 일찍 요절했기에 그는 집안의 가장이었고 조카들을 앞장서서 챙겼고 임지를 옮길 때마다 그들을 데리고 다녔다. 명백한 ‘남솔’이었다.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차라리 남솔의 죄를 지을지언정 이 의지할 데 없는 어린 것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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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남솔은 남솔이다. 원칙에는 분명히 위배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위의 살을 보아야 한다. 이순신의 조카들은 이순신이 정읍현감으로 있는 동안 단 한 번의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고, 임진왜란 내내 이순신을 도와 싸웠다. 그 흔한 미관말직 하나 받지 않은 채였다. 이순신의 마지막을 지켰던 조카 이완은 전쟁이 끝나고야 무과에 들었다. 이순신은 그들에게 그 흔한 종사관 자리 하나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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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전입 금지는 박정희의 국민 통제 정책이니 뭐니까지 거슬러올라가지 않아도 그로 인해 막대한 부동산 투기를 저지르고 이익을 보려는 이들 때문에 정해진 법규다. “나도 위장전입했어요.”라고 주장하며 위장전입 자체를 “우리 모두 한 짓”으로 몰려는 이들의 행동에 반대한다. 문제는 문제다. 원칙을 어긴 것이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앞장서서 원칙을 돼지 오줌통처럼 차고 다녔던 놈들이 주장하는 원칙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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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십보 백보’ 에 해당하는 사자성어(?)가 연신 입에 오르내린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매우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 말을 수시로 갖다붙이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닐까. 수백 명의 귀부인 농락한 카사노바 주제에 등산모임 나오는 유부녀한테 뻐꾸기 한 번 날린 오춘기 남성을 두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하고 읊으며 “너나 나나 뭐가 다르냐.“라고 한다면 이건 어이가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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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이 원하는 건 결국 최악의 ‘오십보백보’론이고 ‘내로남불’론이다. 싸움에 참여하지도 않고 튄 놈이 전투 치르다가 백 보 도망간 놈을 비웃으며 “너나 나나” 하면서 낄낄거리고 결국 전군 후퇴 후 “다 같이 도망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군대가 전쟁에 이길 리가 있는가. 가장 비겁한 놈들이 원하는 것은 모두가 비겁해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나쁜 놈이다.”라는 외침이 드높을 때, “내 탓이오.” 저마다의 가슴을 치라는 선동이 유효할 때, “에이 민나 도로보데스. (몽땅 도둑놈이야)”라고 사람들이 코웃음치며 돌아서는 순간을, 그 사회에서 가장 나쁘고 비겁한 악질들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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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기에는 도저히 동의하지 못하겠다. 원칙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건 아니다. 똥물에도 파도가 있고 모기 다리에도 근육이 있다. 그리고 어떠한 원칙에도 경중은 있다. 

이 사람이 가기 전애 by 산하

이 사람이 가기 전에     #산하의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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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금천 사람이다. 1925년생이니까 올해로 아흔 셋이다. 해방 후 고향에서 초등학교사로 일했다. 하지만 공산 정권과는 생래적으로 맞지 않았다. 21세기 한국의 ‘좌파’ 가운데에도 뭐 저렇게 꽉 막혔나 싶은 사람이 있는데 70년 전 ‘인민공화국’의 건설에 부풀어 있던 사람들이야 오죽 견결하고 배타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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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반역자 남조선 괴뢰”와 그 두목 이승만, 김구 에 대해 가르치라는 지침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중 “그래도 둘은 독립운동도 열심히 하긴 했다.”고 덧붙였다가 이내 반동분자로 몰리고 인민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을 기다리며 갇혀 있던 중 그는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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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가 38선을 넘는 과정에서 남과 북을 오가며 장사하던 장사꾼들과 함께 하는 광경이다. 미군과 소련군의 배치 상황을 훤히 꿰뚫으며 남과 북에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하며 돈을 벌던 장사꾼들이 1947년 무렵까지도 있었던 것이다. 이념에 끌려 월북했던 서울대생들 몇 명도 그 대열에 끼어 다시 남으로 가고 있었다고 한다. 