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든다. 낮에는 구름처럼 밤에는 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가운데 연단 위에선 애국과 자각을 호소하는 사자후가 끊이지 않는다. 박수와 환호 속에 열변들이 토해지고 그 열변의 주인공들은 비단 존경받고 든 것 많은 지성인들일 뿐만 아니라 조상 대대로 천대받던 직업을 가진 이들도 끼어들고 때로는 아직 애 티도 못벗은 소년이 좌중의 열광적인 환호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시장 상인들은 가게 문 닫고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하며 군중들은 저마다 가슴을 치며 답답한 정치에 분노하고 스스로의 한계에 발을 구른다.
촛불 시위 때의 풍경이 아니다. 촛불 시위가 일어나기 100년도 더 전, 광무 2년 1898년의 만민공동회 풍경이다. 만민공동회의 만민들은 명색 민주공화국 국민노릇을 50년 이상 해 오고, 4,19와 6월 항쟁을 거치면서 피를 들여 민주주의를 키워 왔던 경험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들의 증조부 내지는 고조부뻘이다. 입헌군주정은 커녕 군주의 권리는 무한하다고 되뇌는 전제 군주정 치하의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그 임금이 남의 나라 공사관에 몸을 피하고 나라의 피와 살이 죄다 외국에 헐값으로 팔려 나가는 꼴을 보고 사람들은 일어섰고, 수만 명이 모여서 의분을 뿜어냈으며 자주와 독립을 부르짖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을 갓 지나서 그 나라는 없어지고 말았다.
전직 대통령의 유언대로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그리고 그 육중한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서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역사의 진보가 되는 쪽에 머리 수 하나라도 보태려 하고, 눈물겹도록 바보스럽게 그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 속에 역사는 제 자리에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는 냉정하다. 역사는 선의에 좌우되지 않으며 기도에 부응하는 자애로운 신이 아니며 끝내 정의의 편에 손을 들어 주는 만화 속의 판관도 아니며 착한 이들의 희생에 눈물겨워하는 온정주의자도 절대로 아니다.
촛불시위는 분명 감동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이미 그 무성하고 화려했던 단풍잎들이 떨어져 낙엽더미가 되었다 해도 그 더미는 기름진 흙으로 화하여 내년의, 그리고 또 다른 해들의 찬란함을 키워내는 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여름밤의 꿈처럼, 월드컵의 환호처럼, 그리고 100년 전의 만민공동회처럼, 참 그때는 굉장했는데 하는 소같은 되새김질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그때 그 인원을 다시 모으는 것이 아니다. 머리 수를 늘리고 이 한 몸 바쳐서라도 어째 볼 일이 아니다. 그 우직함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며, 그 열정에 냉소함도 아니다. 지금까지 우직하게 어깨 피흘려 가며 바윗덩이를 이만큼 굴려 왔다면 그것은 목높여 치하할 일이되 수레를 만들거나 나무 바퀴를 깔지 않고 또 다시 우직하게 바위에 달라붙는다면 그것은 결코 역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작년 최장집 교수가 촛불 시위가 보여준 직접 민주주의의 위력(?)에 찬물을 끼얹으며 대의민주주의제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것은 그런 맥락이 아닐까. 아울러 나는 강준만 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중요한 것은 열정이 아니라 열정의 제도화다.
최장집 교수가 지난 10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공과를 바로 볼 필요가 있으며 앞 지도자를 승계하는 데 경쟁하고 몰두하는 것으로 선거에서 이기겠느냐는 질문을 할 때, 이명박 욕한다고 진보가 얻는 것이 무엇이겠냐고 난감하게 물을 때, 민주대연합 같은 구닥다리로 이명박 정권을 상대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내 생각) "지금 체제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담담하게 말할 때, 발끈하고 팔뚝 걷어붙이고, 삐딱선을 타는 분들께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이명박 정권이 민주주의 후퇴시키고 있는 것 맞고, 용산참사같이 진정으로 치사하고 야비하게 시치미 떼면서 국민의 기본권 짓밟고 있는 것도 동의하고, 쌍용 때처럼 정부의 의무를 치지도외하는 것도 사실과 어긋나지 않는다. 그럼 또 "나 하나가 더하면 백만이 되면" 그래서 이명박이 물러나거나 크게 반성하여 땅에 엎드리면, 그래서 "민주주의가 회복되면" 끝나는 것인가? 대체 어떤 사회가 우리의 나아갈 지향이며, 그를 위해서는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은 일단 물러세워 두고, 당장 민주주의가 후퇴하니 거기에 맞서는 것만이 지상과제가 되는 것이 마땅한가?
