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탈상을 위하여 by 산하

탈상을 위하여 

해냄 출판사에서 나온 해냄 클라시커 시리즈 중에 <역사와 배>라는 책이 있다. 노아의 방주부터 타이타닉 등등까지 역사상 유명한 배들의 사연을 모은 책이다. 그런데 그 책은 개정판을 내야 할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목숨을 싣고 물 속에 쓰러진 배, 세월호의 이야기를 빼놓고 <역사와 배>를 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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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3주년이었다. 몸이 안좋은 빛이 역력한 아내를 채근해서 기어코 안산에 다녀온 것도 어쩌면 오늘만큼은 3년 전 노란 슬픔으로 뒤덮였던 도시 안산을 다시 들르고 나름의 탈상(脫喪)을 하고픈 마음이었다. 상복을 입지는 않았으되 툭하면 문상객이 되어 눈물 콧물을 짜내야 했고 여막을 짓고 살지는 않았으나 가슴 한 켠에 뻘 같은 슬픔에 빠지곤 했던 이로서의 살풀이를 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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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하면 꽤나 세월호를 생각하고 산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세월호 서명 운동같은 걸 앞장서서 한 적도 없고 지하철역 입구에서 목이 쉬는 이들에게 음료수를 사다 준 적은 있으나 언감생심 마이크를 쥔 경험도 없다. 노란 리본을 가끔 달긴 했으나 지퍼에서 떨어져 나가면 뭐 그런가보다 생각했을 뿐이고 시위에 나가도 분노를 터뜨리기보다는 머리 수 채우는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탈상 운운할 처지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도 나는 안산에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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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핸드폰에 남긴 마지막 동영상을 꾸역꾸역 눈에 구겨 넣었다.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억지로 웃으며 농담을 나누던 아이들, 그래도 어른들 믿고 기다리면서 교회 나가는 아이들은 손잡고 기도하면서 구조를 기다렸던 아이들, “우리 동생 어떡하지”를 부르짖던 학생, 연극반 모두에게 사랑합니다 외치던 카톡들을 눈에 바느질하듯 새겨 넣었다. 이유는 그 순간의 공포와 고통을 1억분의 아니 1경 분의 1이라도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남은 것은 그들이 세상에 남긴 흔적이라 할 기억 교실이었다. 그것마저 내 눈에 넣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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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 교실은 안산교육청 별관에 있었다. 어떤 이는 단원고등학교에 이 교실들이 남아 있지 못하고 새롭게 조성된 것을 안타까워하지만 나는 거기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학교는 교육의 공간이고 새롭게 자라나는 고인의 후배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장이며 추모 공간에 교육의 터전이 밀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삶은 이어져야 하는 거니까. 분명한 건 단원고등학교에 있으나 이곳 안산 교육청에 있으나 그 교실들은 압도적이었고 오래 버티지 못할 무게로 나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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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마다 놓여 있던 추모 방명록을 좀 들추다가 이내 포기해 버렸다. “한 번만 안아보고 싶다.”며 자식을 부르는 부모의 글귀를 보고는 범연히 넘길 자신감을 포기했고 “아무개야 나 네가 원하던 그 대학 그 학과에 갔다. 너 대신 열심히 할게.”에서는 아예 손을 호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슴을 내려앉게 만드는 지뢰는 교실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들의 교실에 걸려 있던 달력은 그 폭발력이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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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행사가 표시된 가운데 수학여행이 표기된 달력. 저 달력에 수학여행 넉 자를 쓰면서 얼마나 설렜을까. 가방 안에 아버지 양주도 하나 숨기고, 장기자랑에서 부를 노래 가사도 외우고, 바다 위에서 맘에 뒀던 여학생한테 무슨 고백을 어떻게 해 볼까 인터넷 뒤적거리면서 그들은 얼마나 들떴을까. 그들은 수학여행 둘째 날 이후 결코 날짜를 셀 수 없게 됐고 달력에 적힌 일정들은 영원히 미답(未踏)으로 남았다. 그들이 탔던 배는 3년 뒤의 금요일에야 상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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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70%를 차지하는 지구에서 해난 사고는 인류의 숙명과도 같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어쩔 수 없는 사고로, 또는 전쟁에 휘말려, 사람의 어리석음과 오만 때문에 바다에 묻혔고 그들이 탄 배 역시 물과 역사 속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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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름을 기억하며 교훈을 삼았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맹세의 징표로 기록했고, 그릇된 관행을 바로잡는 척도로 세웠다. 풍랑을 만나 침몰하는 배 위에서, 구명정에 정원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부동자세로 서서 경례를 붙이며 울부짖는 민간인들을 떠나 보냈던 버큰헤드 호, 다리가 중심을 잃을 때까지 음악을 연주하며 승객들을 위안했던 불굴의 악사들을 태웠던 타이타닉호, 세월호와 비슷하게 급격히 침몰하여 끝내 건지지도 못했으나 스웨덴의 해상 안전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디딤돌이 됐던 에스토니아 호 등등 수많은 이름들이 있다. 이제 세월호도 그 중의 하나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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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상은 기억의 삭제가 아니다. 오히려 슬픔으로부터 돌아와 담담한 마음으로 현실을 돌아보고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되짚고 무엇이 문제였으며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살필 냉정함을 배가하는 일일 게다. 3년을 돌아본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가 잘한 것은 무엇이고 못한 것은 무엇이며 다시 세월호가 없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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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먼저..... 2학년 3반 교실 벽에 붙어 있던 김초원 선생님에게 보내는 아이들의 카드가 눈을 가린다. 4월 16일은 김초원 선생님의 생일이었다. 자신의 위치에 있었으면 생환 가능성이 컸으나 아이들에게로 달려갔던 김초원 선생님이 어떤 분이었는지는 아이들의 카드를 읽으면 명확하게 처절하게 알 수 있다. 천상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죽음까지 함께 한 그분에게 아직 이 뭐같은 대한민국은 ‘순직’이라는 두 글자를 그 영전에나마 바치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연금법이고 지랄이고 나는 그런 거 모른다. 그러나 목숨까지 바쳐가며 자신의 직분을 다한 사람에게 이런 저런 핑계로 그 사실을 기리는 단어조차 아까워한다면 그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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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304명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부활하기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사람들을 채근하고 일깨우는 존재로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기를 ...... 세월호를 기억하자 세월호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