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의원은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 생각 변함이 없다. 중앙아프리카의 보카사가 대통령 자리에서 국왕 자리로 갈아탄 이래로는 아마도 처음인 듯 싶은 신흥 왕조의 설립으로 말미암은 일련의 사태에서 민주노동당이 보여 준 기상천외한 각종 성명들과는 질이 다르고, 제성에 안찬다고 경향신문 안보겠다고 거품 무는 '태화강 삽질'과도 차원이 다른 논리를 전개해 주셨다. 혹여 보지 않은 분들은 일독하시기 바란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01008163608§ion=01
그 중에서 감동적인 부분은 이 부분이다.
" 국가보안법 법정에 변호인으로 선 일이 있다. 검사의 가장 주된 공격 방법은, “우리 정부를 그렇게 비판하는 피고인이, 진보를 자처하면서 왜 북의 독재를 비판하지 않느냐" "왜 북의 인권침해를 거론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 마디만 해봐, 그럼 너의 사상이 불온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 줄 테니, 진보면 그 정도는 해야지”라고 유인한다. 그러나 그 법정에서 피고인이 검사로부터 법원으로부터 진보로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단 한 번도, 피고인에게 “북에 대해 한 마디만 하세요. 그러면 정당성도 인정받으면서 무죄판결 받으실 수 있어요”라고 조언한 적이 없다."
눈물 흘릴 뻔 했다. 옳은 말씀이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을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상적 건강성을 확인받는 사회는 이미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놈은 북한도 비판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 파탄이다. 비판의 내용이 다르고 지점이 다른데 엉뚱한 북한을 끌고 와서 방패로 삼는 것은 스스로 비판을 듣기 싫다는 소리이며, 북한을 빌미로 자신의 비판자의 입을 막겠다는 수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 공안당국의 수법이었고, 많은 이들이 거기에 항거하여 싸워 왔다.
문제는 비판의 자유다.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비판의 화살을 엉뚱한 상대의 등짝을 빌려 막으려는 행동이나 그 등짝에 네 화살을 쏘아야 네 비판의 진정성을 믿겠다는 협박이나 결국 핵심은 비판의 자유를 억압하겠다는 꿍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비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공안당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극히 유감스럽지만 이정희 의원이 바로 똑같은 수법으로 경향신문에게 백색 페인트를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한다. " 국가보안법 법정 안의 논리가 일부 변형되어 진보언론 안에도 스며들어 온 것이 안타깝다." 페인트공은 붉은색 전공자만 있는 게 아니다.
경향신문이 이야기한 것은 '비판의 자유'에 근거한 것일 뿐이다. 종북주의자들 (기분 나쁜가? 유독 전주 김씨 가문에서만 2천만 인민의 두말없는 지지를 획득하는 인재가 3대째 '잉태'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에게는 이 호칭도 아깝다. 주의자는 무슨 주의자. 교도지)이 주장하는 바,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종북"이라고 몰아부친 것도 아니다. 북한에 대해선 나름 안면도 있고 말빨도 선다고 생각하는 집단이, 그것도 정권 획득을 목표로 뛰고 있다는 정당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를 물은 것이고, 자신들의 생각으로는 백보를 물러선다 해도 3대째 세습이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부터 어긋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 뿐이다. 즉 북한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 거기에 대한 공당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이정희 의원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 비판의 자유를 봉쇄한다.
"비록 북쪽 사람들은 우리 앞에서 북의 지도자를 칭송하고 찬양하더라도, 우리는 반박하고 싶어도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온 오랜 경험에서 생긴 대응방식이다. 이것은 금강산 관광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의 대응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분명히 하자. 경향신문이 비판한 것은 나이 스물 일곱살의 홍안 청년이 별안간 100만 조선 인민군 대장이 되어 '왕별'을 달고 그 아버지의 아래 자리인 국방위 부위원장을 차고 앉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밑도 끝도 없이 김정일이 색마라고 우긴 것도 아니고, 그의 사치벽을 욕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또 하나의 조국'이면서 언젠가는 '통일을 이뤄야 할 대상'의 정권을 쥔 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 우리는 '오랜 경험에서 생긴 대응 방식'대로 잠자코 있어야 옳단 말인가. 경향신문이 그 질문을 한다고 해서 '국가보안법'을 내세우는 공안당국을 닮았다고 몰아부치는 버릇은 도대체 언제 누구에게 배웠는가. 감히 누구에게 "반박하고 싶어도 아예 말하지 말라."고 법정에 선 사이비 변호사같이 겁박하고 있는가. 일종의 외국 영토에 들어간 관광객의 주의사항을 우리 "정치권과 언론"도 지켜야 한다는 데에선 말문이 막힌다. 이것이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논리인가, 인권 변호사 이정희 의원의 생각인가, 아니면 우리가 익히 보던 공안당국의 말버릇인가.