구사일생 끝에 남한으로 온 그는 군에 입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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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발발 당시 그는 강원도 춘천에 주둔하고 있던 6사단의 장교였다. 6사단은 한국군 사단들 가운데 초전에서 승리한, 최소한 북한군의 진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했던 부대 중 하나다. 원래 6사단을 섬멸하고 양평을 거쳐 남한강쪽으로 진출하여 한국군 주력을 포위하여 녹여 버리려던 북한군의 전략은 초장부터 틀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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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역사를 바꾼 춘천 전투에서 누가 용맹하게 싸웠고 누가 꽁무니를 뺐으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가 얼마 전 밝힌 것이 한국전쟁 최대의 전쟁 영웅 중의 하나인 심일 소령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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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일 소령 (전쟁 발발 당시는 소위)은 그와 같은 6사단 소속이었다. 북한군 탱크가 물밀듯이 밀고 들어올 때 육탄돌격 명령을 받았지만 달아났다. 거기까지는 모르겠는데 그 와중에 금덩이보다 귀한 대전차포 하나까지 버려 두고서였다. 중대장은 총살감이라고 펄펄 뛰었지만 어찌 어찌 포병 연락 장교로 근무했고 이후 중공군과 싸우다가 전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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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집 사연이 한국판 라이언 가문이었다. 아들 셋이 죽었고 막내 하나만 남았다고 울먹이는 부모에게 연대장은 훈장을 약속한다. 별 공로가 없다는 보고에 연대장은 육탄 돌격으로 탱크를 까부쉈다는 식으로 그 공로를 조작하여 상신하며 말한다. “우리끼리 알고 있기로 하자. 그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바로잡자고! 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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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어머니가 100세로 장수하시며 2005년까지 살다 가셨다. 연대장은 벌써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제야 이 황해도 금천 출신의 왕년의 6사단 장교는 심일 소령의 불편한 진실을 밝힌다. “'우리 군은 과거에 저지른 허위 날조의 오류를 과감하게 바로잡아 정도(正道)를 당당히 걸어가야 한다. 예비역 육군 준장 이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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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깐깐한 예비역 준장의 인생은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굴곡의 가장자리만을 골라 타넘은 듯 파란만장했다. 그는 한국군 가운데 압록강 물을 먹어 본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다. 압록강 물을 떠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냈던 것이 그의 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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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군에서는 승승장구하지 못했다. 참군인이라 일컬어지는 이종찬 장군을 흠모하여 군의 정치 개입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쿠데타 후 박정희 장군의 부름도 거절했던 것이다. 더구나 군 내부에서 서북 인맥이 영남 군벌들에 의해 신속히 대체되면서 장군 진급에서도 몇 번이나 물을 먹었고 장성 진급 후에도 사단장 한 번 못해 보고 옷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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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외교관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 유전 파란만장은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위장간첩’ 으로 유명한, 사실 위장간첩이라기보다는 남과 북의 경직된 체제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리버럴리스트라 할 이수근 (이대용 본인의 주장) 을 사이공 공항에서 비행기 속 육박전을 통해 검거한 것이 그였다. 이대용은 월남 대통령과 함께 미국에서 교육받은 친분이 있었고 대통령에게 특별 부탁하여 비행기를 공항에 잡아 놓은 뒤 직접 비행기에 올라타서 이수근을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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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후로도 계속 월남에 있었다. 이른바 ‘월남 패망’, 즉 베트남 ‘해방’ 순간을 적성국 외교관 신분으로 맞는다. 한국 민간인들의 철수를 책임진 그였으나 한 나라가 허물어져 없어지는 북새통 속에 빚어진 착오와 실수를 거쳐 베트남에 억류된다. 장장 5년 동안 베트남의 감옥에서 베트남 정부의 집요한 심문과 북한까지 가세한 ‘전향’ 공작에 필사적으로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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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달라붙어 북한으로 가자고 끈질기게 설득한 사람 중 하나는 박영수다. 바로 1994년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남한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그 인물. 