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찍을지 고심하는 청년분들께
- 윤석열에 대한 세 가지 실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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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에 제 부모님은 아주 흡족해 하셨습니다. 20대 손자가 서슴없이 윤석열을 부르짖으며 당신들의 속내에 쏙 맞는 말을 골라 하니 아니 좋으시겠습니까. 이번 선거를 두고 그 이상 대화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들을지 알거니와, 마주앉아 얘기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또래 청년들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것으로 갈음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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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이 정부의 ‘내로남불’에 대해 분개하신 것 잘 압니다. 탄핵 때 환호했던 여러분들이 왜 이렇게 돌아섰는지 넉넉히 이해가 갑니다. 특권을 누리는 적폐를 몰아치던 사람들이 자기 자식은 외국에 척척 보내고, 무슨 꼼수를 쓰든 좋은 대학 보내고, 집 가진 게 후회하게 해 주겠다던 인간들이 집 안 팔고 버티거나 땅을 사고, 똘똘한 한 채에 집착하고 그러면서 뭐라고 하면 되도 않은 변명이나 일삼는 모습이 얼마나 꼴사나웠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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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부동산은 하늘같이 올려 놓고 자기들이 얘기하던 평등과 정의와 공정은 안드로메다처럼 멀어졌으며, 그래 놓고 토착왜구다 20대 개새끼론이다 젊은 놈들이 뭐하냐는 헛소리는 빽빽 해 댔으니 정나미가 떨어졌겠지요. 시거든 떫지나 말든지 무능한데다가 뻔뻔하기까지 하더라는 아우성 넉넉히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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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더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똥팔육들의 내로남불에 불만 가지신 것은 당연하지만, 윤석열 후보로 대변되는 세력은 ‘내로남불’ 정도가 아니라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전통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정도의 살짝 웃기는 오리발이 아니라 도둑놈이 몽둥이를 들고 ‘누가 돈 가지고 다니랬냐?’라고 윽박지르는 어깃장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들도 바뀌었다고. 그리고 정치란 것이 이 당이 못하면 다른 당으로 바꿔 줘야 발전할 수 있다고. 동의합니다. 사실 이렇게 정치해 놓고 또 정권 가져가겠다는 사람들이 염치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 에헤라 놓아라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바꿀 당’의 윤석열 후보가 바로 적반하장의 정점이요 최악의 케이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윤석열 후보에게 세 번 실망을 했습니다. 그 실망의 이유를 잠시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른바 ‘조국대전’ 때 저는 검찰의 과잉 수사를 탓하면서도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그의 강직함을 일부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조국 장관이나 기타 이 정부의 요인들을 수사할 때 보여준 심할 정도의 유능함을 자기 식구라 할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여자 뒤에 달라붙어서 헤벌쭉 웃던 그 넙덕한 얼굴에게는 전혀 적용하지 않을 때 처음으로 실망했습니다. 또 김학의가 몰래 출국하려던 상황에서 그를 긴박하게 막았던 조치를 두고 ‘불법’을 들이댈 때 크게 낙심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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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도, 경찰도 누리지 못한 최강의,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권력, 수사권과 기소권을 틀어쥔 검찰이 그 칼을 자의적으로 쓰기 시작하면, 즉 ‘내로남불’을 시전하면 그 자체로 적반하장, 아니 적반하검(劍)이 됩니다. 도둑놈이 도망가려는 걸 잡았는데 그때 폭력을 행사했다고 잡은 사람을 족치고 그걸 ‘정당한 법 집행’이라고 우긴다고 생각해 보셔요. 더구나 그 도둑이 자기 ‘식구’라면 말입니다. 그 순간 윤석열은 제게 더 이상 강직한 검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인간이 정치하려는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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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실망은 검찰총장을 그만둔 뒤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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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에서 물러난 후 정계입문은 당연했습니다. 그건 본인의 권리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가 국회의원도 아니고, 변호사 이력도 아니고 바로 대권도전을 선언할 때 저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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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생 수사만 한 사람입니다. 즉 사람을 압박하고 족쳐서 자백을 받아내고 혐의 있음과 없음으로 수십년을 일관한 사람이죠. 변호사를 해도 그 검사물 몇 년 동안 벗기 쉽지 않다는 말을 하는데 하물며 대통령이라니오. 유죄와 무죄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고, 때로는 불의와도 협상해야 하고, 법을 넘어서 사람의 고충을 다스려야 하는 자리라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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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을 “국민이 길렀다.”