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동유럽 여행기 3- 사운드 오브 뮤직 by 산하

유럽과 발칸 여행 3 음악의 소리 
.
체스키 크롬로프에서 오스트리아 국경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독일어를 쓰지. 아니 그들은 결코 독일어를 사용한다고 하지 않는다지. ‘우린 오스트리아 말을 사용하는 거야.’라고 정색을 하면서 말이야. 동부독일의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기 전까지 오스트리아는 중부 유럽의 최강국 중의 하나였고, 프로이센과 전쟁을 벌인 끝에 패전하여 독일 지역의 주도권을 빼앗기긴 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전까지 꽤 당당한 역사를 지닌 오랜 제국이었어. 그래도 언어를 쓰고 문화가 같으니 독일계라고 불리는 걸 어쩔 수는 없을 것 같아. 
,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가깝고 소금 무역의 중요 거점이었던 체스키 크롬로프에는 독일계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어. 독일 본토와 인접했던 주데텐 지역 등을 비롯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접경한 체코의 각 지역에도 그랬고 말이야. 
.
오스트리아 린쯔 출신의 히틀러는 체코 내 독일인들의 권리를 내세우면서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합친 이름, 지금은 분리됐지만)에 영토적 야심을 드러냈고 전쟁을 어떻게든 피해 보려는 영국과 프랑스의 양해 하에 이를 독일에 합병시켜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게 돼. 
.
하지만 기어코 터진 전쟁에서 체코인들은 집요하게 저항했고 체코인 특공대가 나찌의 최고위직 간부였던 하이드리히를 암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해. 이 과정을 다룬 영화가 <새벽의 7인>이라는 고전이란다. 
.
그런데 전쟁이 끝나면서 수백년 체코에 터 잡고 살던 독일인들온 졸지에 미운 오리 새끼가 돼 버렸어. 단순히 미운 정도가 아니라 당장 어떻게 해 버리고 싶은 혐오의 대상이 된 거야. 체코인들은 이웃에 살던 독일인들에게 달려갔어. “죽고 싶지 않으면 떠나라.” 
.
곳곳에서 유혈극이 벌어졌고 한때 체코인들의 상전 노릇을 하던 독일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과 전 재산을 버리고 떠나야 했지. 수백만 명이 일시에 추방당했고 그 중 수십만 명은 목숨을 잃었다고 해. 잘 알려지지 않은 20세기의 비극이었지. 가해자로 규정됐고, 실지로 가해자의 일원이기도 했던 독일인들이었기에 그 희생은 잘 알려지지조차 않고 있다만. 아무튼 그때 체스키 크룸로프의 독일인들도 일소됐다고 해. 
.
아마도 그때 추방된 독일인들은 수용소에 실려가던 유태인들과 비슷한 몰골로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 국경을 넘었을 것이고 첫 오스트리아 도시라 할 린쯔를 지나면서 히틀러를 생각했을 거야. 
.
산다운 산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체코와는 달리 잘츠부르크에 가까워지면서 자연의 색깔과 풍모가 달라지기 시작했어. 알프스 산맥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 찬탄을 흘리며 풍광을 바라보는 내 귀에 가이드 아저씨가 한 마디가 꽂혔다. 
.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트랩 대령과 마리아가 대화 나누던 호숫가 기억나십니까? 바로 앞에 보이는 저 호수가 그곳입니다.” 아빠의 머리 속은 곧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의 노래들로 삽시간에 가득 차 버렸어. 눈 앞에 보이는 알프스 산기슭에서 종달새처럼 노래하던 마리아 (줄리 앤드루스), 나찌로부터의 탈출을 앞두고 에델바이스를 선창하던 트랩 대령이 목이 메어 노래를 잇지 못하자 “Small and White...."로 남편을 응원하던 마리아, 그리고 관객과의 대합창. 
.
오빠랑 네가 어렸을 적 <사운드 오브 뮤직>을 네 번이고 다섯 번이고 거푸 봤던 모습이 떠올라오면서 함께 오지 못한 게 참말로 아쉬워지더구나. 이번 여행지 중 어디가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잘츠부르크만큼은 꼭 너랑 다시 들러 보고 싶은 곳이야.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하나 때문에라도. 너희들이 열광했던 것만큼, 또 아빠와 엄마도 흥겹게 추억하고,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도 지금 버스 안에서 가이드 아저씨가 틀어주는 <사운드 오브 뮤직> DVD를 열렬히 지켜보시는 것만큼 <사운드 오브 뮤직>은 반 세기가 넘도록 여러 세대, 인종과 민족의 구분없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으니까. 
.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심지어 철의 장막을 넘어 공산권에도 개봉됐고 이전의 최고 흥행작이라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기록을 경신했지. 바람과함께 사라지다가 그 후 잇달아 재개봉되면서 다시 순위가 바뀌고 타이타닉, 아바타 등 대형 흥행 영화들이 등장해서 순위는 밀렸지만 2015년 기네스북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에 비례한 역대 흥행 수익에서 5위를 차지하고 있어. ET나 죠스 같은 스필버그의 자랑들을 물리치고 말이지. 
.
