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대통령 문화 특보'의 강연이 한동안 장안을 달궜다. 내 그 양반의 '찍지 마 C8'부터 "학부모님 세뇌되셨네.'를 거쳐 '어이 김 관장 인터뷰하지 마'까지 그 걸레 같은 입에 치를 떤 것이 여러 번이요, 그 입을 빨래집게로 집은 뒤 360도를 돌리는 꿈까지 한 두 번이 아닌 세 번을 꾼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물론 유인촌의 말도 그렇게 순순히 귓속에 박히지는 않는다. 우리 나라 궁궐 담이 일본에 비해 위압적이지 않고 낮다는 말까지는 괜찮다. 자객 숨어들까봐 별별 장치를 다 해 놓은 일본의 성이나 자객이 숨을지 모른다며 궁궐에 나무 한... 그루 심어놓지 않은 자금성보다야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왜 "그러니 민비가 시해되지 않았냐."가 나오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한마디로 무식한 소리다. 그냥 웃어 주면 된다. 거기에 육두 문자 하나 살풋 고명으로 얹어줘도 괜찮다. 그런데 갑자기 필요 이상의 쌍심지를 돋우는 사람들이 삽시간에 대군을 이루었다.
"민비라니. 민비라니 명성황후더러 민비라니." 가 그 쌍심지의 원천이었다. 민비는 일본인들이 비하해서 부르는 호칭인데 문화부 장관을 지내고 자그마치 '역사 스페셜'의 진행자였다는 인간이 민비라고 부를 수 있냐는 것이다. 산 넘어 태산이라고 "우리나라 국모를 민비로 비하하다니." 하는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드는 주장도 출몰했다. "나는 조선은 국모다,"를 부르짖으며 일본인 낭인 앞에서 당당하게 죽어간 명성황후를 그리며 눈물 짓는 판타지까지 구성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민비는 일본인들이 지어낸 이름이 아니다. 숙종조 인현왕후도 민비 또는 민후로 종종 기록에 등장하고, 소현세자빈도 '강빈'이라고 호명되었다. 매천야록을 비롯해서 왕실에 대한 충성심이 축구공 안의 공기처럼 들어찬 인사들도 그 표현을 쓰고 있다. 더욱이 민비는 구중궁궐에서 왕의 첩들이랑 신경전이나 벌이면서 일생을 마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치의 일선에 나섰고 국왕을 움직였으며 조선왕조 사상 유일하게 "왕비를 죽여라!"고 부르짖는 백성들의 목표가 되었던 사람이다. 그녀만의 고유명사가 당연히 따라붙을 사람이었다. 즉 왕비 민씨를 줄여 부르는 민비라는 호칭은 '대원군'만큼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일본인들이 '민비'라 해서 그것이 비칭이 된다는 논리는 "일본놈들이 우리나라 지맥을 끊기 위해 명산대혈에 쇠파이프를 박았다."는 것만큼이나 황망한 것이 된다.
1882년의 바로 오늘, 7월 24일 (음력 6월 10일)은 닷새 전 발생한 임오군란을 일으킨 병사들이 궁궐을 들이친다. 그들의 목표는 민비였다. 온갖 사치와 향락을 다 누리면서도 그들을 지켜 주는 자신들에게는 열 달 동안 손가락을 빨게 했던 조정, 그 가운데에서도 선혜청 당상 민겸호 등 민씨 일족의 횡포에 치를 떨었고, 그 중심에 민비가 있음을 병사들과 난민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고 금강산 1만 2천봉 봉우리마다 쌀 한 섬, 배 한 필, 돈 천 냥씩을 온갖 치성을 다 드렸던 그 왕비를 요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여우를 죽여라."는 13년 뒤 을미사변에서 일본인 낭인들만 부르짖은 것이 아니었다. 이미 1882년 오늘 그 왕비의 굶주리고 분노한 신민들이 토해냈던 함성이었다. 민비를 명성황후라 부르지 않았다고 난리를 치는 분들은 중전마마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은 임오군란의 핏발선 병사들을 어떻게 나무랄 것인가.