과거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에서 기독교인들을 가려내기 위하여 '후미에'를 만들었다. 십자가 위의 예수를 동판에 새긴 것이다. 막부는 기독교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세워 놓고 그를 밟고 지나가게 했다. 밟은 사람은 방면되었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은 댓가를 치루어야 했다. 지극히 폭력적인 수단이며, 양심의 자유 따위와는 삼생의 인연이 없는 봉건 시대의 폭력이었다. 이정희 변호사는 "세습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일종의 '후미에'로 보고 있을 것도 같다.그러니 "진보임을 인정받으려는 생각으로 시류에 맞춰 말을 보태기보다, 자신 행동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진보"라고 설파하며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임을 고창하고 있으리라 여긴다. 적어도 남한의 역사에서 북한의 존재가 일종의 '후미에'였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기에.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후미에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최근 국체를 왕국으로 바꾼 바 있는 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남한보다 큰 영토와 2천만의 국민과 100만의 군대를 거느린 나라이며 남한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대립하고 있는 나라이다. 일본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해 가야 했던 후미에가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된다는 뜻이다. 엄연히 한 국가의 억조창생을 책임진 정권의 "권력구조 문제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된다면 이것은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상징이 아니라 맹신과 광신의 치부를 가리는 방패일 뿐이다. 일본의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보배였지만 한국의 미션 스쿨들에게 '신앙의 자유'란 제 지갑과 뱃속을 지켜주는 성채가 되었듯 말이다.
이정희 의원은 지금 후미에 위를 걷고 있다고 대단한 오해를 하고 계신 모양이지만 기실은 누군가의 배를 비판의 칼침으로부터 지켜주는 구리판 노릇을 하고 계실 뿐이라는 점을 지적해 드리고 싶다. 저 똑똑하고 아까운 국회의원이 어쩌다 "찌를테면 찔러 봐."라고 내미는 배때지 위를 두른 동판 노릇을 자처하시게 되었는지 아깝기 그지없다.
세습이라는 삼성스럽고 한국 교회스럽고 왕조스러운 '후계자' 결정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의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라면 존중하겠다. 하지만 이런 낯부끄러운 언사는 입에 담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은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북의 권력승계를 비난하다가, 뒤에 그 후계자와 대화의 상대방으로 마주앉게 되면 “능력 있는 사람”이라며 이전의 비난을 거둬들일 치사를 만들어내야 하는 궁박한 입장에 스스로 빠져 들어갈 생각이 나에게는 전혀 없다."
적어도 낯부끄럽다고 표현한 이유는 내가 아는 한 이것은 정치인의 말이 아니라 도덕재무장운동연합이나 바르게살기위원회 총재의 취임식에서 나올 언설이기 때문이다. '리명박 역도'는 기본으로 하고 더 험한 말도 서슴지 않았던 북한의 정치 일꾼들이 남한 정부에 대화를 제의하면서 그리 '궁박해' 했던 기억은 없다. '전쟁광'이라고 악을 쓰고 비난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남한을 따돌린 채 미국과 쑥덕거리기도 하여 남한 약을 바짝 올리던 나라가, 이전에 '승냥이 미제'라고 퍼부었던 비난을 거둬들이느라 땀흘리는 광경 역시 꿈에도 대한 적 없다. 그런 게 정치다.
왜? 왜? 남한의 자칭 진보정당만은 그 비판 한 마디 했다고 나중에 '궁박'스러워 할 걱정을 해야 하며, '능력 있는 사람'이라며 이전의 비난을 얼버무릴 궁리를 지레 먼저 해야 하는가. 그리고 자신들의 비판의 자유를 행사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물은 언론에는 '절독'의 통고를 하고 '국가보안법적 논리'라는 스산한 딱지를 날려야 그 속이 후련해지는가. 북한 정권이 당신들로서는 차마 밟을 수 없는 '후미에'이기 때문은 아닌가. 정치 생명은 버려도 차마 씹을 수는 없는 순결한 숭배의 대상이어서는 아닌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01008163608§ion=01
그 중에서 감동적인 부분은 이 부분이다.