그 사람이 베트남까지 날아와서 고향의 누님을 만나게 해 주겠다며 이대용을 꼬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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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이대용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은 사람은 한국어가 유창했던 베트남 관리 ‘튀기’ (이대용 일행이 붙인 별명)였다. 툭하면 “총살하겠다.”고 협박하며 이대용을 협박해서 “언제고 죽여 버리고 싶은” 인물이었던 그는 제 3대 한국 주재 베트남 대사로 부임해 이대용을 만난다. 주엉 찐 특 대사였다. 그는 이대용을 만나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 “이대용 장군이 그때 나한테 국제 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으니 외교관 대접을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 선견지명이 있습니다!” 참 이때 이대용의 심경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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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쓴 책 < 6.25와 베트남전 두 사선을 넘다> (기파랑)은 사실 권하고 싶지 않다. 편집도 엉망이고 마치 술자리에서 이대용 공사가 하는 얘기를 받아적은 듯 시점도 왔다갔다 6.25 얘기하다가 월남전 스토리 펼치다가 엉망진창이다. 기파랑 출판사가 수구꼴통적 서적을 내기로 유명한 데이기도 하거니와 최소한 자신들의 영웅을 기리는 작업조차 이렇게 무성의하다 싶어서 오히려 슬플 정도다. 에휴 이 정도냐 싶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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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버스 타고 오가면서 훑어본 이대용 공사의 일생만큼은 카메라라도 몇 대 갖다 놓고 찬찬히 그 사연을 들어보고 싶을 만큼 흥미진진 드라마틱하다. 어떤 인생인들 역사가 아니랴마는 현재 생존해 있는 한국인 치고 그만큼 역사의 드라마의 정점에 서 보았고 나락으로 굴러떨어졌고 그 아이러니에 몸서리치며 자신의 과거를 곱씹을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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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기록에 너무나 무관심하다. 기파랑 출판사의 이런 허접한 책으로 그 일생을 담아내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일천함을 너무 발가벗고 드러내는 격이다. 아마 '진보' 쪽 사람들은 이대용 같은 이나 얼마 전 돌아간 채명신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들이 돌아가기 전에 기록해야 할 것들도 무지하게 많다. 그들의 사소한 경험조차 의미있는 퍼즐 조각이고 그들이 웃으며 남기는 ‘여담’조차 어둠 속에서 빛나는 역사의 조약돌이 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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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기파랑이라는 출판사 해도 너무한다. 도대체 누구냐 여기 사장이라는 사람은


굿바이 로저 무어 by 산하

그는 나를 알 리 없지만 나는 그를 익히 알고 좋아하고 그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는 영화배우들이다. 특히 헐리우드 키드까지는 안되도 명화극장 키드는 족히 됐고 동네 신도극장에서 2본동시 영화를 장히 섭렵했던 처지로 어릴 적 가슴과 망막에 담았던 ‘갓양남’ ‘갓양녀’들이 참 많았다. 그 가운데 어찌 007의 로저 무어를 빼먹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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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본동시의 장점(?)은 애들 보는 심청전 같은 인형극 영화가 007같은 성인물과 함께 상영된다는 데에 있었다. 심청전을 보러 간다고 돈을 타긴 하는데 심청전보다는 007의 화려한 액션과 뭣보다 그 미끈하게 빠진 여자들과 본드가 그렇고 그런 장면을 언제 연출하나 눈이 빠지게 기다린 기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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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도극장 시절 007은 전부 로저 무어였다. <문레이커> <옥토퍼시> <유어 아이즈 온리>가 그의 작품이었다. <네버 세이 네버 어겐>에서 숀 코너리를 봤지만 <골드 핑거> 때 반질반질한 숀 코너리를 봐서인지 너무 늙었다는 느낌. 내게 007은 그저 로저 무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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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에서는 <문레이커>를 인상 깊게 본 것 같다. 무쇠 이빨 죠스 아저씨와의 혈투, ‘굿 헤드 박사’ 와 나누는 무중력 상태에서의 정사, 그리고 스타워즈도 아닌 것이 애들 장난도 아닌 것이 우주에서 뿌숭쀼숭 전자총을 쏘며 전투를 치르는 장면 등등이 가물가물 기억 선상에 박히지만 역시 성적 호기심이 막 생기기 시작할 때여선지 굿 헤드 박사 장면이 최고였다. 함께 보러 간 애들끼리 이런 얘기를 나눈 기억이 삐죽이 대뇌 피질을 뚫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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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면 좋은갑지.”라고 누가 말하자 한 명이 이렇게 받았었다. “진짜 하는 거 아니다.” 나이 열 살짜리들이 참...... 이렇게 말하면 조숙한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나오면서 한놈이 그랬다. "저래 뽀뽀하면 아기 생긴다. 그래서 약묵고 저런 거 찍는단다." 