고 하지만 사실 그의 양육자는 민주당 정부 법무부장관들이었죠.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뉘시며 윤석열을 이토록 키운 게 이 정부라는 건 다 아실 겁니다.그에게 정치적 입지를 쌓아 준 것이 이 정부를 물어뜯음이었을진대, 정녕 자신의 주인인 국민을 지키려는 정의로운 법의 송곳니를 세웠던 게 아니라,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하이에나의 이빨갈이였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아 저런 하급 인간이 대통령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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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실망은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된 뒤에 왔습니다. 이른바 조국대전 때 그는 한 집안을 멸문지화 수준으로 몰아넣도록 칼을 휘둘렀습니다. 잘못했다는 게 아닙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검사니까요. 범법을 보면 물러서지 않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칼질이 정당성을 지니려면 자신의 식구, 자신의 조직, 자기 편에 대해서도 가차가 없어야 합니다. 더구나 칼질 잘해서, 정의를 구현했다는 명목으로 대통령 후보에 오른 자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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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윤석열 후보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아내나 장모의 행적이 도저히 평정심을 ‘yuji’하지 못할만큼 드러나도 그는 외면했습니다. 노무현은 빨갱이의 딸로 몰린 아내를 두고 “그렇다고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하여 사람들 감동시켰다면 윤석열은 “사랑하는 아내라도 수사를 의뢰하겠습니다.”를 외쳐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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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 아닙니다. 현직 검사가 검찰 출신 국회의원에게 고발장을 써 보내는 국기(國基) 문란 사태, 그가 검찰총장이었다면 눈을 까뒤집고 덤벼들어 뼈와 살을 발라낼 사태를 그는 역시 외면합니다. 그 외에도 한 두 건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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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는 ‘강직하게’ 상관의 가족을 처벌하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며, ‘정의롭게’ 정권의 탄압을 돌파한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자리를 이용하고, 정권을 빼앗긴 이들의 복수심에 편승하여 대통령을 꿈꾸는, 똥팔육의 내로남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적반하장의 최강자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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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부록으로 실망한 것은 유세와 토론에서 보여주는 그의 지적 빈한함과 무지함입니다. 뭘 많이 안다고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뭘 알아야 면장(面牆), 즉 벽만 보고 서기를 면하는 법이고, 사람을 부리게 되는 것이며, 나라를 굽어보고 나라 밖을 살필 줄 아는 겁니다. 더구나 시골 면장도 아니고 대통령, 국제 정세 살벌하고 북한을 머리에 인 나라의 대통령에 그가 보여주는 지적 빈한함은 정말로 놀라운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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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똑똑해서 이렇게 개판쳤냐.” 비아냥거리실 거 이해합니다. 하지만 문이 안 열린다고 벽에 머리를 박으시면 안됩니다. 개가 말 안듣는다고 멧돼지를 들여서는 안되는 겁니다. 이재명이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정히 싫으면 차라리 다른 데에 표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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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바꾸는 게 정치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조선 말기 개화파가 삽질한다고 민비에게 정권을 돌리는 게 ‘바꾸는’ 게 아니듯이, 대원군의 개혁이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안동 김씨에게 정권 돌리는 게 답이 아니었듯이, 단순히 ‘바꾸는’ 것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윤석열은 그 중에서도 가장 해로운 집단을 대표하는 가장 처참한 인물임을 확신하기에 이렇게 말씀드려 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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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다면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서 제 예상과 악평을 넘어서 잘 해 주시기를 바랄 겁니다. 아니 제 예상이 틀려서 머리 긁으며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 웃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일단 그분이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 번 더 생각해 주세요. 결국 우리들보다는 여러분들이 살아갈 날이 두 배는 많이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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