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동유럽 여행기 2 by 산하

동유럽 발칸 2- 타임머신 타고 온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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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이야기는 여정의 끝에 다시 프라하로 돌아올 때 하는 걸로 하자. 이 유서 깊은 도시 이야기는 너무 많고 길어서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체코 자체의 역사와 프라하 이야기는 나중에 돌아와서 그 시내를 돌아본 뒤에 다시 해 줄게. 프라하 공항에 내려서 냅다 남쪽으로 체스키 크룸로프로 내달리는 바람에 프라하 공항 이외에는 본 것이 없어 더더욱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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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는 대체적으로 평탄한 나라야. 멀리 야트막한 산줄기들이 보이긴 했지만 버스로 내처 달려가는 동안 주변은 그저 평지의 연속이었어. 푸르른 밀밭이 지겨워지다 보면 하얀 양귀비꽃밭이 감기는 눈을 크게 열어 주더구나. 그렇게 인적 드문 들판길을 달리던 버스가 한 소도시 시내로 진입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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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아저씨가 도시의 이름을 체스키 부데요비체라고 알려 주더구나 부데요비치인지 뭔지 시차 적응 때문에 머리 부대끼는데 뭐 그런가보다 듣는데 가이드 아저씨의 다음 말이 또 한 번 눈을 번쩍 뜨게 했어. “여기가 버드와이저 본고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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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무척 좋아하는 맥주. 버드와이저는 체코가 원산지지만 아빠가 한국에서 먹는 버드와이저상표는 체코 브랜드가 아니야. 이곳에서 만드는 백주 맛에 반한 한 미국인이 맥주 만드는 기술을 배워 가지고선 미국에 건너가서 버드와이저라는 상표 등록을 헤 버린 거지. 독일 말로 읽으면 부드바이저라고 하고 이걸 체코 말로 읽으면 부데요비체가 되는 거거든. 이 부데요비체에서 맥주를 빚었던 건 12세기 때부터라고 하니 거의 ‘천 년의 전통’이 상표권 등록으로 태평양 건너가 버리게 생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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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사람들은 소송도 걸고 법정 투쟁도 불사하면서 버드와이저 상표 이름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지만 그리 큰 성과는 일구지 못했다고 해. 미국 버드와이저가 워낙 대기업이다보니 적당한 가격에 팔라는 유혹도 했지만 체코의 자존심에 가끼운 부드바이저를 어떻게 양보하냐! 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지. 결국 오늘날에도 미국이나 미국의 영향력이 큰 나라에서는 미국 맥주 버드와이저를 마시지만 유럽에서만 해도 체코산 ‘부드바이저’가 우세하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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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체코에는 유명한 맥주가 많아. 아빠가 가장 선호하는 맥주 필스너도 체코에서 만들어진다고 하지. 그런데 가이드 아저씨가 한창 입맛을 다시고 있는 아빠의 환상을 와장창 깨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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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4개 만원 해서 필스너도 팔고 뭐도 팔고 다 팔죠? 체코산 맥주도 한국에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만. 왜 그렇게 싼지 생각해 보셨어요? 물론 체코에서 맥주는 물보다 싸다고 할 정도로 싸요. 하지만 한국까지 가는 비용, 세금 다해서 그 가격이면 지나치게 싸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럼 한국에서 만든 거냐구요? 그건 아닙니다. 여기서 만들어도 수출용은 따로 만드는 거죠. 한국은 수출용을 국내용보다 더 좋게 만들어서 우리 부아가 터지는 경우가 많죠? 체코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맥주는 좀 싸게 질 떨어지게 만들어 파는 거예요. 드셔 보시면 맛이 다르실 겁니다.” 음 페이스북 이모티콘에 나오는 화난 얼굴로 돌변하는 순간. 

그런데 이렇듯 맥주로 유명한 도시 부데요비체도 남쪽으로 25킬로미터 떨어진 한 도시에 비하면 현격하게 그 빛이 바래고 만다. 그 엄청난 위력의 도시가 바로 체스키 크룸로프야. 도시가 처음 세워진 건 11세기라는데 이후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번영을 누린 도시라는구나. 중요한 건 수백년 전 중세의 풍경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동화같은 도시라는 거지. 하다못해 우리가 점심을 먹은 식당조차 16세기에 지어진 건물이었으니 더 말할 것이 없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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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다란 성벽과 교회의 첨탑, 그리고 그 아래 오밀조밀 들어선 단정한 색깔의 지붕들과 그 사이로 실뿌리처럼 뻗은 골목길들에서는 금새라도 갑옷 입은 기사가 말을 달리고 가운데 머리를 밀어 버린 사제들이 부르는 그레고리안 찬트 소리가 들리고 허름한 농민들이 유럽식 낫과 곡괭이를 들고 농토로 향하며 체코 민요를 흥얼거릴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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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만 갖다 대면 엽서가 나온다는 얘기를 들으며 뭐 그렇겠지 쿨한 척 했던 아빠의 입이 다 벌어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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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로 치면 고려 중기 쯤이었던 13세기에 이미 도시는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췄다고 해. 도시를 휘감아 흐르는 볼타바 (볼타바라면 생소하겠지만 몰다우라고 하면 아! 하겠지?) 강을 따라 건설된 일종의 ‘하회마을’같은 크룸로프 초기의 비스코프 가문에서 로젠부르크 가문으로 넘어간 뒤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의 도시 재건이 이뤄졌고 이후에도 여러 귀족들과 신성로마 제국 황제 등 여러 주인을 거치며 꾸준히 건설되고 확대되고 다듬어졌지. 오늘날 크룸로프에서 파는 명물 맥주 이름은 에겐부르크, 한때 영주님 가문의 이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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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돌아보는 데마다 볼거리고 발이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풍광이지만 사람 사는 곳은 그 풍경만큼 아름답지는 못한 법이야. 