오늘 로저 무어의 부음을 들으며 그날의 신도극장의 풍경이 동시에 떠올라왔다. 오징어와 소주 냄새, 발냄새와 땀냄새, 그리고 가끔 발치를 찍찍거리고 지나갔던 쥐 꼬리의 서늘한 느낌. ‘반공’ 방첩‘ 녹색으로 빛나던 야광등. 그리고 옆에서 영화는 안보고 딴짓하던 젊은형과 누나들 . 그리고 그 엉성한 극장 안을 울리던 저음의 목소리 "본드, 제임스 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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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본드 중의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문레이커>의 죠스 아저씨도 3년 전엔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굿헤드 박사는 아직 살아 있을까. 세월은 가고 사람은 떠난다. 남은 사람들은 떠난 사람들로 하여 뜻밖의 과거 여행을 나서게 되고, 그러면서 또 떠난 사람을 기린다. 안녕 로저 무어 경. 이제 저승에서 또 한 번 죠스 아저씨랑 영화 한 편 찍으시라.



창자가 끊어지고 성대가 녹아내리고 by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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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 진나라 환온이라는 사람이 촉(蜀) 지역을 정벌하기 위해 수군을 이끌고 장강을 거슬러 올랐다. 요즘도 크루즈로 유명한 코스인 삼협(三峽)이라는 곳을 지나는데 한 졸병이 뭘 잡아 왔다며 떠들었다. 원숭이 새끼였다. 병사들이 웃고 떠들고 원숭이 새끼를 가지고 놀았다. 지루한 항해 중에 그만한 재미가 어디 있었으랴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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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짐승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것은 강물 저편 뭍의 벼랑에서 필사적으로 배를 따라오는 한 어미원숭이였다. “어미인가보다.” 그러나 이미 넓어진 강폭 한 가운데를 노 저어가던 함대를 원숭이 새끼 때문에 돌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백 리를 원숭이는 계속 따라 오며 울부짖었다. “아직도 따라붙고 있느냐?” “예. 우리가 멈추면 저것도 멈추고 우리가 가면 따라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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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폭이 좁아졌다. 원숭이 소리가 가까워진다 싶더니 갑자기 어미 원숭이가 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철퍼덕 소리와 함께 원숭이는 갑판에 떨어졌다. 다급히 새끼를 찾는 듯 했으나 이미 원숭이는 기력을 다하고 있었다. 잠시 헉헉거리던 원숭이는 곧 쓰러져 거품을 물다가 머지않아 죽었다. 새끼를 찾으러 백 리를 내달린 원숭이의 한계였다. 병사들이 그 배를 갈라보자 창자가 조각 조각 끊겨 있었다. 새끼를 잃은 슬픔이 그 창자를 잘라낼 정도로 컸던 것이다. 환온은 이 소식에 크게 놀라서 원숭이를 풀어 주고 애초에 새끼를 잡아왔던 병사를 붙잡아 흠씬 두들겨 패고 내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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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 ‘단장’(斷腸)의 아픔, 즉 창자를 끊을 만큼 큰 고통이다. ‘단장의 미아리고개’와 ‘단장의 능선’ 전투에 등장하는 그 단장이다. 수많은 이들이 자식을 뒤로 하고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끌려갔던 고개와 수없는 어머니의 피눈물과 자식들의 피가 뿌려졌을 전장이니 그 끊긴 창자 조각이 여북했을까. 사람의 고통 가운데 자식을 앞세우는 것만큼 큰 고통이 없기에 이런 말이 나왔고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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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4월 16일의 참사 후 수백 명 부모의 창자가 끊겼 나갔다. 그나마 살아 있는 새끼를 바라보며 뛰었던 어미 원숭이와 달리 자신의 아이들이 고스란히,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물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부모들의 창자는 곱절로 토막나 있었을 것이다. 살아서 숨쉬고 밥 먹고 잠자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소리를 툭툭 들어야 했을 것이다. 

