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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여행기 4 - 음악의 도시 소금의 도시 by 산하

동유럽 여행 4. 소금강에 음악이 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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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모차르트를 만난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오스트리아 태생이지요?”라고 물으면 그는 뭐라고 할까? 그는 아주 당연하게 아니오 나는 잘츠부르크 태생이오. 하면서 고개를 저을 거야. 모차르트가 살던 시대만 해도 잘츠부르크는 엄연히 오스트리아 황제 아닌 잘츠부르크 대주교가 다스리는 독립국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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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한 것처럼 잘츠부르크는 알프스 산맥 자락에 있어. 알프스 산맥은 본래 바다 아래 있었는데 융기 작용을 통해 오늘날의 산맥으로 치솟아 오른 거거든. 그 와중에 소금물 호수들이 생겼는데 이 호수가 증발하고 소금만 남은 위에 다시 지층이 쌓이면서 깊은 지하에 암염이 생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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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1만년 전이나 100년 뒤나 사람은 소금을 못 먹으면 살 수 없는 존재다. 바다에서 먼 내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 암염을 찾아내야 했고 실제로 아득한 옛날부터 그를 캐내며 살아왔어. 소금의 도시 잘츠부르크 근처에 있던 수많은 소금 광산은 잘츠부르크를 풍요롭게 만듦과 외국 군주들의 탐욕을 자극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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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서기 700년 경에 로마 교황청에서 관구를 설치한 이래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와 심한 갈등을 빚었던 콜로레도 대주교를 마지막으로 독립을 잃을 때까지 근 천년을 이어 온 독립국가였어. 그 근간은 바로 얄프스의 암염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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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를 굽어보는 호헨잘츠부르크 성의 골격은 11세기 게브하르트 대주교 때 이뤄지기 시작했어. 이 호헨잘츠부르크 성이 생긴 배경은 아주 유명한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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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를 다스린 대주교에서 보듯, 당시의 성직자는 오늘날의 성직자와는 차원이 다른 정치적 지위를 지니고 있었고, 공식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가톨릭 성직자의 경우 그 후계 구도까지도 좌우할 수 있으니 성직 임명권이란 대단한 이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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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후반, 이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지속적으로 대립했어. 그레고리오 7세는 교황까지 좌지우지하던 세속 권력으로부터 성직 임명권을 되찾아 교회 본연의 권리로 확립하고 싶어했지만 하인리히 4세가 자기 이권을 순순히 넘길 리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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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7세가 성직 서임권의 교회 독점을 선언하자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는 협박으로 맞받고 밀라노 주교를 임명하는 강수를 둬. 그러자 그레고리오 7세는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해 버리고 그를 따르는 성직자들에게도 파문장을 날린 뒤 그에 대한 충성 맹세가 효력이 없음을 선언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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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이 발칵 뒤집혔어. “황제가 파문당했다.” 신성로마제국의 제후와 영주들이 파문당한 하인리히에게 등을 돌리는 기색이 역력하자 하인리히 4세는 발등에 불이 붙은 정도가 아니라 머리카락이 타들어가는 심정이 됐지. 1077년 1월의 엄동설한에 하인리히 4세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교황이 머물고 있던 카노사에 찾아가 맨발로 서서 용서를 구하며 농성했지. 이걸 카노사의 굴욕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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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의 대주교 게브하르트도 이 사태의 전개를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었지. 야 이거 자칫하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겠구나. 실제로 후일 하인리히 4세는 이 카노사의 굴욕을 잊지 않고 세력을 끌어모아 로마로 쳐들어가 교황 그레고리 7세를 폐위시키게 되니까 그 긴장 상태는 상당 기간 지속됐을 거야. 언제 누갸 임명했는지 모를 또 다른 대주교가 “잘츠부르크는 내 꺼야!” 하면서 쳐들어올지 모르지 않겠어. 이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해 게브하르트는 잘쯔부르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성을 쌓으라고 지시했고 이게 호헨잘츠부르크 성의 원형이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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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많은 대주교들이 이 성을 증축하고 보강하고 수리하면서 자신의 주거지이자 은신처이자 농성장으로 삼았다. 그 가운데 유명한 두어 명을 소개해 줘 볼게. 레온하르트 폰 코이자흐라는 대주교는 성채 안 곳곳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단다. 