통째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이 도시 곳곳에도 험악하고 슬픈 사연이 남아 있단다. 도시에 들어가서 성채로 가는 오르막을 타려면 볼타바 강에 놓인 한 목재 다리를 넘어야 해. 수백 년 전 목조 교각에 차가 거침없이 오가는 모습으로 아빠를 놀래킨 이 다리 이름은 ‘이발사의 다리’야. 왜 이발사의 다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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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곳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의 지배 하에 있었어. 루돌프 사슴의 코는 빨간 게 특징이었지만 이 신성로마제국을 오랫 동안 거머쥐어 온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전적 특징은 주걱턱이었어. 이 주걱턱은 우성 형질이라기보다는 ‘근친혼’의 산물이었어. 친척끼리 결혼하면서 혈통(?)은 물론 가문의 세력을 유지하려 했던 어이없는 전통의 결과였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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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가문의 칼 5세가 스페인 왕위를 차지하여 스페인에 갔을 때 그를 알현하던 스페인 농부는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고 해. “스페인의 파리는 예의 같은 걸 모르오니 언제 폐하의 입에 들어갈지 모르나이다. 입을 다무소서.” 그러나 칼 5세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어, 주걱턱으로 인한 부정교합으로 입을 다물 수가 없었거든, 그런데 근친혼의 부작용은 이 주걱턱 이외에소 지적 장애 또는 정신질환으로 나타나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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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크룸로프를 한때 지배하던 루돌프 2세의 서자가 그랬어. 정신질환을 앓던 그는 어느 날 마을의 이발사의 딸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려. 우리나라나 서양이나 높은 분들이 찍은 평민 여자들이 온전한 경우는 드물었지. 루돌프 2세의 서자 역시 전혀 이발사와 그 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발사의 딸과 ‘결혼’했을 거야.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한때 발광한 이 서자가 자기 아내를 참혹하게 살해한 거야. 거기까지만 해도 이발사 가족의 비극으로 끝났겠는데 이 미친 합스부르크는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어. 광증 속에 했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 거지. 그는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 아내를 죽였다고 믿고 범인이 나올 때까지 성 안 사람 한 명씩을 죽이겠다고 선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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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자 이발사는 자기 사위(?) 앞에 나아가 말했다고 해. “내가 죽였습니다. 영주님에게 간 후 나에게 못되게 굴기에 내가 죽였습니다.” 아마 이발사는 사랑하는 딸을 참혹하게 잃고 살아갈 의욕이 떨어졌던 게 아닐까. 자신도 죽어 딸을 따라가고 싶기도 한 마당에 마침 사위같지 않은 사위 영주가 저 난리를 치니 마을 사람들도 보호할 겸 죽음으로 나아갔던 게 아닐까? 이발사 역시 죽음을 당했고 마을 사람들은 성으로 통하는 다리에 ‘이발사의 다리’라는 이름을 붙여 수백년을 추모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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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의 다리에는 또 한 명의 추모의 대상이 있어. 요한 네포묵이라는 사제야. 18세기 초 보헤미아의 왕 벤체슬라우는 의처증이 심했어. 그런데 네포묵은 왕비가 즐겨 찾아 고해 성사를 하는 신부였지. 다른 사람은 제쳐 놓고 네포묵을 찾는 걸 주목하던 왕은 네포묵을 체포해서는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털어놓으라고 강요해. 하지만 고해성사의 비밀은 신부에게는 목숨 이상으로 소중한 것이고 네포묵은 단연코 고해성사 내용을 토로하지 않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보헤미아 왕은 그 혀를 뽑고 토막내어 볼타바 강에 던져 버렸다고 해. 오늘날도 네포묵은 고백하는 이들의 수호 성인으로 남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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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권력을 쥔 사람들과 그 아래서 꿇어 엎드리던 사람들, 부당한 권세를 휘두르던 이들과 그에 맞서 용감하게 저항한 이들의 이야기는 이 아름다운 동화 마을에도 여지없이 숨어 있구나. 하기사 ‘동화같은’ 이라는 형용사 자체가 다양한 의미가 있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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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크룸로프가 번영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도시가 소금 무역의 중요한 요충지에 있다는 것이었어. 알프스 산록에서 캐낸 암염은 내륙 사람들에게는 황금보다 더 귀한 소금의 원천이었고 소금 상인들은 기나긴 소금길을 따라 체코, 독일 등 내륙 사람들에게 소금을 팔아 이익을 챙기게 되는데 산악지대에는 산적들이 진을 치고 소금 상인들을 털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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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룸로프는 평지로 독일까지 이어지는 평야지대의 초입이었고, 험준한 산과 무서운 도둑들의 칼을 피한 상인들은 여기서 배를 채우고 맥주를 마시며 한 시름 푸는 곳이었고, 그래서 오랜 번영을 누렸다는 거야. 이 소금길의 출발지(?)가 있었어. 여기까지 오기 전 소금을 모아 놓고 가격을 매기고 각지로 분배했던 도시. 그게 바로 다음 목적지 잘쯔부르크다. 모차르트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시. 하지만 이 도시의 이름 잘쯔(Salz)란 바로 소금(salt)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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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역의 중심 루트에 자리잡고 있다 보니 크룸로프는 체코 사람들보다는 독일계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기도 해. 저렇게 단정하고 규칙적인 지붕은 슬라브족보다는 게르만 족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런데 오늘날 왕년에 이곳에 많던 독일 사람들은 오늘날 하나도 찾아볼 수 없어. 바로 잘츠부르크로 가는 도상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린쯔라는 지역에서 태어난 한 걸물 탓이지. 그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