입버릇처럼 그런 말을 해 왔다. "전두환 노태우는 정치적으로 미워했지만 이명박 이 사람은 정말 인간적으로 밉다."고....... 내가 퍼부을 수 있는 증오의 최대치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다. 인간적으로 나쁜 사람이고, 상종하기 싫은 인간이고, 끌어내리고 싶은 것은 서푼 값어치도 안되는 감정일 뿐, 그는 여전히 30퍼센트를 넘어서는 지지율의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고양이 수염 얼굴에 그리고 시내를 누벼 봐야 한 번 보고 지나갈 구경꺼리일 뿐이고 쥐새끼가 어쩌고 해 봐야 자기 입만 더러워지며 , 머리 수 채워서 우리의 힘을 보여 준 다음의 미래가 제시되지 않으면 애당초 머리 수가 채워지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 머리 수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이명박 정권은 엄연히 사상 최대의 표 차로 선출된 정권이며 (투표율이 낮으니 노무현보다 득표수가 적었네 어쩌네 하는 쪼잔한 타령은 그만두고) 선거를 통해 기능하는 정권이며,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을지언정 민주주의라는 열차에서 내리지는 않은 정권이다. 그리고 서거한 대통령에게 눈물 흘려 줄 의향이 있는 사람은 수백만이지만 그 수백만은 자신의 이해와 처지에 따라 번개같이 움직이며, 때로는 그 끝을 뻔히 아는 주제에 아등바등 경쟁해 보겠다고 내 새끼는 다르다고 망상에 빠져 있는 수십 수백 갈래로 나뉜다. 그들에게 독재 타도? 민주대연합? 나 하나가 모이면 백만이 된다? 그 다음엔 뭐? 백만이 모이면 직접민주주의가 구현될까? 자...... 아마도 한나라당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케이 그럼 투표하자. 콜?
촛불의 감동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역사 속에 박제로, 그리고 꺼지기 전의 타오름으로 남아 있는 만민공동회의 허망함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진보는 무엇을 해야 할까. 조직화? 옳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조직화냐는 질문에 답을 주지 못하면 그 조직은 자석요 파는 조직보다도 더 미약하고 약소해질 것이다.
- 2009/09/03 03:24
- nasanha.egloos.com/10123889
- 덧글수 : 18
핑백
인생은 비정규직 : 열정의 제도화 2009-09-03 15:10:00 #
... 칼럼 <열정의 제도화> 산하 <백만이 되면 뭘할까-최장집 교수르 비판하는 사람들에게></a> 하종강 카럼 <'머릿 수 하나 보태는' 사람들> <a name="10123889" title="백만이 되면 뭘할까 - 최장집 교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 more
덧글
근데 그거 아니어도 이래저래 요즘은 그냥 뉴스보기가 싫어지는 세상인 거 같네요. 가끔씩 텔레비를 차버리고 싶....
한겨레 강준만 칼럼 봤었는데요, 삼성불매하는 것보다 신문사의 역량을 키우는 일을 해야한다고, 그런게 열정의 제도화라고 하셨는데,, 사실 그것도 참 요원한 일이 아닌가 싶어서요.
열정의 제도화 참 좋은데, 저는 방점이 제도화가 아니라 열정에 찍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도화 우선에 신경쓰다가 아예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게 된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구요. 현 대의민주제 체제 속에서 과연 직접민주제라는 제도화를 이끌 수 있을지도 잘 가늠이 안되구요..
쥐뿔도 모르면서 그냥 답답한 마음에 올립니다..
사실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이념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연속선상에 있는 만큼 노무현 시기의 실책에 대한 어떠한 반성도 없이 단순히 이명박만 나쁜 놈으로 몰아가는 것은 결국 '인간의 얼굴을 한 이명박' 인 노무현으로의 회귀 이상의 성과를 낼 수가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