단장의 아픔이야 누가 더하고 덜하랴마는 창자가 끊긴 그 위해 심장이 터지는 소리까지도 감당해야 했던 분들이 있었다. 기간제 교사로 담임을 맡았고 반 아이들과 함께 있기 위해 사지(死地)로 정신없이 달려갔던 교사 두 명의 부모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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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을 천직으로 알았던 딸, 그렇게 아이들을 좋아했고 아이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던 선생님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다. 그런데 자신의 책무를 다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에게 붙는 순직(殉職) 두 글자는 두 교사들의 영전에 바쳐지지 않았다. 기간제라는 이유에서였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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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쯤 전, 어느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느라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한 초로의 신사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토요일 오후여서 텅 빈 사무실. 나는 그와 둘이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인사를 시켜 주는 PD도 없어서 멀뚱멀뚱 천정의 거미줄만 찾고 있었는데 PD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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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 먼저 좀 인터뷰 부탁드릴게요. 세월호 참사 때 돌아가신 기간제 선생님 아버님이신데 다음 일정이 또 있으셔서.....” 기꺼이 그러시라고 했고 좀 더 기다렸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오는데 이미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고 PD의 눈도 벌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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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순직이 이뤄질 거라고 PD가 울먹이며 위로하자 아버지는 그예 꺽꺽거리는 울음을 터뜨리셨다. “훈장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헉헉...... 그냥 그 아이가 헉헉...... 했던 대로만.... 했던 대로만..... 헉헉 인정해달라는 겁니다.” 그 소리에 나도 눈물이 흘렀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다. 창자가 툭툭 끊기는 소리였다. 그리고 하나 더, 성대가 녹아 내리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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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잠시 만났던 고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는 몇 년 동안 울부짖고 소리지르고 통곡하고 꺽꺽거리다가 성대를 다쳐 인공 성대 삽입 수술을 받았다. 이걸 뭐랴고 해야 하나 용성(鎔聲-목소리를 녹이는)의 아픔이라고 불러야 하나 파성(破聲)의 고통으로 이름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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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마침내 참사 때 임무를 다하다 돌아간 고인 두 분에 대한 순직 절차를 밟을 것을 관계 기관에 지시했다고 한다. 관계 기관은 즉시 지시 이행에 나섰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들의 감회를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그저 옛 사람의 노래를 빌려 그 심경을 짐작할 따름이다.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말으시고 새려면 늘 언제나 오늘이소서.” 오늘 그분들의 끊어진 창자가 몇 조각이라도 이어지기를. 그래서 자식들의 못다함 삶까지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랄 밖에. 

문재인 대통령께 감사하며, 하나 더 바란다면, 어미원숭이의 조각난 창자를 본 환온이 분노하여 새끼를 잡아온 병사를 매질하여 내쫓았듯, 세월호 사건에 책임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물어야 할 책임을 묻고 숨겨진 진실이 있다면 밝혀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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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가 할 일이라면 환온이 새끼를 놓아 주어 생명을 이어갔듯 세월호 사건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정의로운 사람들, 자신의 목숨 바쳐 책임을 다하고 다른 사람을 살린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하여 우리 안의 아름다움으로 삼는 일일 것이다. 추악하고 어이없는 참사 속에서도 빛나는 사람들은 많았다. 두 분 기간제 선생님들의 명복을 다시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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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히 기쁘다. 오늘 술 쏘고 싶다. 동시에 슬프다. 이 당연한 일이 3년만에야 이루어지다니




갱상도 아재들 보이소 by 산하

갱상도 아재들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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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말로 머리 스팀 확 받아뿌네. 