그때 민비는 무예별감 홍재희 (뮤지컬 명성황후나 기타 영화 등에서 명성황후를 사모한 것으로 그려지는 홍계훈 바로 그 사람이다)의 도움으로 죽음 직전에서 벗어나 장호원으로 피난을 간다. 대원군은 가짜 장례식까지 치르며 그녀를 지우려 했지만 민비는 청나라와 연결해서 대원군을 제거하고 의기양양하게 서울로 돌아온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외세를 등에 업는데 능했다. "열강 어느 한쪽의 힘이 세지지 않도록 교묘한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는 주장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 결국 조선을 열강의 놀이터로 만든 것은 민비와 그 척족들의 탐욕 때문이었다. 그들은 국가의 위기를 염려한 것이 아니라 일족의 부귀영화에 누가 될까에 민감했고, 그를 지켜줄 뒷배를 찾았다. 임오군란으로 쓴맛을 보고도 그들의 버릇은 여전했다.
"그렇게 밉기만 한 존재였다면 을미사변 후 국모의 원수를 갚자고 들붙같이 일어났겠는가?"라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겠다. "전두환도 아웅산 때 죽었으면 지금 영웅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조선에는 문록 경장의 역 (임진왜란)의 흔적이 전국에 너무 많이 남아 있어서 반일감정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일본 관리의 탄식처럼 일본이라면 대대로 치를 떨었던 나라의 백성으로서 밉든 곱든 왕비가 별안간 쳐들어온 '쪽발이'들의 칼에 맞아 죽었는데, 거기에 대한 분노가 없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로부터 100년도 넘게 흐르고 민비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나부터, 어떤 일본인이 "민비는 죽을만한 여자였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면 책상 뒤집어 엎으면서 이 쪽발이 시키가.....를 부르짖을 것 같은데 말이다.
지금까지 민비를 또는 명성황후를 실컷 헐뜯었지만 나는 명성황후라는 호칭에 별 반감이 없다. 무엇이라 부르든 호칭일 뿐이고 황실복원주의자들의 준동이 아닌 한, 내 정치적 입장과도 일점 무관하며, 내 먹고 사는 일에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데 무슨 상관이랴. 더구나 공식명칭이니 나 역시 공식적인 발언시에는 명성황후라고 불러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민비라고 부르면 천하 없는 매국노에 역사의식이 전혀 없는 친일파에 국모께 흙탕물을 끼얹는 것으로 치부하는 폭력성에 대하여 나는 단호하게 저항한다. 이건 일본에 대한 열등감의 발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일본에 의해 죽었으니 불쌍하고 안스러운 것까지는 좋은데, 일본이 민비라 불렀으니 비칭이 된다는 논리는 역으로 아직도 그들의 정신세계가 식민지에 머물러 있음을 증명하는 행태일 뿐이다. 나아가 "나는 조선은 국모다."를 부르짖는 드라마 속 명성황후에 빙의되어 "우리의 국모"를 찾는 것은 독보적인 코미디다. 민비는 궁녀들 틈에 끼어 있다가 죽었고 일본의 암살자들은 한동안 그들이 민비를 죽였는지도 몰랐다.
최대의 코미디는 그래도 한때 잘나가는 정치사이트의 대표였으며, 물경 자칭인지 타칭인지 몰라도 대기자씩이나 되는 사람의 발언에서 바야흐로 발현된다.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보낸다.
"님. 주동아리 닥치고 그냥 계셈. 명성왕후가 나라를 말아먹었건 말건 역사는 역사로 받아들이셈.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세종대왕도 봉건통치자로서 이씨 가문의 이익을 위해 운운하는 논리도 성립하는거임 걍 찌그러지셈 비명지르지 말고." 이 가련한 인간은 왜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은 나라를 말아먹었건 말건 역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1882년 7월 24일 오늘 임오군란의 성난 군민들이 대궐을 덮쳤다. 우리 역사에서 일반 백성들이 대궐을 범한 경우는 몇 되지 않는다. 임금이 도망간 경복궁에 불을 질렀던 임진왜란 때 정도랄까. 그 분노에 불을 당긴 것은 조선 왕조 최악의 외척 일족 민씨 일문이었고, 그 중심에는 명성황후 민씨. 즉 민비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명성황후라 불러 줄 수는 있으되 명성황후가 아니면 안되는 역사 의식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고 가질 수도 없으며, 가지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물며 국모타령이라니 5.18 기념식에서의 방아 타령만큼이나 어색하지 않은가.