" 국가보안법 법정에 변호인으로 선 일이 있다. 검사의 가장 주된 공격 방법은, “우리 정부를 그렇게 비판하는 피고인이, 진보를 자처하면서 왜 북의 독재를 비판하지 않느냐" "왜 북의 인권침해를 거론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 마디만 해봐, 그럼 너의 사상이 불온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 줄 테니, 진보면 그 정도는 해야지”라고 유인한다. 그러나 그 법정에서 피고인이 검사로부터 법원으로부터 진보로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단 한 번도, 피고인에게 “북에 대해 한 마디만 하세요. 그러면 정당성도 인정받으면서 무죄판결 받으실 수 있어요”라고 조언한 적이 없다."
눈물 흘릴 뻔 했다. 옳은 말씀이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을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상적 건강성을 확인받는 사회는 이미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놈은 북한도 비판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 파탄이다. 비판의 내용이 다르고 지점이 다른데 엉뚱한 북한을 끌고 와서 방패로 삼는 것은 스스로 비판을 듣기 싫다는 소리이며, 북한을 빌미로 자신의 비판자의 입을 막겠다는 수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 공안당국의 수법이었고, 많은 이들이 거기에 항거하여 싸워 왔다.
문제는 비판의 자유다.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비판의 화살을 엉뚱한 상대의 등짝을 빌려 막으려는 행동이나 그 등짝에 네 화살을 쏘아야 네 비판의 진정성을 믿겠다는 협박이나 결국 핵심은 비판의 자유를 억압하겠다는 꿍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비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공안당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극히 유감스럽지만 이정희 의원이 바로 똑같은 수법으로 경향신문에게 백색 페인트를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한다. " 국가보안법 법정 안의 논리가 일부 변형되어 진보언론 안에도 스며들어 온 것이 안타깝다." 페인트공은 붉은색 전공자만 있는 게 아니다.
경향신문이 이야기한 것은 '비판의 자유'에 근거한 것일 뿐이다. 종북주의자들 (기분 나쁜가? 유독 전주 김씨 가문에서만 2천만 인민의 두말없는 지지를 획득하는 인재가 3대째 '잉태'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에게는 이 호칭도 아깝다. 주의자는 무슨 주의자. 교도지)이 주장하는 바,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종북"이라고 몰아부친 것도 아니다. 북한에 대해선 나름 안면도 있고 말빨도 선다고 생각하는 집단이, 그것도 정권 획득을 목표로 뛰고 있다는 정당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를 물은 것이고, 자신들의 생각으로는 백보를 물러선다 해도 3대째 세습이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부터 어긋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 뿐이다. 즉 북한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 거기에 대한 공당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이정희 의원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 비판의 자유를 봉쇄한다.
"비록 북쪽 사람들은 우리 앞에서 북의 지도자를 칭송하고 찬양하더라도, 우리는 반박하고 싶어도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온 오랜 경험에서 생긴 대응방식이다. 이것은 금강산 관광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의 대응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분명히 하자. 경향신문이 비판한 것은 나이 스물 일곱살의 홍안 청년이 별안간 100만 조선 인민군 대장이 되어 '왕별'을 달고 그 아버지의 아래 자리인 국방위 부위원장을 차고 앉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밑도 끝도 없이 김정일이 색마라고 우긴 것도 아니고, 그의 사치벽을 욕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또 하나의 조국'이면서 언젠가는 '통일을 이뤄야 할 대상'의 정권을 쥔 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 우리는 '오랜 경험에서 생긴 대응 방식'대로 잠자코 있어야 옳단 말인가. 경향신문이 그 질문을 한다고 해서 '국가보안법'을 내세우는 공안당국을 닮았다고 몰아부치는 버릇은 도대체 언제 누구에게 배웠는가. 감히 누구에게 "반박하고 싶어도 아예 말하지 말라."고 법정에 선 사이비 변호사같이 겁박하고 있는가. 일종의 외국 영토에 들어간 관광객의 주의사항을 우리 "정치권과 언론"도 지켜야 한다는 데에선 말문이 막힌다. 이것이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논리인가, 인권 변호사 이정희 의원의 생각인가, 아니면 우리가 익히 보던 공안당국의 말버릇인가.