울아부지하고 통화하니 “나는 문재인은 죽어도 싫고 홍준표도 파이라 유승민”이라 하셔서 그나마 맘 놓는데 딱 이래 덧붙이시네요. “근데 내 친구들은 다 홍준표다.” 얘기에 마 대가리 팍 스팀 받아가 대뜸 한 마디가 나갑디더. “돼지면 뒈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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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국이라 하는 나라에서 누가 누구를 뽑든 그거야 개인의 자유고 그 선택을 욕하는 건 안될 일이지예. 근데 보이소. 최소한 그거는 사람 뽑을 때 얘기라요. 대가리에 기본은 박혀 있고 짐승하고는 좀 구분이 되는 인간들이 모이가 선거할 때 얘기라. 아니 갱상도 남해안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이라도 유출됐나 낙동강에 또 페놀이라도 흘렀나 우째 홍준푠데. 다른 사람들은 모다 귀 막으소. 이 소리는 홍준푠지 판푠지 칠푼인지 팔푼인지 하는 홍돼발, 돼지 발정제 지지한다카는 인간들한테 하는 소리잉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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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마카 싫은 거는 내 이해는 못해도 인정은 해 주께요. 전에 김대중 싫어할 때 알아 봤어요. 거의 정신병이었지 뭐. 마 싫은 거 아이요. 주는 거 없이 밉고 받은 거 있어도 인정 몬하는 거 아이요, 절뚝거리는 거부터 그 말투까지 마 다 싫다는 거 아이요. 우짜겠노. 그 병은 죽어야 낫는 긴데. 문재인도 그리 싫다카마 우짜겄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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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 빨갱이라꼬? 아니 그 빨갱이들이 정권 잡을 때 김정일은 와 안쳐들어왔능고? 그 잘난 미국 아들은 와 가만 있었능고? 뭐 어떤 할배는 문재인 아부지 고향이 이북이라 빨갱이라카대 ? 니미 삼팔 따라지 아들 입장에서 욕 튀어 나오네.... 빨갱이 조카딸 박근혜를 지성으로 섬긴 주제에 별 시비를 다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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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눈까리가 빨간 거지 문재인이 빨간 게 아이라. 와 북한을 주적이라 못부르냐고? 아재요. 군대에 주적이 어데 있능교. 군대는 어느 나라하고도 싸울 준비가 돼 있어야 군대라 카능기요. 안그래도 한국군은 미군 없으면 쓰러진다캄서 난리난리 개난리 피면서 그래 중국하고 분쟁 나면 우짤낀데. 일본하고 독도에서 쌈 붙으면 우짤낀데. 우리의 주적 아이라고 손 놓고 있을 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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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좋다 칩시다. 그래 문재인이 싫으마 차악이라도 잘 택해야지. 아니 만다꼬 홍준푠데. 5년 전에 대가리 텅텅 빈 닭대가리를 아무개 딸이라꼬 잘할 끼라고 청와대 보냈다가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놓고도 또 그 언저리패거리를 뽑아 주겠다고. 무신 인간들이 이래 책임감이 없노. 인간이모 손가락 자르지는 못해도 바늘로 좀 따서 피라도 내면서 반성해야지. 그 손가락으로 또 홍준표 콧구멍 휘비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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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상도 사람들 참 싸가지 있는 거 좋아하잖아. 예의범절 열나 따지고 실력 없는 놈보다 싸가지 없는 놈 싫어하잖아. 그 자슥 안봤소? 홍돼발이 그 자슥 즈그 친구들하고 여자한테 돼지발정제 먹이고 강간 공모했던 거.... 뭐 젊을 때 그럴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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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끼 이 화상들아. 그래 당신들 사위로라도 그런 개새끼 맞을 자신 있소? 박정희 때가 무슨 무협지 시대요? 그때도 여자한테 그런 거 먹이고 난리쳤으면 지금보다 더한 처벌 받았소. 그래도 지금이랑 우째 같겠냐고. 맞소 다르지. 그래서 그냥 얌전히 살면 넘어갈 수도 있지. 근데 대통령이라니. 대한민국 국가원수라니. 아니 여가 돼지우리요? 어디 식용개농장이요? 아이고 엉성시러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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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돼발이 그 자슥..... 하는 소리 한 번 들어보소. 