잘쯔부르크 곳곳에는 그 추억이 남아 있단다. 마리아와 아이들이 춤추듯 행진하며 도레미 송을 부르며 들어오던 곳 기억나니? 그리스 신화 영웅들의 동상이 서 있고 분수대가 있던 곳. 바로 잘츠부르크의 미라벨 궁전이란다. 영화에서는 렌즈의 장난으로 더 화려하고 넓어보여서 막상 와 봤으면 실망할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를 떠올리면 줄리 앤드류스와 아이들의 그 맑은 목소리들이 도레미송을 부르며 뛰어노는 모습이 그 위에 겹쳐지고, 그 순간 수십년을 별러 온 곳에 발을 디딘 듯한 환상에 젖게 되니 이것이 ‘아우라’(Aura)의 힘인가보다. 
.
마리아와 트랩 대령이 결혼식을 올리던 대성당과 화면을 그득 채우며 울리던 종소리의 종들도 있었고 먼발치에서는 트랩 대령의 집으로 쓰인 저택도 고개를 내민다. (패키지 여행의 한계. 그곳에 못간 것이 지금도 안타깝다. ) 대령과 마리아가 신혼여행 간 사이 제3제국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해 버린 후 나찌 친위대들이 가로질러 행진하던 광장에 서 있으 면 그들의 군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고, 곳곳에 있는 산기슭의 푸른 언덕을 올려다보면 기타 든 마리아 앞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부르는 노래 소리가 귓가에 잉잉거린다. 기념품 상점에서 꼭두각시 인형 앞에 서면 아이들과 마리아의 인형극 장면이 펼쳐지면서 연기를 내다가 콜록거리는 마리아가 스쳐 지나가지. 줄리 앤드류스는 이 <고독한 양치기> 노래를 제일 싫어했다던데. 요들송 부르기 어려워서 
.
사운드 오브 뮤직이 엄청나게 성공하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이유는 뮤지컬이라는 미국적 경쾌한 종합예술과 역시 옛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도시의 분위기가 기가 막히게 어우러졌기 때문일 거야. 
.
이곳의 건물들도 대개 기본 4백년, 거슬러 올라가면 7-8백년 된 건축물들이 흔하게 있고 그 분위기를 엄격히 지켜 온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단다. 이를테면 바로 이 맥도널드 간판이야. 잘즈부르크 시는 시의 미관을 해치는 대형 입간판을 규제해 왔는데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자부했던 게트라이데 거리에서는 그 미적 기준을 벗어나는 어떠한 상징물도 허용하지 않았어. 그 결과 전 세계 어디 가나 그 황금빛 M자를 개선문처럼 세워 놓은 맥도널드도 바로크적(?) 간판에 만족해야 했단다. ,
.
잘쯔부르크 시 길을 가다가 만나게 되는 또 하나의 진귀한 볼거리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단독주택(?)이 있더구나. 어느 가난한 청년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려 했는데 장인어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어. 네가 집이 있냐 절이 있냐. 비를 피할 지붕 하나 없는 주제에 남의 애먼 딸 데려다가 무슨 고생을 시키려고!!! 청년은 절망하여 물러났다고 해. 그런데 그렇게 청년을 나쁜 사람이 아니었나 봐. 이 어깨가 늘어진 청년을 위하여 친구들과 친척들이 나선 거야. “좋아. 지붕만 있으면 된다는 거지?” 그들은 부족한 돈을 갹출하여 사진과 같은 ‘틈새 건물’을 창출해서 가난한 젊은이의 꿈을 이뤄졌다고 해. 가이드 아저씨의 설명. 
.
“같은 독일어를 쓰긴 하지만 ‘우리는 오스트리아 사람’이라는 인식이 굳건한 것처럼, 독일 사람들과는 좀 차이가 있어요. 독일 사람들, 특히 북독일 사람들은 정말 에누리가 없습니다. 이게 십만원이다 그러면 십만원이에요. 내가 그만큼 가치 있게 만들었으니 당신도 그만큼 내놔라 이거죠. 그런데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십만원 어치 팔면 뭐 다른 것도 좀 끼워 팔아 줘요 좀 에누리가 있다고 할까 융통성이 있다고 할까요. 이런 가난한 청년 이야기도 오스트리아 사람들이니까 나올 수 있는 얘기 같긴 합니다.”
..
18세기 말, 위에서 말한 가난한 청년만큼은 아니지만 그리 넉넉하지 못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도 처가살이를 오래 했던 한 가장이 드디어 처가를 탈출해서 독자적인 ‘마이홈’을 꾸몄어. 레오폴드라는 이름의 이 음악가는 새로 얻은 집에서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름을 볼프강이라고 짓지. 대충 짐작하겠지? 그 짐작이 맞다. 인류사적 천재라 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였단다. 잘쯔부르크가 낳은 최고의 인물. 그러나 잘쯔부르크 대성당에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기도 했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잘쯔부르크를 떠나 비인에서 주로 생활했고 심지어 아버지 장례식 때에도 돌아오지 않았어. 바로 잘츠부르크의 실권자였던 콜로레도 대주교와의 불화 때문이었지. (또 갑갑한 고향보다 큰 물에서 놀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듯)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이야기를 네게 따로 들려 줄 것은 없어. 당연히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런데 질문 하나. 잘쯔부르크의 권력자는 왜 가톨릭 성직자인 ‘대주교’였을까? 모차르트 때 특별히 그런 것이었을까? 아니 잘쯔부르크는 근 천년 동안 ‘대주교의 땅’이었어. 무슨 말인지 다음 편지에 간단하게 설명하고 다음 목적지 슬로베니아의 브레드로 가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