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1975.4.12 아 김상진 산하의 오역



 엘리어트는 한국 사람이었나 보다. 그에게 4월이 왜 잔인했는지는 모르나, 한국만큼 잔인한 4월을 가진 나라도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역사 뒤적이다가 진저리가 쳐질 정도. 인혁당 관련자들에 대한 전격적 사형 집행이 단행된 3일 뒤 1975년 4월 12일 또 한 명의 젊은이가 야만의 독재에 항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김상진. 서울 농대 축산학과 학생.

1975년 4월 8일 대통령의 긴급조치 7호가 고려대학교 한 학교에 내려진 것을 위시하여 서울의 대학가는 굳게 문이 닫혔고, 유별나게 심했던 황사는 유신의 살기처럼 온 나라를 뒤덮었다. 할복 직전까지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으며 진로를 고민하는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었다는 김상진은 자신의 양심선언문을 언론사에 전달할 방도를 치밀하게 세워 두고서 4월 11일의 자유성토대회 연사로 나섰다.

열정적으로 연설문을 읽어 내려가던 그는 "이것이 영원한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면 이 보잘것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까지 읽은 뒤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칼을 빼들고서 "동요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하며 그대로 자신의 배에 꽂은 뒤 그어 올렸다. 별안간 벌어진 사태 앞에 경악한 친구들이 병원으로 옮겼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975년 4월 12일 세상을 떠난다. 학생운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는 그가 처음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고독 뿐이 아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은" 막막함도, " 겨울의 대지, 살점 묻은 바람, 계엄령 하의 조국" (김정환 시)에서 살아가는 미칠 것 같은 갑갑함도 사람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손길이 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칭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목숨을 끊지 않고는 자유로운 외침 한 번 드날리지 못하는 시대, 숨을 쉬면 쉴수록 숨이 막혀 오는 지독한 황사 같은 체제에서 그 자살을 수이 폄하할 수 있는 자도 없다. 김상진은 그런 시대를 살았고, 오늘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차이라면 김상진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사람들을 깨우려 했지만 우리는 다른 이의 죽음을 통해 얼핏얼핏 깨어나고 있을 따름일 뿐.

그가 미처 읽지 못한 양심선언문의 마지막 구절이다. "저 지하에선 내 영혼에 눈이 뜨여 만족스런 웃음 속에 여러분의 진격을 지켜 보리라. 그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는 날, 나! 소리없는 갈채를 만천하에 울리게 보낼 것이다."

덧글

  • 백면서생 2011/04/14 00:41 #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은 아니었으리..." 사진을 감히 마주보지 못 하고 흘려보면서 적어봅니다. 언젠가는 좋은 날 오겠지요...
  • 산하 2011/04/14 22:47 #

    얼마나 갑갑한 시기였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정말 북한보다 더한 남한이었어요 그때는
  • 2011/04/14 16:4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산하 2011/04/14 22:48 #

    올라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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