그는 초기 성채를 대대적으로 보수해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 인물인데 그의 문장(紋章)은 매우 특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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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기사들이나 성직자들의 경우 자신만의 스토리나 의지에 따라 가문이나 개인의 문장으로 삼았는데 레온하르트의 문장은 순무, 즉 무 비슷한 야채와 사자야. 전혀 안어울리는 조합이지. 근데 왜 순무가 들어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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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교라는 상당히 높은 지위의 성직에 올랐지만 레온하르트는 어려서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사고뭉치였다는구나. 놀기 좋아하고 여자 꽁무니 따라다니는 게 일이고, 뭐 그 외 망나니 짓은 한도 끝도 없고. 그런데 당시 보호자는 숙부였다고 해. (부모님이 안계셨는지) 숙부는 조카에게 호통도 쳐 보고 눈물겨운 설득도 해 봤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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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머리 끝까지 화가 치민 숙부가 순무를 들고 레온하르트의 머리통에 던져 버렸어. “이 인두겁을 쓴 짐승같은 놈!” 아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어. 순무를 맞은 레온하르트는 마치 그분의 빛을 본 듯 돌변하고 회개했고 나쁜 일에서 손을 끊고 이후 경건한 성직자로 거듭났다는 거야, 순무 역사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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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순무가 특별히 주님의 은총을 입은 순무일 리는 없고 순무를 마빡에 얻어맞은 경험이 “이게 사는 건가?” 하는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됐을 듯 하지만 어쨌건 레온하르트 주교는 자신의 문장을 통해 ‘순무의 기적’을 후세에 전하고 있어. 이거 우리 집에도 무라도 몇 개 갖다 놔야 하나. 혹시 엄마가 아빠에게 던지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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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 소개할 사람은 이 잘츠부르크를 혁명적으로 바꿔 놓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는 볼프 디트리히라는 대주교였어 나이 스물 여덟에 잘츠부르크의 지배자가 된 그는 야심도 크고 그만큼 열정적인 인물이었지. 알프스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잘츠부르크의 건축 양식은 대개 고딕 양식, 즉 오늘날 한국 교회들이 거의 예외없이 택하고 있는 뾰족 첨탑을 기본으로 했는데 잘츠부르크를 “북방의 로마”로 만들고 싶어했던 볼프 디트리히는 바로크 양식을 도입하여 대성당을 짓기 시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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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따란 광장과 화려한 분수, 조각상들을 배치한 것도 로마를 본뜬 거였고. 교황령에서 교황이 정치적, 종교적 수장이었던 것처럼 디트리히 역시 자신이 정치적, 종교적으로 지배하는 잘츠부르크를 꿈꿨던 거지. 그래서 오늘날의 잘츠부르크의 고풍스런 풍경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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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사람은 너무 욕심이 많은 게 흠이었어. 우선 성직자로서는 금지돼 있던, 하지만 당시 성직자들은 으레 다 갖추고 있던 자식 욕심(?)이 많았다. 평민의 딸이었던 살로메와 20년이 넘도록 연인 관계였고 (결혼을 못하니) 15명의 아이들을 낳았다고 하니 대단하다 싶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등장하는 그 미라벨 궁전은 바로 디트리히가 살로메에게 준 선물이었단다. 트랩 대령의 일곱 명의 아이들만 해도 와 많다 했는데 그 두 배가 넘는 아이들이 그 정원을 뛰어놀았던 셈이야. 도레미파솔라시도레미파솔라시도 무려 세 옥타브를 소화할 수 있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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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경제적 욕심도 많아서 소금 단가를 낮춰 더 많은 이익을 취하려다가 역시 소금 광산에 이권이 걸쳐져 있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 왕과 충돌하여 ‘소금 전쟁’(1611)에 휘말렸고 결국 실각하여 자신의 도시를 지켜주던 그 요새에 감금됐다가 비참하게 죽게 돼. 요즘도 날궂은 날이면 이 볼프 디트리히의 유령이 성 안에 출몰한다는데 그건 믿거나 말거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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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사의 굴욕이 펼쳐지던 격동기에 게브하르트 대주교가 건설하고 순무 맞고 정신차린 레온하르트가 정성들여 보수한 호헨잘츠부르크 성채에서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심혈을 기울여 공사를 시작했던 고풍스런 도심지를 내려다보면 만감이 교차할 수 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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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는 모차르트의 도시답게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한창이고 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떠올려 보면 거기 사는 사람들이 다 음악 애호가인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의 도시 이전에 잘츠부르크는 ‘하얀 황금’, 소금의 도시였고 모차르트의 교향곡만큼 그 풍경도 아름다우나 그 속에 밴 역사는 달콤하기보다는 짜디짠 사연이 숨어 있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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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관통해서 흐르는 잘자흐 강. 강폭은 좁지만 유속은 무척 빠르다. 그 강을 타고 소금이 북쪽으로 갔고 소금짐 위로 모차르트의 움악과 줄리 엔드류스의 새된 목소리가 함께 흐른다. 그를 뒤로 하고 이제 아빠는 발칸 반도로 남하한다. 예전의 유고슬라비아였던 나라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