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과묵한 성품은 아닌 터라 어디에서 어떤 화제가 나오든 몇 마디 말을 흘리지 않으면 혓바늘이 오돌토돌 돋곤 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화제이면서도 매우 끼어들기 힘든, 아니 뭐 굳이 힘들다기보다는 할 말이 드문드문한 화제가 바로 연애 얘기나 그와 유사한 파릇파릇했던 시절의 간지럽고도 싱그러웠던 추억담이다.
가슴 시리게 사연을 적어 별밤지기 이문세에게 보내거나 영화음악실의 김세원씨에게 띄워서는 소망하는 음악과 함께 전파를 타면 온 밤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었던 가슴 저림 따위는 유감스럽게도 나의 소유가 되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좋아하는 여학생 뒤를 졸졸 따라다닐만큼 얼굴이 두껍지 못했고, 곱게 접은 종이학과 수줍은 종이 쪽지를 받고 의기양양 나댄 적도 없으며, 누굴 좋아해서 연애 편지를 수십 장 구겼다가 엄마한테 종이 낭비한다고 군밤 맞은 적 역시 내 자서전에 기록될 건덕지가 없다. 그런데 정작 그때는 그런 설렘이 없다고 해서 하등 슬퍼하거나 진정으로 아쉬워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머리 희끗히끗 새치가 달린 지금, 그런 얘기 하면서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염화미소가 '번지는' 사람들 사이에 끼었을 때 나는 왜 할 얘기가 없을까 천정이 뚫어질 뿐이다.
그나마 간접경험 즉 사이에 끼어서 도무지 팔자에 없을 거 같던 사랑의 메신저(?)나 상담사 역할은 되레 이게 내 팔자 아닌가 싶을만큼 허다하게 맡았었지만 "남 얘기하지 말고 네 얘기해 봐"하는 내지름에는 시어머니한테 구박받은 며느리한테 배때기 걷어차인 강아지 꼴이 되고 만다. 깨갱 깽. 하나 일생에 득이 될 일이 있었다면 사주를 보러 갔을 때 내 앞의 점쟁이가 돌팔이임을 대번에 간파했던 경험일 것이다. "사주에 여자들이 많은데? 여자친구 많겠어."
돌이켜보면 나의 이런 현실을 예감케 해 주는 일화가 있다. 아들 녀석이 여친이 생겼네 어쩌네 요즘 어린 것들이 장난이 아니라면서 은근 뿌듯 반, 걱정 반 푸념을 하는 아내에게 옛날 애들은 더했다면서 답하다 보니 떠오른 이야기다.
내가 어린 시절의 '어린 것들'도 꽤 대단했다. 아무개는 아무개를 좋아한대요 하는 변소 낙서 수준 따위는 '국민학교' 4학년이면 졸업을 했고 6학년 쯤에 이르면 70명이 넘던 반 아이들의 무더기에서 유치하지만 꽤 선명한 사랑의 화살표들이 종횡무진으로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무슨 먹이사슬도 아닌 것이 진호는 유진이를 좋아하는데 유진이는 상기에게 목을 맸고 상기는 정란이한테 뻑이 가 있었고 정란이는 또 진호가 오면 몸이 굳어졌다. 물론 인기가 많은 애들은 그 거미줄의 꼭지점들에 가 있긴 했지만.
생일이라도 되면 손수 금가루 은가루 뿌려서 만든 카드를 손끝까지 빨개진 손으로 책상 위에 놓고 도망가는 일이 흔했고, 누군가 방성대곡을 하고 있어서 가서 연유를 물으면 아무개가 아이스께끼를 했다고 악을 쓰면서도 사실상 그 아무개가 자기랑 안놀아줘서 그러는 일이 태반이었다. 옆반 여자애하고 머리 끄댕이를 잡고 싸우길래 뜯어말리면서 뭣 땜에 그러느냐고 했더니 저년이 무경이를 홀렸다고 구미호같이 앙탈을 부리기에 기가 막혀 웃은 날도 있었다. 나는 그 반의 선출직 반장이었다. 여자애들의 몰표를 받고 황당해 했던 기억이 있는데 후문에 따르면 "젤 만만하고 신경 안쓰일 거 같아서"라고 했다.
만만한 건 몰라도 신경 안쓰이는 건 분명했다. 그래도 반장이면 권력(?)에 일찍 눈을 뜬 여자아이들이 줄을 섬직도 했지만 내가 아는 한, 나를 좋아하는 여자 아이는 한 명도 없었고, 나도 무덤덤 그 자체였다. 1년 학교를 일찍 들어간 내가 어려서 그랬을까 아니면 겉늙어서 그랬을까 알 길이 없지만 나는 국민학생 주제에 연애 편지를 쓰고 일편단심이 어쩌고 일부종사가 저쩌고 하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 아이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때 내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바로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이만저만 한심한 게 아니다. 내 대가리 피는 지금도 안마른 것인가아니면 그때 이미 말라뭍었던 것인가.
하루는 점심 먹고 개발 주제에 축구한답시고 뛰는데 여자애 하나가 숨에 턱이 닿아서 뛰어왔다. "반자아아아앙~~~~~"
"와? 무슨 일인데?"
"현애가 죽을라칸다."
"머시라? 현애가 갑자기 와?"
"동맥 긋는다고 칼 손목에 대고 있다."
뭔가 사태가 심각한 듯 싶었다. 100미터에 19초 뛰던 둔한 몸이었지만 그때는 거의 날아오른 듯이 3층 교실로 달려갔다.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요즘 이름 높은 법무무 자문위원처럼 흰자위가 출렁거리는 눈매를 한 현애가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손에 뭔가를 꽉 쥐고 자기 손목에 갖다 대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고?"
