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친일파의 한국현대사를 읽고 by 산하


<친일파의 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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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끝난 이야기겠지만 이재명 성남 시장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던 이유가 몇 개 있다. 그 중의 하나는 그의 ‘친일청산’ 주장이었다. 지난 2월 14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친일 청산 없이 독립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친일부패독재 세력을 청산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말 잘하기로는 민주당 세 후보 중 으뜸이었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이재명 시장의 말이고 많은 이들이 사이다 한 잔처럼 시원해 했지만 나에게는 술 제대로 퍼먹은 다음 날 물 없이 먹는 군고구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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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갑갑했을까. 두 단어 다 막혔다. '친일'파는 과연 누구이며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가 막막하기 때문이고 '청산‘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본원적인 ’뿌리로부터의 청산‘을 바란다면 이재명 시장은 탈당부터 해야 한다. 우리 나라 야당 이름의 대명사격인 ’민주당‘이야말로 친일 지주 세력이 중심이 돼 창당했던 보수정당 한국민주당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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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얘기만 나오면 비분강개가 하늘을 찌르고 심지어 어느 배우의 경우 부모도 아닌 외증조부까지 시비를 거는 세상인지라 사실 말을 꺼내기는 조심스럽다. 더구다나 그를 청산하지 않고는 우리 사회가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다는 호령이 난무하니 어찌 역사의 반동을 자임하기가 쉬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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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문은 그 거리낌이 클수록 커지는 법이다. 이미 백골이 진토된 친일파들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물론 “그들의 후손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며 부를 대물림하고 있고 독립군들의 후손은 곤궁에 시달리고” 있는 건 가래침이 생성될 일이긴 한데 연좌제 폐지된 나라에서 후손들에게 어찌 그 책임을 물으며 독립 유공자들의 문제는 친일청산과는 별개로 나라가 나서 보훈해야 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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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물 없는 고구마 같은 친일 척결론을 듣다가 책방에 들렀을 때 손에 잡힌 책이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정운현 저, 인문서원)였다. 정운현 선생이 친일파 문제에 천착한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님은 익히 알고 그 깊이가 상당함도 알지만 책 하나 붙잡고 정독한 것은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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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 책은 전문 역사서라기보다는 개괄서 같은 책이다. 책 표지에 소개가 벌써 그렇다. ‘나라를 팔아먹고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악질 매국노 44인 이야기’ 책 한 권에 무려 마흔 네 명이나 되는 ‘악질’들이니 이 책은 정물화라기보다는 스케치에 가깝다. 주마간산도 엄염히 산을 보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할 때 이 책에서는 실로 다양한 ‘친일파’들의 면모를 대충, 그러나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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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악질 노덕술같은 인간도 등장하지만 뜻밖에도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악질 매국노’와는 사뭇 거리가 먼 최승희도 별안간 등장한다. 거기에 일제 강점기 시절 관직을 지낸 이 치고는 거의 유일하게 뼈저린 반성과 자기비판을 했던 이항녕 선생도 소개되고 아득한 옛날 드라마에서 “민나 도로보데스”의 유행어를 낳았던 공주 갑부 김갑순도 도개를 내민다. 정운현 선생이 뜻한 바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나는 그가 소개한 친일파 44인을 접하면서 그들의 비겁함과 사악함에 비분강개하기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들이 펼쳐 보이는 삶의 나이테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더 쏠쏠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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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은 나쁜 놈들로 치면 되지만, 아버지는 나라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눈이 멀고 자신은 기생으로 팔려갔다가 절에 맡겨져 머리를 깎였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야 사람 대접을 받고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정자 같은 여자에게 애국심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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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장 집 앞마당에 매일같이 생선을 놓고 간 생선장수 문명기. 날을 잡아 붙들고서 영문을 물으니 “서장님께서 치안을 잘 유지해 주시니 저 같은 사람도 생업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 달리 보답할 길은 없고 생선이라도 드려 아침 밥상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하여 일본 경찰서장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만들고 “뭐 도와 줄 게 없는가?” 질문을 기어코 빼낸 뒤 생선 도매점 소갯장을 받아내고 그걸로 경북 동해안 일대를 휩쓰는 거부가 된 문명기는 우리 주변에도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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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으로서 일본인의 신사에 근무하는 ‘신직’(神職)을 맡아 어느 일본인보다도 더 일본인스럽게 살았던 이산연 같은 사람도 새로웠다. 그는 조선인과의 관계를 끊고 집안에서도 언어와 의복은 물론 음식까지도 야단스럽게 일본식으로 살았다고 했다. 요즘도 극기훈련 한답시고 얼음 깨고 들어가서 물 안에서 그악그악 하는 훈련(?)을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그것도 일제의 잔재라고 한다. 이산연도 즐겨 그 짓을 행했다고 하고. 그런데 그는 해방 뒤 반민특위에 끌려가지만 특별한 악행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를 판정받는다. 당시 그는 해방된 조선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쳤고, 그는 일본을 어떻게 보았으며, 민족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그 시대는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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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무협지가 아니다. 정파와 사파가 나누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정의가 승리하는 것도 아니며 사파라고 해서 모두 말살해야 할 존재도 아니고 정파라고 해서 옳은 것만도 아니다. 또 사람은 위인전처럼 해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세상 없는 위인도 지질한 인간의 면모를 지니며 실수를 하고 결점을 있는대로 발휘한다. 오류를 저지르고 파렴치한 면도 어김없이 있다. 그러면서 결국 인간은 역사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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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친일파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죄상을 밝혀 ‘청산’하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행적은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역사에 기록돼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나쁜 놈으로, 비겁한 놈들로, 돌아볼 가치가 없는 자들로 치부하고 친일파 낙인을 찍는 데 그친다면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울 것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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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이 왜 일본에 기대야 했는지, 윤치호의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최린의 배신과 회개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서는지 그들의 시대와 오늘의 세상을 끊임없이 ‘링크를 걸고’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들에게서 무엇을 수용하고 배척해야 하는가를 밝히는 것이 더 소중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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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으로 낙인찍고 명예형 내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친일파의 ‘이름’이 아니라 그 ‘행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해 보는 일이다. 친일청산이란 그들의 삶을 냉정하고 편견없이 바라보고 그들의 빛과 그림자를 가려내어 오늘에 적용시킬 때,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과거의 오류의 자장에서 벗어나게 만들 때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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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책 제목이 와 닿는다.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