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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7.1 대한민국 등기하다 by 산하

산하의 오역

1948년 7월 1일 대한민국 등기하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국회는 할 일이 많았다. 우선 나라 이름부터 정해야 했다. 통상 부르는 대로 조선이라고 할 것이냐 ,Korea의 음가인 고려로 할 것인가, 임시정부때부터 써온 대한민국으로 할 것인가, 그냥 한국으로 할 것인가, 말도 많고 논의도 분분했다. 사실 이 논의는 해방 뒤부터 계속되어 온 주제였다. 신익희가 이끄는 행정연구회는 ...1946년 작성한 헌법 초안에서 국호를 ‘한국’이라고 불렀고 유진오가 1948년 5월 사법부 법전편찬위원회에 제출한 헌법 초안에는 국호를 ‘조선민주공화국’이라고 칭했다. 1948년 6월 국회 헌법기초위원회에 제출된 유진오 안의 국호는 ‘한국’이었다. 이 밖에 한민당과 시국대책협의회(대표 김규식·여운형)에서는 국호를 ‘고려공화국’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결국 표 대결이 이뤄졌고 30명의 제헌의원들은 나라 이름을 놓고 투표를 한다. 결과는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 한국 1표로 대한민국이 최종 후보에 오른다. 대체로 이청천과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계열 의원들은 대한민국을 지지했고 한민당은 고려공화국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리고 1948년 7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188인 중 가 163표 부 2표로 가결된다. 1945년 일제강점 하에서 해방된 '조선'의 남쪽은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등기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이란 이름이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임시정부가 설립된 이래 줄곧 그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일컬어 왔던 것이다. 1948년은 임시정부 연호로 따지면 '대한민국 36년'이었다. 물론 그 이름을 정하는 데에도 논쟁이 있었다. 여운형은 "대한이라는 국호는 대한제국 때 잠시 쓰다가 사라진 이름인데 왜 그걸 쓰느냐?"고 했는데 초대 임시정부 교통총장을 지낸 신석우는 이에 맞서 오묘한 논리를 편다.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 흠 뭔가 그럴싸하기도 하고 뭔가 엉성하기도 하고. 어쨌건 임시정부의 명칭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하지만 또 궁금증은 남는다. 그럼 '대한제국'은 왜 대한제국이 된 건가.

남의 나라 깡패들에 의해 아내를 잃고 남의 나라 공사관에서 한참 살림을 차렸던 왕이었지만 자주 독립을 요구하는 신민들의 요구를 수렴해야 했고, 나아가 군주로서의 위상을 확립할 필요도 있었던 고종은 칭제건원, 즉 황제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선포하게 된다. 자고로 황제의 나라의 국호는 외자였다. 청,명,원,송,당,한...... 그리고 주변 오랑캐들의 나라는 두 글자였다. 조선,일본,토번,남월 등등. 그보다 더 먼 거리에서 바득바득 기어온 서양 오랑캐들에게는 한때 세 글자를 붙여 주었었다. 영길리(영국) 불란서, 포도아(포르투갈), 오지리 (오스트리아) 등. 훗날 된통 당한 다음에는 영국, 법국으로 바뀌게 되지만. 그러한즉 황제의 나라의 이름은 조선 두 글자가 아니라 외자여야 했다.

이때 고종은 이런 말을 한다. "우리나라는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이라고 정한다고 아니될 것이 없다. 또 외국의 문서를 보면 우리를 한이라고 일컬으니 이는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을 기다린 일이라 할 것이다.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은 모두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삼한이란 대개 한반도 남부에 있던 마한 진한 변한을 얘기한다 하지만 이미 신라인들이 삼한을 백제 신라 고구려로 인식하고 있었던 기록도 있고 삼국통일을 '삼한일통'으로 표현하기도 한 바, 고종의 '대한'이란 대충 그런 의미로 명명한 것이 아닌가 한다. 대한제국은 그렇게 생겨났고 허무하게 스러졌고, 그 10년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거듭났다가 1948년 7월 1일 오늘날의 국호로 확정된다.

2002년 월드컵 때 방방곡곡에 물결쳤던 "대애애애 한 민국"의 열광 후 하나 두드러진 풍경은 축구나 기타 스포츠 중계에서 반드시 '대한민국'이 표기된다는 점이다. 우리의 정식 국호이니 크게 무리스러울 것은 없다지만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좀 무안하고 낯이 간지럽다. 당장 그 말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 될 것인가. 그냥 무슨 공화국하면 될 것을 굳이 큰대(大 )자를 집어넣은 것이 일종의 소국 콤플렉스같아 찝찝하기도 하거니와, 그냥 한국이라고 부르면 커다란 불경죄라도 저지른 것 같이 되어 공중파 방송사들부터 대문짝만한 '대한민국'을 박아넣고 아나운서들도 꼬박꼬박 "한 골 만회한 대한민국!"을 부르짖는 것은 솔직히 개운하지 않다.

그 걱정은 사실 대한민국 국호 결정 과정에서도 있었다. 제1회 국회 제18차 본회의의 '헌법 기초위원회의 보고 및 헌법안 제1독회'에서 서상일 위원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1조에 대한이라는 대자를 관사로 사용하면 군주국의 기분이 있지 않을까, 그 말은 저희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자라고 하는 말은 크다는 말입니다. 대영제국이나 과거에 있어서 대일본 제국주의니 해서 그 대자로 말할 것 같으면 유전적 그 대명사라고 해서 관사로 볼 수 있는 글입니다. 또 그 의원께서 물으신 바와 같이 저 개인에 있어서도 오늘날에 있어서 대자라고 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라고 하는 것이 표시가 되여 있지 않을까 합니다."
 

어쨌건 대한민국은 국호로 정해졌고, 이미 스스럼없는 우리의 국호로 60년을 넘겼다. 하지만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소리높이 외치다가도 좀 쑥스럽고 무안해지는 경험은 나만이 한 것일까. '대일본제국!'과 '대 미합중국'이나 '대중국'을 누군가 운위한다면 나부터 입술 내밀고 놀고 있네 그럴 거 같은데, 나는 대한민국을 부르짖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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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G. :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뜻 2017-01-23 02:02:56 #

    ... 韓)족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이 된다.주의할 것은, 중국의 한(漢)과는 다르다. 관련링크들:1948.7.1 대한민국 등기하다 (산하의 오역)http://nasanha.egloos.com/10907783 대한민국 뜻이 뭔가요?? (네이버 지식검색)http://search.naver.com/search.naver?ie=UTF-8&amp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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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06 06:45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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