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산하의 오책> 영초 언니 by 산하

#산하의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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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 언니> 잊혀진 밀알들

서명숙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안 건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시사저널> 편집장 시절 언저리부터였으니 그 이름을 기억해 온 시간이 짧지 않다. 또 언론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접고 고향 제주로 내려가 ‘올레길’이라는 걷기 브랜드를 만들어 전국 산지사방에 ‘00길’을 우후죽순으로 만드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사실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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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분이 학교 선배인 줄은 몰랐다. 이분이 최근 내놓은 소설 <영초 언니>를 읽으면서 안 일이다. 이분은 76학번, 그리고 책의 주인공 영초 언니, 천영초는 72학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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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덥잖은 학연을 주워섬기는 이유는 다름아니라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사건, 및 ‘지형지물’들이 그만큼 낯익었고, 마치 술자리에서 선배가 술 한 잔 쭉 들이키고 소매로 입술 쓱 씻은 뒤 “그때 말이다.....”라고 풀어놓는 사연을 듣는 듯 귀에 쏙쏙 들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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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학교와 서명숙이 다닌 학교와는 12년 띠동갑의 차이가 있으되 여성들에게는 상당히 폭력적인, 요즘 말로 하면 ‘여혐’ 내지 ‘마초성’이 장마철 막혀 버린 하수구 위로 똥물 넘치듯 그득한 학교였던 것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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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사발식을 억지로 시키는 거까진 그렇다고 치는데 남녀불문 “마실까 말까 마실까 말까 에라 18 your mother fuck up (동시 통역한 것임)”를 부르짖으며 “마셔도 사내답게 막걸리를 마셔라.”고 고래고래 악을 써 댔으니 지금 생각하면 무슨 정신으로들 그랬던 것인지 조건반사로 쩝쩝 입맛을 다시게 된다. 여학생이 20퍼센트는 됐던 80년대 후반도 아닌 70년대 중반이라면, 그 얼척 없는 풍경화 속 야만의 원색은 더욱 진했으리라. 이를테면 이런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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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들이 모여 인촌 김성수의 친일 행각을 씹고 있는데 누군가 술 담긴 막걸리 잔을 던져 버린다. 이 막걸리 테러를 자행한 건 같은 학교 남학생이었다. “니들이 뭔데 감히 김성수 선생을 씹고 지랄이야? 여자들끼리 모여서 술 먹고 담배나 피우는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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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캠퍼스를 누비던 시절에조차 ‘술’은 몰라도 ‘담배’에 관한한 교정에서 대놓고 피우기는 어려웠으니 그때는 더욱 자심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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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걸리를 뒤집어 쓴 불교 학생회 76학번 여학생은 “자기 앞에 놓인 술잔에 막걸리를 따르더니 옆 테이블로 조용히 다가가서 술잔을 던진 남학생 앞에 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막걸리를 들이부었다. 마치 거룩한 세례 의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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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을 대목이 아니었고 그 뒤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내용을 보면서도 나는 미친 듯이 웃었다. 너희에게 여성 평등 정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에라 18 니기미 조또 하는 막걸리 찬가의 주문이 곁들여졌을 것 같은 나 혼자만의 상상이 기묘하게 웃음보를 건드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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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이 책은 70년대 중반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말도 안되는 ‘일상’에 저항했을 뿐 아니라 ‘일상’보다 1천 배는 더 잔인했고 1만 배는 더 폭력적이었던 군부독재라는 괴물과 맞섰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솔직히 소설이라기보다는 수기에 가깝고 드라마는 아닌 다큐멘터리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래서 더 유장하고 드라마틱하고 개성적인 인물들이 돌출하고 휘어감고 부딪치고 마모돼 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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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에서 만난 동기가 “자네” 소리를 무시로 하고 “.. 했는가? 하게.....”를 써 제끼자 주인공 명숙은 ‘아랫배에 힘을 주고’ 따진다. 자네라니? 했는가라니? 하게라니? 내가 당신 조카야 딸이야. 그러자 이 동기 겁나게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광주가면 고것이 존대말인디.”하고 울상을 짓는다. 나도 겪었던 비슷한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슬그머니 웃는데 아 글쎄 이 전라도 총각이 심재철이라지 않는가. 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 그리고 국회부의장까지 해 먹으면서 꼴통의 대명사 노릇을 했던 그 사람이 책 속에서는 제주도 비바리에게 자근자근 씹어먹히는 얼뜬 전라도 총각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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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는 좋아하면서도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음음음 안그런 척 했더래요 하던 남녀. 그런데 갑자기 장학금을 탔다며 갑돌이는 갑순이에게 동해 바다를 보고 오자고 한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 삼등 완행 열차 기차를 타고~~~”는 70년대 대학생들의 최대의 낭만이자 로망 아니었던가. 그것도 1박 2일로.