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70년 3월 31일 일본항공(JAL) 351편(통칭 요도호)이 일본 적군파 학생 9명에 의해 납치됐다. 납치범들은 기수를 평양으로 돌릴 것을 요구했다. 납치 사실이 알려진 후 이 비행기가 급유를 위해 후쿠오카 공항에 머물던 중, 김포공항 관제소에 뜻밖의 전화가 걸려 온다. "나 중앙정보부장이야. 납치된 항공기를 무슨 수를 쓰든 김포공항에 내리게 해. 이건 각하의 지시야. 그러기 위해서라면 여기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해도 좋아."
관제소는 발칵 뒤집어지고 동해상으로 북상하는 요도 호를 향해 항공국제법이고 뭐고 다 무시한 일종의 교신 낚아채기가 시도된다. 또 공군기까지 출동한 끝에 요도 호를 김포공항에 착륙시키는데 성공한다. 그 긴박한 시간 김포공항에는 급조된 연극이 막을 올린다. 인민군복을 입은 병력이 공항에 배치되었고, 치마저고리를 입은 어여쁜 여인들이 꽃다발을 든 채 대기했다. 인민군 군관복을 입은 이가 "환영합니다 여기는 평양입니다." 일본어로 요도호 납치범들을 맞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급조된 연극은 수포로 돌아간다. 적군파 중 한 명이 평양공항이라면 있을 리 없는 노스웨스트 항공사 마크를 목격한 것이다. 그래도 조선인민공화국 평양이라고 우기는 미심쩍은 북한인들에게 적군파는 김일성 초상화를 요구했다. 김일성의 사진도 신문에 싣지 못하던 시절, 초상화는 어디에도 없었고 적군파는 여기가 평양 아닌 서울임을 깨닫는다.
요도호를 납치했던 학생들은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 소속으로, 무력 저항을 통해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대한 일본의 협조를 막겠다는 것을 기치로 하고 있었다. 북한을 일본 혁명의 해외 거점으로 삼겠다며 김일성 주석을 설득시키겠다는 포부도 어기찼다. 그들에게 북한은 최적의 혁명 거점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반응은 미지근 내지는 차가왔다. "그들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들을 초청하거나 환영한 바도 없지만 일단 우리 영역에 들어왔고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는 이상 우리로서는 그들을 돌려보낼 수 없다."는 정도.
지리멸렬 상태에 접어든 적군파로서 전후 복구를 훌륭히 끝내고 남한을 압도하며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매진하던 시기의 북한은 확실히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그 짝사랑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미 북한에서 눈을 감은 4명 말고, 일본에 잠입했다가 체포된 2명 말고, 아직도 북한에 남아 있는 3명의 옛 적군(赤軍)들은 나이 스물 여덟의 대장군님과 강성대국을 꿈꾸는 배고픈 인민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1세기의 남한에서 북한에 대한 짝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칭 진보 정당의 구성원들을 보면서는 또 어떤 감회가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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