물론 유인촌의 말도 그렇게 순순히 귓속에 박히지는 않는다. 우리 나라 궁궐 담이 일본에 비해 위압적이지 않고 낮다는 말까지는 괜찮다. 자객 숨어들까봐 별별 장치를 다 해 놓은 일본의 성이나 자객이 숨을지 모른다며 궁궐에 나무 한... 그루 심어놓지 않은 자금성보다야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왜 "그러니 민비가 시해되지 않았냐."가 나오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한마디로 무식한 소리다. 그냥 웃어 주면 된다. 거기에 육두 문자 하나 살풋 고명으로 얹어줘도 괜찮다. 그런데 갑자기 필요 이상의 쌍심지를 돋우는 사람들이 삽시간에 대군을 이루었다.
"민비라니. 민비라니 명성황후더러 민비라니." 가 그 쌍심지의 원천이었다. 민비는 일본인들이 비하해서 부르는 호칭인데 문화부 장관을 지내고 자그마치 '역사 스페셜'의 진행자였다는 인간이 민비라고 부를 수 있냐는 것이다. 산 넘어 태산이라고 "우리나라 국모를 민비로 비하하다니." 하는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드는 주장도 출몰했다. "나는 조선은 국모다,"를 부르짖으며 일본인 낭인 앞에서 당당하게 죽어간 명성황후를 그리며 눈물 짓는 판타지까지 구성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민비는 일본인들이 지어낸 이름이 아니다. 숙종조 인현왕후도 민비 또는 민후로 종종 기록에 등장하고, 소현세자빈도 '강빈'이라고 호명되었다. 매천야록을 비롯해서 왕실에 대한 충성심이 축구공 안의 공기처럼 들어찬 인사들도 그 표현을 쓰고 있다. 더욱이 민비는 구중궁궐에서 왕의 첩들이랑 신경전이나 벌이면서 일생을 마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치의 일선에 나섰고 국왕을 움직였으며 조선왕조 사상 유일하게 "왕비를 죽여라!"고 부르짖는 백성들의 목표가 되었던 사람이다. 그녀만의 고유명사가 당연히 따라붙을 사람이었다. 즉 왕비 민씨를 줄여 부르는 민비라는 호칭은 '대원군'만큼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일본인들이 '민비'라 해서 그것이 비칭이 된다는 논리는 "일본놈들이 우리나라 지맥을 끊기 위해 명산대혈에 쇠파이프를 박았다."는 것만큼이나 황망한 것이 된다.
1882년의 바로 오늘, 7월 24일 (음력 6월 10일)은 닷새 전 발생한 임오군란을 일으킨 병사들이 궁궐을 들이친다. 그들의 목표는 민비였다. 온갖 사치와 향락을 다 누리면서도 그들을 지켜 주는 자신들에게는 열 달 동안 손가락을 빨게 했던 조정, 그 가운데에서도 선혜청 당상 민겸호 등 민씨 일족의 횡포에 치를 떨었고, 그 중심에 민비가 있음을 병사들과 난민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고 금강산 1만 2천봉 봉우리마다 쌀 한 섬, 배 한 필, 돈 천 냥씩을 온갖 치성을 다 드렸던 그 왕비를 요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여우를 죽여라."는 13년 뒤 을미사변에서 일본인 낭인들만 부르짖은 것이 아니었다. 이미 1882년 오늘 그 왕비의 굶주리고 분노한 신민들이 토해냈던 함성이었다. 민비를 명성황후라 부르지 않았다고 난리를 치는 분들은 중전마마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은 임오군란의 핏발선 병사들을 어떻게 나무랄 것인가.
그때 민비는 무예별감 홍재희 (뮤지컬 명성황후나 기타 영화 등에서 명성황후를 사모한 것으로 그려지는 홍계훈 바로 그 사람이다)의 도움으로 죽음 직전에서 벗어나 장호원으로 피난을 간다. 대원군은 가짜 장례식까지 치르며 그녀를 지우려 했지만 민비는 청나라와 연결해서 대원군을 제거하고 의기양양하게 서울로 돌아온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외세를 등에 업는데 능했다. "열강 어느 한쪽의 힘이 세지지 않도록 교묘한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는 주장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 결국 조선을 열강의 놀이터로 만든 것은 민비와 그 척족들의 탐욕 때문이었다. 그들은 국가의 위기를 염려한 것이 아니라 일족의 부귀영화에 누가 될까에 민감했고, 그를 지켜줄 뒷배를 찾았다. 임오군란으로 쓴맛을 보고도 그들의 버릇은 여전했다.
