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5월 16일. 불세출의 두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의 마지막 승부가 펼쳐졌다. 그때까지 1승씩을 주고받았던 두 사람은 나란히 선발투수로 사직운동장 마운드를 밟았고 그때부터 징하도록 긴 명승부를 조율해 나간다. 82년 세계 선수권 대회 때 그랬듯 초반 난조를 종종 보이던 선동열이 먼저 2점을 내 줬지만 해태 타선도 최동원에게 그 정도의 점수를 낼 능력은 있었다. 2대2. 그러나 롯데와 해태 양팀 타선 모두에게 그 이상은 허락되지 않았다.
발이 머리까지 올라가는 다이나믹한 키킹 후 불처럼 토해내는 강속구로 거의 혼자서 롯데를 우승시켰던 중천의 해 최동원과 고려대 시절부터 그때까지... 부동의 에이스로 상대팀의 공포의 대상이던 떠오르는 해 선동렬은 그야말로 공 하나 공 하나에 자신들의 명예를 실어 던지는 듯 했고, 투수전은 재미없다는 말은 적어도 그 시점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감독도 감히 누구 하나 뺄 생각을 못했고 타자들은 본의 아니게 조역이 되어 갔다. 9회를 넘어서도 더욱 쌩쌩해지는 둘의 공은 관중들을 무아지경으로 몰아넣었다. 나이 서른의 최동원은 던질수록 젊어지는 듯 했고, 대주자 작전을 쓰느라 포수 자원을 다 써 버려서 직구만 겨우 포구 가능한 내야수 백인호에게 마스크를 맡긴 선동열은 직구로 롯데 타선을 농락했다.
경남고 연세대를 나와 부산에 연고지를 둔 제과회사 롯데의 수호신이었던 최동원과 광주일고 고려대를 나와 광주에 둥지를 튼 제과회사 해태의 간판이었던 선동렬은 각각 2백개가 넘는 공을 던지며 격렬하게 맞섰다. 장엄하기까지 한 승부였다. 또 그때 그 시절이니만큼 가능한 승부였다. 요즘이라면 2백개 이상의 공을 뿌려대는 1:1 승부란 상상할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희대의 명승부는 선동렬이 15회말 롯데 타자 3명을 내리 삼진으로 잡아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선동렬은 후일 더욱 승승장구했고 일본에서도 활약했고, 한국시리즈도 제패하는 행운을 누렸지만, 최동원은 선수협의회를 만들려다가 왕따를 당하고 이적 후 패전처리 투수 역할까지 맡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는 최동원만 생각하면 롯데에 정나미가 떨어진다. 84년의 영웅이자 한국 야구사의 걸출한 인걸에게 그따위 대접을 했고 그 뒤로도 눈길 한 번 안주는 무정한 구단을 어쩔 수 없이 응원하는 게 때론 뭐 같다.
최동원이 롯데에서 올린 승수가 내 알기로 96승이다. (틀릴 수도 있다) 시카고 컵스에 염소의 저주가 있다면 롯데에는 최동원의 저주 같은 게 있을 것도 같다. 아마 최동원은 은퇴했지만 그 기운이 남아 있던 92년 이래, 롯데는 96 동안 우승하지 못할 것이다. (좀 심했나)

발이 머리까지 올라가는 다이나믹한 키킹 후 불처럼 토해내는 강속구로 거의 혼자서 롯데를 우승시켰던 중천의 해 최동원과 고려대 시절부터 그때까지... 부동의 에이스로 상대팀의 공포의 대상이던 떠오르는 해 선동렬은 그야말로 공 하나 공 하나에 자신들의 명예를 실어 던지는 듯 했고, 투수전은 재미없다는 말은 적어도 그 시점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감독도 감히 누구 하나 뺄 생각을 못했고 타자들은 본의 아니게 조역이 되어 갔다. 9회를 넘어서도 더욱 쌩쌩해지는 둘의 공은 관중들을 무아지경으로 몰아넣었다. 나이 서른의 최동원은 던질수록 젊어지는 듯 했고, 대주자 작전을 쓰느라 포수 자원을 다 써 버려서 직구만 겨우 포구 가능한 내야수 백인호에게 마스크를 맡긴 선동열은 직구로 롯데 타선을 농락했다.
경남고 연세대를 나와 부산에 연고지를 둔 제과회사 롯데의 수호신이었던 최동원과 광주일고 고려대를 나와 광주에 둥지를 튼 제과회사 해태의 간판이었던 선동렬은 각각 2백개가 넘는 공을 던지며 격렬하게 맞섰다. 장엄하기까지 한 승부였다. 또 그때 그 시절이니만큼 가능한 승부였다. 요즘이라면 2백개 이상의 공을 뿌려대는 1:1 승부란 상상할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희대의 명승부는 선동렬이 15회말 롯데 타자 3명을 내리 삼진으로 잡아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선동렬은 후일 더욱 승승장구했고 일본에서도 활약했고, 한국시리즈도 제패하는 행운을 누렸지만, 최동원은 선수협의회를 만들려다가 왕따를 당하고 이적 후 패전처리 투수 역할까지 맡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는 최동원만 생각하면 롯데에 정나미가 떨어진다. 84년의 영웅이자 한국 야구사의 걸출한 인걸에게 그따위 대접을 했고 그 뒤로도 눈길 한 번 안주는 무정한 구단을 어쩔 수 없이 응원하는 게 때론 뭐 같다.
최동원이 롯데에서 올린 승수가 내 알기로 96승이다. (틀릴 수도 있다) 시카고 컵스에 염소의 저주가 있다면 롯데에는 최동원의 저주 같은 게 있을 것도 같다. 아마 최동원은 은퇴했지만 그 기운이 남아 있던 92년 이래, 롯데는 96 동안 우승하지 못할 것이다. (좀 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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