국민한테 죄송하다 캄서 진짜로 그 자슥이 대가리 땅에 박고 이마에 피나게 들이박으면서 사과해야 할 당시 피해자, 서울대 머스마랑 데이트하다가 별안간 여관에 끌리 가가 평생 못잊을 경험을 했을 그 여자한테는 일언반구 사과도 안해. 지금 그 자슥은 죄의식이라 카는 기 없어요. 45년 전의 일이 아니라 100년 전 일이라 캐도 한 사람한테 참말로 못할 짓을 했다는 인식이 없능기라. 근데 그런 짐승을 뽑겠다고. 돼지발정제 보약으로 해 처묵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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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예의범절 따지고 삼강오륜 따지기로는 지구상에서 으뜸일 경북 아재들 들으소. 아재들이 홍준표 찍어 주고 아이들한테 뭔 훈계를 할낀데. 명심보감 구절 암송하면 뭐하겠노. 효는 백행의 근본 캐삼서 몇 대조 할배한테 제삿밥 믹이면 뭐하겠노. 주구리장창 모이가 음복하고 분향함서 유세차 상향 읊으면 뭐하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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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결혼 반대했다는 이유로 수십년 동안 장인을 지 집안에 안들였다고 지 아가리로 자랑하는 패륜아를 대통령 후보로 밀겠다 캤능교. 아이고메 참 갱상도가 우짜다가 이래 근본 없는 동네가 됐노. 꼴통이라캐도 이렇게 천하의 불상놈들이 판 치는 데는 아니지 않았는가베. 우짜다가 이래 됐노 말이요. 인자 갱상도가 아니라 개쌍도라 불리도 할 말이 있겠십니꺼 어데. 아니라고예 아니긴 뭐가 아니라. 근본없는 불쌍놈을 지 상전으로 모시는 넘들이 개쌍놈 아니고 뭔데? 어데 삼한갑족이가? 오징어 뼈대 집안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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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돼발 그 자슥 토론회에서 걸었던 시비들 태반이 허위라는 거 신문에서 봤지요? 인성도 안돼, 반성도 못해, 마 성의도 없어. 잔챙이 깡패들 몇 놈 때리잡던 시골 검사 곤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인간을 갖다가 대통령으로 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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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영감님들 마 살만큼 살았다 이거요? 대한민국이 마 우찌 되든가 내 기분 뒤트는 놈들은 대통령 시키주기 싫고, 아이들 미래 따위는 즈그 밥숟갈은 다 갖고 태어났을 끼고, 뭐 우리는 우리 했던 대로 뭉개자 이거요? 아재요 아재요. 정신 차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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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밖은 참 일촉즉발로 움직이는데 당신들이 뽑은 닭대가리는 일도 옳게 안하고 낯짝에 실 박고 앉아서 최순실이한테 연설문 빨간펜 지도 받고 있었던 거 기억하지요? 그래 그 닭대가리 뽑아줄 때하고 똑같은 논리로, 문재인은 빨개이고, 마 북한하고는 절대 화해도 대화도 하면 안되고, 좌파들은 다 때리잡아야 되고 그 생각으로 또 그 손가락 놀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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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기가 막히요. 서울 사는 경상도 사람들 창피하게 좀 만들지 마소. 느그 동네는 와 그라노 소리 듣게 좀 만들지 마소. 제발덕분 아재들 손자 생각 좀 하이소. 명절 때 손주들이 아재들 원숭이 보듯 하게 되면 기분 안좋을꺼 아이라. 인자 혼도 못내겠지. 홍준표같은 패륜아 지지한 주제에 어데 손자 버릇 고칠끼고. 손자가 이랄끼라.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오지 마세요. 엄마. 용돈도 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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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들 전쟁이다 수출이다 성장이다 고생 억수로 한 거 압니더. 고맙게 생각해요. 참말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더. 근데 아재들 과거에 대한 집착 때문에 손주들 미래가 망가지는 거 참 눈 뜨고 못보겠어요. 제발 정신 좀 차리소. 남사스러운 줄 좀 아이소. 갱상도 싸나이 어쩌고 캄서 삽질 고속으로 하지 말고, 옛날에 뭐 집 하나 건너면 청와대 아무개 통하던 시절이 좋았다 캄서 딸딸이치지 말고, 나라 걱정 전에 손주들 좀 보이소. 아재들 생각에 갇히지 말고 젊은 아~들 생각 좀 물어 보소. 열불터지가 못봐 주겠다. 갱상도 아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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