"그렇게 밉기만 한 존재였다면 을미사변 후 국모의 원수를 갚자고 들붙같이 일어났겠는가?"라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겠다. "전두환도 아웅산 때 죽었으면 지금 영웅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조선에는 문록 경장의 역 (임진왜란)의 흔적이 전국에 너무 많이 남아 있어서 반일감정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일본 관리의 탄식처럼 일본이라면 대대로 치를 떨었던 나라의 백성으로서 밉든 곱든 왕비가 별안간 쳐들어온 '쪽발이'들의 칼에 맞아 죽었는데, 거기에 대한 분노가 없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로부터 100년도 넘게 흐르고 민비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나부터, 어떤 일본인이 "민비는 죽을만한 여자였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면 책상 뒤집어 엎으면서 이 쪽발이 시키가.....를 부르짖을 것 같은데 말이다.
지금까지 민비를 또는 명성황후를 실컷 헐뜯었지만 나는 명성황후라는 호칭에 별 반감이 없다. 무엇이라 부르든 호칭일 뿐이고 황실복원주의자들의 준동이 아닌 한, 내 정치적 입장과도 일점 무관하며, 내 먹고 사는 일에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데 무슨 상관이랴. 더구나 공식명칭이니 나 역시 공식적인 발언시에는 명성황후라고 불러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민비라고 부르면 천하 없는 매국노에 역사의식이 전혀 없는 친일파에 국모께 흙탕물을 끼얹는 것으로 치부하는 폭력성에 대하여 나는 단호하게 저항한다. 이건 일본에 대한 열등감의 발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일본에 의해 죽었으니 불쌍하고 안스러운 것까지는 좋은데, 일본이 민비라 불렀으니 비칭이 된다는 논리는 역으로 아직도 그들의 정신세계가 식민지에 머물러 있음을 증명하는 행태일 뿐이다. 나아가 "나는 조선은 국모다."를 부르짖는 드라마 속 명성황후에 빙의되어 "우리의 국모"를 찾는 것은 독보적인 코미디다. 민비는 궁녀들 틈에 끼어 있다가 죽었고 일본의 암살자들은 한동안 그들이 민비를 죽였는지도 몰랐다.
최대의 코미디는 그래도 한때 잘나가는 정치사이트의 대표였으며, 물경 자칭인지 타칭인지 몰라도 대기자씩이나 되는 사람의 발언에서 바야흐로 발현된다.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보낸다.
"님. 주동아리 닥치고 그냥 계셈. 명성왕후가 나라를 말아먹었건 말건 역사는 역사로 받아들이셈.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세종대왕도 봉건통치자로서 이씨 가문의 이익을 위해 운운하는 논리도 성립하는거임 걍 찌그러지셈 비명지르지 말고." 이 가련한 인간은 왜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은 나라를 말아먹었건 말건 역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1882년 7월 24일 오늘 임오군란의 성난 군민들이 대궐을 덮쳤다. 우리 역사에서 일반 백성들이 대궐을 범한 경우는 몇 되지 않는다. 임금이 도망간 경복궁에 불을 질렀던 임진왜란 때 정도랄까. 그 분노에 불을 당긴 것은 조선 왕조 최악의 외척 일족 민씨 일문이었고, 그 중심에는 명성황후 민씨. 즉 민비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명성황후라 불러 줄 수는 있으되 명성황후가 아니면 안되는 역사 의식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고 가질 수도 없으며, 가지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물며 국모타령이라니 5.18 기념식에서의 방아 타령만큼이나 어색하지 않은가.



덧글
한반도 역사상 가장 좋은 타이밍에 간 분이 이순신장군님과 민비년,
가장 타이밍 못잡은사람이 박통이라고.
이순신 장군님이 계속 살아계셨더라면 말년에 좋은 일보다 나쁜일이 많으셨을테니 말이죠...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음에도 그모냥이었다니...
*.개인적으로 박통도 어느 정도 타이밍 잡았다고 봐요. 시민운동으로 쫗겨나기 전에 죽었으니 논란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닐지...
페북이나 하시지...
2011/07/28 04:20 #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