과거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에서 기독교인들을 가려내기 위하여 '후미에'를 만들었다. 십자가 위의 예수를 동판에 새긴 것이다. 막부는 기독교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세워 놓고 그를 밟고 지나가게 했다. 밟은 사람은 방면되었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은 댓가를 치루어야 했다. 지극히 폭력적인 수단이며, 양심의 자유 따위와는 삼생의 인연이 없는 봉건 시대의 폭력이었다. 이정희 변호사는 "세습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일종의 '후미에'로 보고 있을 것도 같다.그러니 "진보임을 인정받으려는 생각으로 시류에 맞춰 말을 보태기보다, 자신 행동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진보"라고 설파하며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임을 고창하고 있으리라 여긴다. 적어도 남한의 역사에서 북한의 존재가 일종의 '후미에'였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기에.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후미에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최근 국체를 왕국으로 바꾼 바 있는 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남한보다 큰 영토와 2천만의 국민과 100만의 군대를 거느린 나라이며 남한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대립하고 있는 나라이다. 일본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해 가야 했던 후미에가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된다는 뜻이다. 엄연히 한 국가의 억조창생을 책임진 정권의 "권력구조 문제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된다면 이것은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상징이 아니라 맹신과 광신의 치부를 가리는 방패일 뿐이다. 일본의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보배였지만 한국의 미션 스쿨들에게 '신앙의 자유'란 제 지갑과 뱃속을 지켜주는 성채가 되었듯 말이다.
이정희 의원은 지금 후미에 위를 걷고 있다고 대단한 오해를 하고 계신 모양이지만 기실은 누군가의 배를 비판의 칼침으로부터 지켜주는 구리판 노릇을 하고 계실 뿐이라는 점을 지적해 드리고 싶다. 저 똑똑하고 아까운 국회의원이 어쩌다 "찌를테면 찔러 봐."라고 내미는 배때지 위를 두른 동판 노릇을 자처하시게 되었는지 아깝기 그지없다.
세습이라는 삼성스럽고 한국 교회스럽고 왕조스러운 '후계자' 결정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의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라면 존중하겠다. 하지만 이런 낯부끄러운 언사는 입에 담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은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북의 권력승계를 비난하다가, 뒤에 그 후계자와 대화의 상대방으로 마주앉게 되면 “능력 있는 사람”이라며 이전의 비난을 거둬들일 치사를 만들어내야 하는 궁박한 입장에 스스로 빠져 들어갈 생각이 나에게는 전혀 없다."
적어도 낯부끄럽다고 표현한 이유는 내가 아는 한 이것은 정치인의 말이 아니라 도덕재무장운동연합이나 바르게살기위원회 총재의 취임식에서 나올 언설이기 때문이다. '리명박 역도'는 기본으로 하고 더 험한 말도 서슴지 않았던 북한의 정치 일꾼들이 남한 정부에 대화를 제의하면서 그리 '궁박해' 했던 기억은 없다. '전쟁광'이라고 악을 쓰고 비난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남한을 따돌린 채 미국과 쑥덕거리기도 하여 남한 약을 바짝 올리던 나라가, 이전에 '승냥이 미제'라고 퍼부었던 비난을 거둬들이느라 땀흘리는 광경 역시 꿈에도 대한 적 없다. 그런 게 정치다.
왜? 왜? 남한의 자칭 진보정당만은 그 비판 한 마디 했다고 나중에 '궁박'스러워 할 걱정을 해야 하며, '능력 있는 사람'이라며 이전의 비난을 얼버무릴 궁리를 지레 먼저 해야 하는가. 그리고 자신들의 비판의 자유를 행사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물은 언론에는 '절독'의 통고를 하고 '국가보안법적 논리'라는 스산한 딱지를 날려야 그 속이 후련해지는가. 북한 정권이 당신들로서는 차마 밟을 수 없는 '후미에'이기 때문은 아닌가. 정치 생명은 버려도 차마 씹을 수는 없는 순결한 숭배의 대상이어서는 아닌가.



덧글
프레시안의 싱가포르 언급을 보셨으면 알겠지만 갈때까지 간다 싶더군요. 저쪽은.
2010/10/09 18:05 #
비공개 덧글입니다.
2010/10/09 20:40 #
비공개 덧글입니다.국시가 민주주의가 아니고 민노당은 먹는 국시여
정말 완벽한 반론이군요..