"주식이 불러 온나."
"가스나야 이기 돌았나. 주식이가 뭐 우쨌는데?"
그때 나는 그 질문이 우문임을 깨달았다. 현애라면 주식이에게 목을 매고 있었고 주식이는 별 관심이 없어한다는 사실이 그제에야 뇌리에 들러붙은 것이다. 그리고 요즘 주식이가 옆반의 지윤인지 뭔지랑 찰떡으로 붙어다닌다는 최신 정보도 그 뒤를 이어 머리 속 모니터에 떴다. 아니나다를까 현애는 지금 죽음으로(?!) 주식이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주식이 오라 캐라. 오늘 내 사생결단을 낼란다.
지금 이 얘기를 하면 뭇 사람들은 초등괴담 영화 찍겠다고 낄낄거리겠지만 그때 현애의 애틋한 마음은 일찌기 알아 본 바였다. 나는 현애를 보면서 이성간에 끌린다는 것이 어떤 것이고 이른바 넋이 나간다는 것이 어떤 상태며,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어떤 증상인지를 간접경험했었다. 문제는 그 경험을 뼈대로 하고 피와 살을 붙여 나만의 애틋함을 모방하고 나아가 창조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요 소년의 나아갈 바였건만 그러지 못하였다는 것이 나의 문제였다. 그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안절부절 못하며 함께 울음을 터뜨리는 여자 아이들과 칼 뺏아라 우째라 당황하는 남자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통에서도 나는 그냥 우스울 뿐이었다. 그나마 현애가 쥔 것이 연필 깎는 칼, 가끔 손도 베이고 피를 보게 하는 그 칼이라면 조금 긴장이 되겠는데, 아 애석하게도 또는 다행히도 그녀가 쥔 것은 조각칼 중에 창칼이었다. 다음 시간이 세탁 비누가지고 조각질하는 미술시간이었던 것이다. 현애의 시퍼런 눈망울이 나는 왜 그리 우스웠을까. 그 눈에서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던 애증의 불길을 나는 왜 도무지 느끼지 못하였을까.
나는 성큼 다가가서 현애에게 이야기한다.
"현애야. 니 참말로 죽을라카나."
"그라모.......... 오늘 내 죽는다 진짜다."
아......... 참으로 정말로 진실로 정작으로 소녀의 가슴 따위 헤아리지 못한 냉혈한 겸 멍청한 반장은 그녀에게 뭔가를 툭 던지면서 절대로 결단코 반드시 기필코 하면 안될 말을 내뱉았다.
"이 세모칼로 파라. 그 창칼로는 안된다. 그 창칼로 아무리 해도 동맥 안나간다."
그러면서 잔인하게 이래 이래 파야 된다고 시범까지 보였다. 그때 동그래진 현애의 눈이라니....... 그래도 반장이라고 주식이 불러 와서 짜슥아 니가 그라모 되나 우짜고 저짜고 해 줄 줄 알았는데, 세모칼로 뭘 어드렇게? 당혹과 야속함과 분노와 공포가 한껏 버무려져서 샐러드를 만드는 가운데 내 한 마디가 마요네즈로 들이부어졌다.
"주식이 불러 오까? 가아 앞에서 할래?"
그만 현애는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아이다운 울음이었다. 좋아하는 남자를 가슴에 담은 숙성한 아니 아니 성숙한 소녀의 흐느낌이 아니었다.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책상에 얼굴 파묻지도 않았고 손으로 얼굴 가리지도 않았다. 그냥 으앙~~~~ 하면서 팔 늘어뜨리고 하늘을 우러른 국민학생의 울음이었다. 나는 냉정하게 그녀의 손에 든 창칼을 회수했다. 저항은 없었다. 그리고 상황은 끝났다.
창칼로 동맥 긋겠다고 아우성을 친 건 물론 철없는 짓이고 지금으로서도 이해가 안되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아마도 현애에게 그 추억은 부끄럽지만은 않은 추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누구를 애틋하게 좋아하고, 버거울지언정 어떤 사람을 넘치게 가슴에 담아 봤다는 것은, 그리고 그러면서 청소년이 되어 그만큼 커진 설렘과 추억을 만들고 , 그 감성으로 부드러워지고 경험으로 윤택해진 청년이 되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아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하였도다. 오호 통재라 애해 애재라. 창칼로 파면 안되니 세모칼로 파라고 뇌까리는 남자아이를 보고 원래는 그 녀석에게 연애편지를 쓰다가도 찢어버렸을 여학생도 혹시 있지 않았을까?
벌써부터 나이 얼마나 먹었다고,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되새기면서 얼굴에 웃음이 꽃밭으로 영그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 꽃밭에 꽃 하나로 피어나기엔 나의 과거는 너무나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다. ^^ 과거는 과거로 그칠 뿐이지만 나는 아직 무척이나 젊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모칼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흠이고, 어쩌면 더 진해진 것이 치명적이긴 해도 나는 가끔 창칼을 쥔 현애가 되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ㅋ 젊기 때문이다.
- 2009/06/24 16:05
- nasanha.egloos.com/9881379
- 덧글수 : 12
덧글
이런 이야기를 쓰셨어도 이미 지구를 구하신 값을 받았으니 무효입니다. ㅎㅎ
애석하고도 다행인 조각칼 중 창칼에서 뿜었습니다.ㅋㅋ