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1960.5.9 피임약 에노비드 공인 by 산하

산하의 오역

 

1960년 5월 9일 피임약 에노비드 공인

 

전 세계 60억 인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섹스의 산물이다. 누구나 존경하는 고결한 인격도, 인간 쓰레기라 지칭되는 최악의 말종도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섹스를 통한 정자와 난자의 결합과 세포 분열의 결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발정기가 따로 없다는 점이다. 단지 종족 번식을 위해 때 되면 암내를 풍기고 수컷들은 그 머리를 암컷에게 잡아먹힐지언정 숭고한 행위에 몰두하는 동물의 세계와 달리 특별한 쾌락을 동반하며 사랑이라는 두뇌의 활동을 통해 그 쾌락을 극대화하며 남녀 불문 그 유혹에 끌리기에 인간의 섹스는 특이하다고 하겠다.

 

그러다보니 인류의 문명이 발생하고 사회 생활을 이룬 뒤부터, 특히 모계 사회가 붕괴한 이후부터 피임의 문제는 발생한다. 아버지를 모른 채 어머니가 낳은 자식이면 한 형제이던 시대에서 아버지가 분명하고 어머니가 명확한 시대로 이동한 뒤 엉뚱한 임신은 사람 많이 잡아먹은 중대 사안이었고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 건 속담일 뿐 돌에 맞아 죽거나 목이 졸려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시대가 됐다. 당연히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이건 불륜의 남녀건 정상적인(?) 부부가 아닌 이들이 임신을 피한다는 것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절체절명의 숙제였다.

 

기원전 1850년경, 즉 지금으로부터 4천년쯤 전에 벌써 인류 최초의 피임법이 등장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악어똥에 벌꿀 등을 혼합한 피임약(?)을 사용했다. 악어 똥의 알칼리 성분이 정자의 활동을 저해했다는 설도 있긴 하지만 솔직히 그게 어느 정도 유효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구약성서 속의 오난은 형수를 임신시키지 않기 위해 질외사정을 시도했다가 하느님의 진노를 사서 죽는다. 섹스한 뒤 자궁에 후추를 뿌리기도 했고 카사노바는 레몬 껍질을 사용했으며 우리나라에는 관계를 가지고 일곱 내지 아홉 발짝을 점프하면 임신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물레방앗간에서 밀회가 있은 후 무슨 구미호도 아니고 팔짝팔짝 뛰었을 여성들을 숱하게 있었을 것이다.

 

그렇듯 피임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여성들에게 임신이란 천당과 지옥 양쪽에 뿌리를 둔 나무였다. 영국의 찰스 2세의 궁중의사였던 콘돔 박사가 양 창자로 만든 콘돔을 발명하면서 세상에 퍼지고 고무가 발명되면서 더욱 혁신적인 콘돔이 나왔지만 결국 남자가 그걸 쓰지 않으면 여자로서는 대책이 없었다. 그리고 콘돔의 질도 그다지 좋지는 않아서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천둥 같은 임신에 기겁을 한 일도 흔했다. 피임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가톨릭에서는 자연주기법을 권장했는데 이는 워낙 실패율이 높아서 “바티칸 룰렛(러시안 룰렛에서 따온)”이라는 악명을 얻기도 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조절하고자 하는 욕구는 그렇게 오래 됐고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연구는 지속돼 왔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정상적인 배란을 위해서는 다양한 호르몬들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에스트로겐(Estrogen),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이라는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진다. 대개 배란기에는 에스트로겐의 농도가 증가하고 배란 이후에는 프로게스테론의 농도가 높아졌다가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지 못하면 이들의 농도는 최저로 떨어지고 월경이 일어났던 것이다. 1919년 쉐링사는 토끼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주입하면 배란이 억제되는 현상을 관찰해 보고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호르몬들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것이었다. (한겨레 2012.7.5) 이 호르몬을 구하는 것도 문제였다. 동물들에서 추출해 내는 천연 호르몬은 값이 무지하게 비쌌다.

여기서 미국의 한 여성운동가의 이름이 등장한다. 마가릿 생어. 그녀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에 등장하는 그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그저 속절없는 임신으로 여성들의 건강이 파괴되고 결국 산모나 태아 모두를 위협하는 일을 목도하면서 산아제한진료소를 열었다가 ‘공안 질서 방해죄’로 수감된 적도 있는 이력을 지녔다. 어느 날 그녀는 성호르몬 스테로이드 대사 분야의 전문가 그레고리 피커스를 만난다. 토끼의 난세포를 체외수정시키는 데 성공하여 ‘닥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던 피커스는 생어의 주선으로 백만장자 맥코믹의 후원을 받아 피임약 연구에 뛰어든다.

 

핀커스는 연구에 착수하자마자 프로게스테론을 입으로 먹는 알약으로 만든다는 창의적인 발상을 했다. 여자가 알약을 통해 이 호르몬을 몸에 투입하면 임신이 되지 않고도 임신된 것처럼 배란을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 핀커스는 펜실바니아 대학의 마커 교수가 한참 전에 프로게스테론을 싼 값으로 합성하는 방법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연구에 응용하고 임상 실험에 돌입한다. 그러나 프로게스테론은 질릴 정도로 많은 분량을 먹어야 했고 실패율 또한 15퍼센트에 달했다.

 

그러나 러시아계 유태인이었던 핀커스는 집념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다른 게 있을 거야!” 기타 화학적으로 관련이 있는 각종 합성 스테로이드제의 샘플을 몽땅 뒤지고 합성한 끝에 핀커스는 ‘에노비드’라는 피임약을 세상에 내놓고 1960년 5월 9일 FDA (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는다. ‘피임약’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날이었다.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 (존 브록만)이라는 책에서 먹는 피임약은 인류의 위대한 발명 121가지에 위풍당당하게 선발된다. 위스콘신 대학의 인류학자 레포스키는 이 약의 위대함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인구폭발로 인한 재앙에서 벗어나게 된 점, 그리고 여성이 스스로 임신을 조절할 수 있게 됨으로써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다.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가 피임약 개발 40주년 특집 기사에서 내린 평가는 그 의의를 잘 요약해 준다. “아스피린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비아그라만큼 매스컴의 각광을 받지도 못했지만 먹는 피임약처럼 위력적인 약은 없다”

 

물론 반대도 만만찮았다. 가톨릭 등에서는 하느님의 섭리를 거역하는 행위로 보고 맹렬히 비판했고 심지어 일부 페미니스트들도 그 부작용을 이유로, 또 피임의 의무가 여성에게만 부과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제도적인 반대도 만만찮았다. 미혼 여성들에게 피임약을 처방하는 것은 범죄로 취급받기도 했다. 1961년 예일대학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여성에게 피임약을 처방했다는 이유로 철창행이라는 불운을 겪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터진 봇물이었다. 피임약을 써 본 사람들은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산아제한은 한 세기 만에 여성의 평균 인생주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전통적으로는 어머니들이 40대까지 계속 아이를 갖는 것을 당연시했으나 현대의 어머니들은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아이를 갖는다. 수명도 길어져 여성들은 출산을 종료한 후 생식 의무에서 해방된 채 또 다른 50년을 살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여성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자식 기르고 돌보는 데 소모한 것과 완전히 다른 삶이다” (피임의 역사 - 책세상 중 ).

 

‘완전히 다른 삶’이 1960년 5월 9일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