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기는 커녕, “여인숙 방의 양 끝에서” 하룻밤을 지새는 남녀. 코를 고는 남자를 옆에 두고 “믿을만한 남자”라는 뿌듯함과 “나는 이 친구에게 정말 여자가 아닌가보다.” 하는 실망감을 교차시키며 뒤척이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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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연인 사이가 되고 남자는 데모를 주동해 빵으로 간다. 그런데 얼마 뒤 연인의 빵 동기라는 남자가 찾아와서 연인 소식을 전해 준다. “나도 꼴통이지만 그 친구는 더 꼴통”이라며 흉을 보다가 “녀석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라며 통사정을 한다. 이 “얼굴 네모꼴의 별로 인상 안 좋은 남자”가 다름아닌 국무총리까지 지낸 버럭 이해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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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당시의 풍속도 속에 간간히 놓여 있는 들꽃같은 웃음 무더기들을 만나게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응답하라 1976’의 판타지는 절대로 아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살아남아 출세를 하고 이름 석 자를 굳건히 남긴 사람들도 있으나 나이 마흔도 안돼슬프게 떠나거나 어디서 무엇하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거나 ‘영초 언니’의 남편 정문화처럼 영양실조에 이은 질병으로 체중 37킬로그램의 뼈만 남은 앙상함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점점이 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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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그들을 불렀고 무대를 마련해 주었으나 어떤 급여도 보상도 주지 않고 흥행에 실패하면 내팽개쳐 버리는 무정한 극장주와도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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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서명숙은 자신을 악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나쁜 언니 천영초를 호출하게 된 이유로 천만 뜻밖의 여자의 출현을 든다. 75학번이니 그들과 비슷한 또래였고 역시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공기를 마시고 혹 같은 버스를 타고 다녔을지도 모르는 여자 최순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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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뻔뻔한 사람이 호송차에서 내리며 “여기는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너무 억울해요.” 외치는 걸 보고서 40년 전 역시 호송차에서 내리며 교도관에 의해 입이 틀어막힌 채 발버둥치던 여자의 모습이 오버랩됐다는 것이다. ‘너무도 다른 생을 살았던’ 두 여자가 외치는 같은 단어 ‘민주주의’. 아 이 심술궂은 역사의 장난질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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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비슷한 시기에 고려대학교 77학번으로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김동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고전연구회라는 운동권 서클에 가담, 활동하다가 1979년 입대했는데 하필이면 공수부대로 차출돼 3공수여단의 일원으로 광주의 피바람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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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가 무차별 사격으로 사람 사냥을 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 봤던 그는 엄청난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 그는 사람을 쏘아 죽인 공수부대 하사관들에게 수시로 덤벼들었고 탈영과 자해, 구타와 기합 범벅의 지옥같은 군 생활을 마쳤지만 이후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을 전전했다. 나는 최순실과 천영초를 동시에 떠올린 작가의 소회를 읽으며 광주에 갔던 77학번 김동관과 아울러 역시 77학번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학교는 다르지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 이정현을 떠올렸다. 같은 역사, 같은 학번인데 그들의 생은 그렇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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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역사는 누구를 기억할까. 물론 그 이름의 선명함으로는 최순실이 더할 것이고 이정현이 이름도 모를 PTSD 환자보다는 더 굵은 표기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영위하는 삶 역시 역사의 한 과정이요 부분이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지만 뒷물결은 결국 앞물결이 낸 물길로 흐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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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길을 낸 사람은, 즉 우리가 흘러가는 방향을 결정하고 ‘순리’(順理)대로 역사가 흘러가도록 연어처럼 솟구치며 물살을 갈랐던 사람들은 이정현이나 최순실이 아니었다. ‘고대신문 역사상 최고의 미모와 재능’을 지녔으나 사고를 당해 어린 아이같은 모습으로 남은 천영초였고, 그와 고락을 같이 했던 서명숙이었고, 천영초의 남편 정문화였고,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니나 역사의 늪에 빠져 평생을 광인으로 살았던 김동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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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기억하자는 상투어는 별로 쓰고 싶지 않다. 어차피 기억할 일 많은 세상에 그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도 머리에 부담이다. 그러나 뭉뚱그려서라도, 대충이라도, 안되면 한 마디 명제로라도 가슴 속 선반 위 팻말로 놓아 두었으면 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는 정도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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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겪어야 했던 상처와 고통, 찰랑찰랑 목까지 차올랐던 죽음의 냄새들이 새로운 삶의 자양분들이 됐다. 또는 그들 스스로 땅에 떨어진 밀알들이 됐다. 그들에게 경의를. 그에 앞서 위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