이정희 의원의 주장을 보면서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북한은 '미 제국주의' 드립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미국하고 대화해볼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하는가?> 게다가 남한의 모든정당이 북한을 비판하기라도 하면, 남북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논리에선 코웃음을 치게 되더군요. 결국 비판할 자유 자체를 남북관계에 연동시키겠다는 건데, 대체 무슨 권리로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정희 의원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럼 '실제 존재하는 북한 체제 내부의 모순들은 그럼 앞으로 언제,어떤 방식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비판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남북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북한 체제를 비판할 수 있는 방법이란게 있는거긴 하는건가?'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물론 그런게 존재할리는 없겠지요. 결국 저는 이정희 의원의 저 주장이 북한에 대한 비판은 통일될 때까지 영원히 하지말라는 소리로 들립니다.
진보 혹은 진보정당에서의
"진보"는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중 혹은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불평등을 당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정치, 경제,사회적 의견을 가지고 그걸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를 이루려고 하는게 아니라
'북한의 민중이 아닌 지배층'을 우리민족으로 인식하여
국제적으로 고립되지않고, 그네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는 사회를 이루어 주는 것을 말하는 걸
인정한 거 같더군요.
2010/10/13 10:45 #
비공개 덧글입니다.좋은 글 읽고 갑니다.
"민주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북한의 세습을 비판할 수 있다." = O
북한과 얼굴 마주할 것이 두려워 북한의 세습을 비판하지 못하는데, 어째서 군사 독재에 대한 비판은 잘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저로서는 국경 너머에 있는 북한보다 당장 우리나라의 공권력을 틀어쥔 독재자가 훨씬 무서울 것 같은데.
둘째, 언급하신바와 같이 민주노동당은 정당입니다. 즉, 정치인들의 무리입니다. 정치인들이 하는 일은 비판이 아닙니다. 저 북쪽의 대신들이 하는 것처럼, 정치인의 비판은 겁박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한나라당 의원님들이 북한의 '민주화'를 언급할 때, 그것이 북한 주민들의 민주적 권리 획득을 바라는 염원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오해일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이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한 언급을 피함으로써 고립에 빠진 것을 두고, 적절하지 못한 대처를 했고 따라서 무능한 정당이다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권력세습에 대해 언급을 피하는 것이 '종북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른 말일 것입니다. 권력세습에 대한 비판이 '항북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 듯이 말입니다.
셋째, 이것은 좀 논쟁적일 수 있는 의견일 수 있겠습니다만, 북한은 외국입니다. 대한민국의 정당이 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해야 할 '의무'가 있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민주적 가치를 훼손해서? 그렇다면 왜 중국이 류 샤오보를 감금하고 접견권 등을 무시하는 데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왜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을까요. 일본의 부라쿠민은 어떻습니까? 중동의 석유군벌들은? 그들의 '더러운 석유'에 대해서 왜 대한민국의 정당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통상 정당에게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습니다. 북한 관련 문제라고 다를 게 무엇일까요. 같은 민족이니까? 글쎄요...
정치인이 아니면 비판이 아니라 겁박이라는 말씀은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
북한이 차라리 외국이고, 통일하자는 말 따위 안나오면 좋겠습니다. 일본과 중국, 중동의 아랍토후국과 통일할 일 있습니까? 통일운동하는 사람들 있습니까? 민노당은 바로 통일을 주장하는 정당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는 모르쇠 하면그건 직무유기죠
정당의 공언은 그들의 사상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정치적 효과를 위한 수단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명박씨의 '공정사회'론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북한문제에만 순결하게 진심을 드러낼 이유는 없습니다. 이런 정치적 수단에 불과한 공언 때문에 '종북성'을 의심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상되는 미래에 김정일 정권을 대체할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통일을 위해서 현북한정권 건드려서 좋을 일 없습니다. 북한사람들 김정일이 사진 비맞았다고 난리치는 거 보셨죠. 더하여 노동당 정권은 실재하는 정치적 힘입니다. 북진통일이나 흡수통일 할 거 아니면(이 두개는 하기 어렵거나 할 수 있더라도 할 가치가 없죠.) 대화로 풀어야 하는데, 자기 정체 대놓고 욕하는 사람들이랑 대화하기 어렵죠. 민노당이 통일 노린다고 한다면, 북한 세습에 대해 발언을 아끼는 것은 직무유기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태도입니다.
저는 한국 진보의 미래가 반북-친북 구도를 벗어나는 데 있지, 친북의 혐의를 벗는데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북문제는 이념적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한반도에 달린 폭탄입니다. 폭탄은 터지지 않게 잘 해체하는 것이 중요하지 '올바르게' 다루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